‘곰탕집 성추행 사건’ 두고 남함페 vs. 당당위 맞불시위
2차 가해 침묵·방관에 문제의식 느껴 규탄시위 열게 돼
참여 예상 인원 못 미쳐…“2차 시위 열린다면 대응 계획”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서울 혜화역 1번 출구 인근에서 ‘2차 가해 규탄시위’를 열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서울 혜화역 1번 출구 인근에서 ‘2차 가해 규탄시위’를 열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27일 ‘곰탕집 성추행 사건’ 판결을 두고 서울 혜화역 인근에서 정반대의 두 시위가 열렸다.

곰탕집 성추행 사건은 지난 9월 6일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에 ‘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이 게시되면서 알려진 사건이다.

청원자는 강제추행 혐의로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받은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며 사건 당시 현장의 CCTV영상을 첨부했다. CCTV영상에는 성추행이 발생한 당시의 상황이 담겼으나 음식점의 신발장에 가려 신체접촉 장면이 보이지 않았다. 청원자는 ‘명백한 증거도 없이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에는 한 달 만에 33만587명이 참여했다.

이 청원이 이슈가 되자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위하여(당당위)’는 재판부가 ‘유죄추정’을 했다며 이날 오후 1시 혜화역 2번 출구 인근에서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시위’를 열었다.

같은 시각 혜화역 1번 출구 인근에서는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남함페)’가 당당위의 시위를 ‘2차 가해’로 규정하며 이를 규탄하는 ‘2차 가해 규탄시위’를 열었다.

남함페 측은 이날 시위 규모를 최대 2000명으로 예상했으나 이에 훨씬 미치지 못한 50여명이 참가했다.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당당위, 성 대결 조장”

남함페는 “인터넷 댓글이나 기사의 형태로 재생산되는 2차 가해 문제에 대해 많은 남성들이 침묵을 지키고 방관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당당위에 맞서 이번 시위를 열게 됐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들은 “곰탕집 사건이 이슈화된 후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오직 가해자의 입장만을 대변하는 청와대 청원 글이 수없이 공유되며 피해자에 대한 허위사실이 유포돼 2차 피해가 양산됐다”며 “이것으로 모자라 당당위는 사법부가 성폭력 사건에서는 증거도 없이 여성의 눈물만 믿고 남성에게만 편파적으로 유죄추정을 한다고 주장한다”고 규탄했다.

이어 “당당위는 ‘엉덩이를 만지는 장면이 CCTV에 잡히지 않았기 때문에’ 유죄 판결의 증거로 불충분하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현재 한국의 형사소송법이 자유심증주의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점에서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자유심증주의란 재판에 필요한 사실을 인정할 때 그 증거의 평가를 법관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다.

재판부가 유죄판결을 내린 이유는 가해자의 일관된 진술과 CCTV영상 증거와 일치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당당위는 가해자의 진술에는 어떤 의혹도 제기하지 않으면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만을 의심한다”며 “피해자에게 더 많은 구체적 증거를 요구하는 모습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이 겪어 온 2차 피해를 그대로 재생산한다”고 비난했다.

남함페는 당당위의 시위를 2차 가해로 규정하고 “해당 사건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혜화역을 골라 시위를 여는 것은 성 대결을 조장할 목적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이에 남함페는 성 평등을 통한 성 평화를 목표로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열게 됐다”고 부연했다.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2차 가해 댓글이 인쇄된 패널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 참가자들이 2차 가해 댓글이 인쇄된 패널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1심 판결 정당…꽃뱀몰이 중단해야

이날 집회에서 이들은 ‘2차가해 규탄한다 꽃뱀몰이 중단하라’, ‘가해자는 발뺌하고 피해자는 2차 피해’, ‘사법정의 타령 말고 2차 가해 중단하라’, ‘성추행은 강력범죄 6개월은 법정 형량’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당당위를 규탄했다.

이날 남함페 시위에 참가한 20대 남성 A씨는 “2차 가해가 심각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며 “혜화역이나 광화문에서 여성단체들이 주최했던 시위에 참여하고 싶었는데 이번 시위를 알게 돼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A씨는 “온라인상의 2차 가해는 익명을 이용한 저급한 일”이라며 “판결은 정당했고, 오히려 형량이 부족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마찬가지로 시위에 참여한 20대 남성 B씨는 “평소에도 남성들끼리 공유하는 여성객체화·대상화 문제를 안 좋게 보던 중에 집회를 주최하는 단체가 있다는 걸 알게 돼 나오게 됐다”며 “당당위는 사법부를 규탄한다면서 판결이 난 사건의 피해자를 무고범으로 몰고 있다. 사법질서를 어지럽히는 건 당당위 측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시위에서 발언한 30대 남성 참가자 C씨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도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성추행을 당하면서도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한다”며 “법이 인정하는 형태의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고발도 하지 못하는 여성이 부지기수다. 이게 과연 올바른 사회인가”라고 강조했다.

C씨는 이어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성범죄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고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이라는 점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며 “이 사회는 성범죄의 책임을 여성에게만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곰탕집 성추행 사건 판결이 성범죄에 있어서만큼은 남성들이 행동거지를 더 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성범죄자들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호소했다.

남함페 운영진 OJ는 “저들은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정작 가해자에게 무게를 실어 피해자를 더 나락으로 떨어뜨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에 반대 시위인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시위’ 참가자가 난입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에 반대 시위인 ‘사법부 유죄추정 규탄시위’ 참가자가 난입해 피켓을 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2차 가해 댓글 찢는 퍼포먼스도

이날 남함페 시위에서는 2차 가해 댓글을 시위 참여자들의 응원 메모로 덮는 퍼포먼스가 진행되기도 했다. 또 2차 가해 댓글을 인쇄해 찢거나 당당위 측의 시위 포스터를 불태우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한편 이날 남함페 시위에서는 당당위 측 시위 참가자가 피켓을 들고 난입해 주최 측과 경찰에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또 다른 당당위 측 집회 참가자는 남함페 집회 참가자들을 향해 조롱하는 등 시비를 거는 모습도 보였다.

남함페 운영진 D씨는 “이번 사건은 CCTV영상이라는 정황증거가 존재하고, 피해자의 진술도 구체적이고 일관적이었기 때문에 판사가 효력 있는 증거로 채택했다고 본다”며 “재판부에서 유죄추정을 한 게 아니라 재판 절차를 거쳐 나온 결과인데 이를 두고 유죄추정이라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날 집회에는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참여해 발언했다. 신 위원장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신 위원장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신체에 어떤 증거라도 남아 있나. 증거가 없는 할머니들은 피해자가 아닌가”라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2007년도에 미국 하원의회에서 ‘피해자인 내 몸이 바로 증거’라고 말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폭력은 사건의 특수성이 있어서 피해자의 증언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일관적인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사건에서는 피해자가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본인의 증언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면 그 여성이 바로 그 증거”라고 덧붙였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 27일 오후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 주최한 ‘2차 가해 규탄시위’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신 위원장은 기자와의 대화에서 “당당위 측에서 ‘무죄추정의 원칙’, ‘법정증거주의’를 이유로 피해자를 음해하는 것은 명백한 가해”라며 “사회 전반적으로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무분별한 가해가 이뤄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경찰이나 사법기관에서도 대처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남함페 시위에 대해서도 “지금까지 페미니즘은 여성을 중심으로 한 운동이라고 여겨졌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 계신 남성들 또한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고 성평등을 위해 나설 수 있는 주체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남성들이 여성운동에 함께 해 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시위 참여자 ‘열심’은 “당당위 측의 ‘꽃뱀몰이’가 부당하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며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재판을 이어가는 것도 힘들 텐데 왜 꽃뱀으로 몰아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1만5000명 규모를 신고한 당당위 집회에는 예상 인원에 훨씬 미치지 못한 100여명이 참여했다. 당당위는 2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남함페는 “당당위의 2차 시위가 확정된다면 그에 맞춰 맞불 집회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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