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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flickr@InkwellDesignGroup

Intro

최근에 나온 알엔비(R&B) 앨범 중에서 가장 큰 이슈는 역시 키스 스웨트(Keith Sweat)의 [Playing For Keeps]였다. 데뷔 이래로 지금까지 그의 열혈 팬을 자처하고 있었고, 테디 라일리(Teddy Riley)와 함께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의 선구자’로 명성을 크게 얻은 인물이라서 기댓값을 높게 매길 만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정도의 기대는 안 하는 게 나았다. 그건 마치 백인 알엔비 음악인에게 배타적인 옛 소울(Soul) 마니아의 태도처럼, 향수를 향한 물색없는 집착과 같다. 에밀 시오랑(Emil M. Ciora)은 그의 저서 「독설의 팡세」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시간 속에 정착하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영원을 향해 몸을 돌려보았다. 발을 딛고 설 수조차 없는 곳이었다.’

‘얼반(Urban)’이라는 음악 형식이 있다. 얼반은 ‘70년대 라디오 디제이 프랭키 크로커(Frankie Crocker)에 의해 정의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음악적 특징에 따른 분류라기보다 유명 라디오 프로그램의 선곡 기준으로 정의된 탓에 모호하고 포괄적이다. 쉽게 말하면 대중 친화적이고 유행을 따르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인 셈이다. 이제껏 키스 스웨트가 들려준 음악도 얼반이다. 따라서, 감상 포인트는 이순(耳順)에 다다른 그가 새 앨범으로 고유 개성을 오롯이 보존한 채 얼마나 현재의 정서와 교감할 수 있을까 확인하는 것이다.

I’ll Give All My Love To You

키스 스웨트가 “I Want Her”처럼 뉴 잭 스윙이라는 댄스 양식으로 세상에 명함을 내놓고 “Get Up On It”, “Twisted”와 같이 관능적이고 몸을 이완시키는 분위기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내게 각인된 그의 진가는 두 번째 앨범 [I’ll Give All My Love To You (1990)]에서 비친 애절하면서도 아름다운 발라드였다. 본 앨범에서 뉴 잭 스윙과 슬로우 잼(Slow Jam, ‘Downtempo R&B’와 동일한 개념) 등이 키스 스웨트의 ‘존재’를 정의한다면, 발라드는 키스 스웨트의 ‘본질’이라 할 수 있다.

“I will never do anything to hurt you

(난 당신에게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을 거예요.)

I'll give all my love to you

(내 사랑을 모두 드려요.)

And if you need me, baby, I'll come runnin'

Only to you

(내가 필요하면 당신에게 달려갈게요.)”

 
- “I’ll Give All My Love Toy You”의 가사 中

“I’ll Give All My Love To You”의 노랫말을 보면,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듯한 순애보가 국내 가요를 듣는 듯 익숙하다. 애틋한 키스 스웨트의 노래를 보조하는 키보드 연주는 모순적이게도 상쾌한 기운을 담았다. 노랫말의 마무리와 함께 연주도 멈추는가 싶더니, 5초 남짓한 여백 끝에 지긋이 손가락을 얹은 듯 건반으로부터 보드랍게 구현되는 화음이 끝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앨범의 첫 트랙 “I’ll Give All My Love To You (Intro)”가 말미 “I’ll Give All My Love To You”의 종반부에 다시 연주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면,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을 연이어 재생해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What did I do to deserve this pain?

(내가 이 고통을 받아야만 하나요?)

You just keep doin' this same thing over and over again

(당신은 계속 반복하기만 하네요.)

I feel like I'm on a merry go round

(마치 회전목마를 탄 것 같아요.)"

- “Merry Go Round”의 가사 中

그의 사랑은 애처롭기까지 하다. “Merry Go Round”는 떠난 연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고통받는 처지를 회전목마에 비유한다. 작년 미국 음악 웹진 ‘All Access Music’의 인터뷰에서 키스 스웨트는 이렇게 말했다. “내 음악은 경험과 마음으로부터 나온 저 자신입니다.” 그도 이토록 처절했던 시절이 있었는가 보다. 비성(鼻聲)과 독특한 멜로디는 드럼의 강한 타격감, 보조와 리드를 넘나드는 키보드 연주와 ‘Lay Back’ 리듬 위에 공존하며 유례없는 슬로우 잼을 완성한다. 

Outro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키스 스웨트가 비록 뉴 잭 스윙의 선구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테디 라일리(Teddy Riley)라는 제작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테디 라일리가 너르게 뿌린 씨앗은 광범위하게 개화했다. 대표적인 ‘90년대 알엔비 댄스 양식으로 말이다. 그 선두에 키스 스웨트가 있었을 뿐, 그걸 고유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매력적인 음악인은 획일화를 거부한다. 키스 스웨트의 슬로우 잼 역시 그만의 독자적인 빛깔이 있다. 그가 꼭 있어야 하고 그가 나서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뉴 잭 스윙의 선구자’보다 ‘슬로우 잼의 대가’로 그를 기억하는 것이 본질을 더 꿰뚫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앨범 [I’ll Give All My Love To You]를 상기한 것도 테디 라일리의 지원에서 벗어나 키스 스웨트만의 슬로우 잼을 알리는 첫 독자적인 앨범이기 때문이다.

공식적으로 13번째 음반, 그러니까 [I’ll Give All My Love To You]로부터 28년 후 내놓은 [Playing For Keeps]로 다시 시선을 돌려보자. 비록 풍화와 침식이 있었지만, 시대에 뒤처지지 않았고 슬로우 잼은 여전했으며 테디 라일리와의 해후는 참 반가웠다. 이 정도면 고유 개성을 오롯이 보존한 채 현재의 정서와 교감했으니,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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