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인 자금 지원, 농촌 정착 큰 도움 안 돼
‘1인 가구’ 귀농지원 배제…지역별 개선 추세
농촌 청년인구 부족…교류할 또래 많지 않아
“농촌은 ‘쉼’의 공간…‘돈’ 보고 오면 힘들 것”

귀농을 미디어에서만 접하다 보면 막연한 환상을 갖기 쉽다. 복잡한 생각 없이 마음 편하게 보내는 여유로운 일상. 귀농의 꿈을 가진 이들이 흔히 꿈꾸는 생활일 것이다. 그러나 귀농생활에는 초기 비용이 많이 들뿐더러 안정적인 정착 또한 쉽지 않다. 정부와 지자체는 연일 귀농인 지원을 홍보하고 있으나 귀농인들은 지원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본지는 농업으로 경력을 만들어가는 청년 귀농인에게 귀농 후 마주하게 된 현실과 귀농인 지원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북 순창군 청년농부 공동체 ‘더불어농부’ 회장 신성원씨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전북 순창군 청년농부 공동체 ‘더불어농부’ 회장 신성원씨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농촌의 고령화가 가속화함에 따라 지자체들은 청년 모시기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상황은 쉽지 않아 보인다.

농림축산식품부가 해양수산부, 통계청과 함께 지난 6월 발표한 ‘2017년 귀농어·귀촌인통계’에 따르면 귀농 가구수는 1만2630가구, 가구원 수는 1만9630명으로 나타났으며 가구당 평균 가구원 수 1.55명으로 집계됐다.

더 큰 문제는 젊은 귀농인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귀농인구의 평균 연령은 54.3세로 조사됐으며 귀농 가구주의 71.7%가 50대 이상, 40대 이하는 28.3%로 귀농 가구의 1/3에도 이르지 못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가운데 농촌으로 돌아가 농업에 뛰어드는 청년들도 있지만 빚을 내 농사를 시작하는 그들이 마주하는 현실은 녹록치 않다.

전북 순창군 청년농부 공동체 ‘더불어농부’ 회장 신성원(33)씨는 농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청년들이 많아져야 하지만 청년들이 농촌에 정착하기는 어렵다고 현실을 이야기했다.

<투데이신문>은 청년 귀농인들이 부딪히는 귀농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자 신씨의 양봉·목화 농장 ‘허니목화’를 찾아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 10월 24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 회장이 흑염소를 돌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지난 10월 24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씨가 흑염소를 돌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가족 위해 귀농…주변에선 만류

귀금속 디자인을 전공하다 휴학하고 입대한 신씨는 전문하사에 지원했다. 이후 기갑수색대에서 교관생활을 하다 10년의 군생활을 접고 2016년 순창으로 내려왔다. 2014년 형이 교통사고로 숨지고 아버지가 낙상으로 어깨를 다친 뒤 부모님과 함께 지내야겠다는 마음이 앞섰다고 한다.

어느덧 귀농한지 3년차. 신씨가 처음 귀농을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그를 만류했다고 한다.

“부모님과 누나는 제가 귀농하겠다고 했더니 굉장히 반겼어요. 하지만 군대에서는 욕을 많이 먹었죠. 제가 전문하사를 지원하고 나서 진급도 1차로 됐고, 장기복무도 1차로 됐어요. 그런데 전역하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미쳤다고 했죠. ‘네가 무슨 농사일을 할 수 있겠느냐’면서 군대에 남으라고 한 사람들도 있었고요.”

농업에 뜻이 있어 귀농을 결정한 것이 아니기에 그 역시 10년간 몸담았던 군대를 떠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경력보다는 가족이 먼저였다.

지난 10월 23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 회장이 SNS에 꿀을 홍보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지난 10월 23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씨가 SNS에 꿀을 홍보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귀농할 때 도움 받은 것 없어”

신씨가 귀농한 2016년 즈음에는 귀농 붐이 크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귀농 정보도 많지 않았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도 많지 않아 그는 홀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인터넷을 뒤져 정보를 찾았다.

미디어에서는 귀농인 지원, 혜택 등을 대대적으로 홍보했지만 신씨는 혜택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부모님 외에는 처음 내려올 때 도움 받은 게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미디어에서는 귀농에 대해 좋은 말들을 많이 하지만 귀농 지원은 2인 이상 가구 기준이에요. 저는 미혼이라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었죠.”

귀농인에 대해서는 이사비용 100만원, 집수리비용 1000만원, 자녀수당 등을 받을 수 있는데 신씨는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귀농귀촌 자금 대출 자격도 ‘해당 지역으로 주소를 이전하는 2인 이상 가구’다. 비혼일 경우 귀농하기 더 어려운 것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1인 가구도 지원 대상으로 포함하도록 수정이 되고 있고 순창의 경우도 수정을 진행 중이라고 한다.

지난 10월 23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 회장이 목화솜을 따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지난 10월 23일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씨가 목화솜을 따고 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연고 없으면 정착 어려워

신씨의 경우 부모님이 집과 농지를 갖고 있는 순창으로 내려와서 정착이 수월했다고 한다. 그러나 연고가 없는 경우는 시작부터가 난관이라고 했다.

“저는 부모님이 갖고 계신 집과 땅이 있기 때문에 바로 농사를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있었어요. 작물만 선택하면 됐죠. 반면 아무 연고도 없는 분들은 집과 땅을 먼저 구해야 해요. 그리고 작물 선택하다 보면 2년 정도는 금방 지나가요.”

또 지자체에서 귀농인에게 귀농귀촌 자금 대출을 지원하지만 말 그대로 ‘빚’이다보니 농사를 실패할 경우 위험부담이 크다고 한다.

“귀농귀촌 자금이 최대 3억원까지 지원되는데, 귀농인의 대부분인 50대 이상은 이미 자금을 스스로 마련해서 귀농해요. 반면 청년들은 자금이 충분치 않으니 대출을 받아야 하죠. 보통 3년 거치, 5년 또는 7년 상환인데, 자리를 잡지 못하면 매달 이자를 내고 빚을 갚을 수 있는 소득이 생기지 않아요. 그러면 빚을 내서 돌려막기를 하게 되죠.”

대출로 자금을 마련한다고 해도 농촌 정착은 쉽지 않다. 집을 구하기도 어렵고, 농사일에 적응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이 나쁘면 2년 내에 집이나 땅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귀농 생활을 접고 다시 도시로 향하게 되죠.”

‘텃세’ 나쁘게만 볼 것 아냐

귀농생활의 어려움으로 꼽히는 것 중 하나는 ‘선주민들의 텃세’다. 지역에 연고가 있는 신씨도 처음에는 텃세를 느꼈다고 한다. 지역을 떠난 지 오래돼 기존에 마을에서 살던 청년에게 더 살갑게 대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업이나 이득이 되는 일이 있을 경우 저보다는 지역 선주민 청년에게 먼저 배분하죠. 나중에 제가 ‘누구 아들입니다’ 하고 밝히니 그제야 보는 눈이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지역에 연고가 있으면 확실히 유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씨는 도시와 농촌 공동체의 문화가 다를 뿐 농촌의 텃세가 잘못된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했다.

“누구나 당연히 지역에 있는 식구들 먼저 챙기지 않겠어요? 이에 대해 서운하게 생각하기보다는 함께 어울릴 수 있는 방법을 빨리 찾아야 해요. 농촌문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생활할 수가 없어요.”

지난 10월 23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지난 10월 23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외로움이 가장 큰 문제

신씨가 귀농 전에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문화생활’이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심심하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놀거리도 많아 언제든 쉽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순창에 내려오면 이를 포기해야 한다는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순창에 내려와서는 친구들도 타지로 가야 만날 수 있고, 평소 누리던 문화생활도 할 수 없었기에 ‘너무 동떨어져 있어 뒤처지지 않을까’ 우려를 많이 했어요. 또 제 또래 청년들이 없을 것 같아 사람을 만나기 힘들 거라는 걱정도 있었죠.”

신씨의 우려는 귀농 후 현실로 다가왔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향을 떠나 생활한 그는 15년간 타지에 있다 돌아왔기에 또래 청년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도 모르는 분들이 많았다.

“동네를 떠나있는 동안 연세가 많아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제가 몰랐던 분이 노후생활을 위해 귀향하신 경우도 있어요. 무엇보다도 제 또래 청년은 아무도 없었어요.”

그는 귀농 후 혼자 일하면서 느끼는 외로움이 힘들다고 했다. 연애를 시작하기도 어렵고 사람들을 만나려고 해도 이동시간이 길어 주저하게 된다고 한다.

“어디 나가서 술을 한 잔 먹고 싶어도 전주까지 나가야 하니 매일 집에서만 지내게 되더라고요. 나이가 있다보니 연애도 하고 싶죠. 처음 귀농했을 때는 연애도 했는데 아무래도 경제적인 자립이 되지 않다보니 힘들었어요. 그래서 자립할 때까지는 연애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관계를 정리했어요.”

그는 아직은 현실적으로 연애하기 힘들다고 생각해 어느 정도 안정된 환경이 만들어지면 연애나 결혼을 생각해보려 한다고 했다.

지난 10월 24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 회장 가족이 집 앞 마당 나무 아래에 앉아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지난 10월 24일 오전 전북 순창군 쌍치면 ‘허니목화’ 농장에서 신성원씨 가족이 집 앞 마당 나무 아래에 앉아있다.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여유’가 귀농생활 가장 큰 장점

신씨는 귀농을 결정하면서 많은 것을 포기했지만 장점도 크다고 했다.

그는 가장 큰 장점을 정해진 시간표대로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여유를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가장 큰 장점은 여유예요. 경제적 여유가 아닌 심리적 여유. 직장생활을 하면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잖아요. 일이 다 끝나지 않으면 야근도 해야 하고. 아침에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하니까 뭘 하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자야하고, 너무 무리하면 안 되고…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가 힘들죠. 그런데 내려온 뒤로는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어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 필요에 따라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거죠.”

반면 단점으로는 육체적으로 '힘들다'는 것을 들었다. 또 농부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점들이 있다고 했다.

“농업이 생각보다 많이 힘들어요. 단점인 동시에 장점일 수도 있는데, 일한 만큼 벌어요. 직장생활은 일을 잘 못 해도 잘리기 전까지는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지만 농사일은 그렇지 않아요. 일한 만큼 버는 거죠. 그런데 정말 열심히 일해도 자연재해가 오면 어쩔 수 없어요. 한해 농사 망치면 1년 소득이 아예 없을 수도 있고…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죠. 그것 빼고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요.”

그는 귀농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돈을 보고 내려오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귀농을 결정할 때는 “여유를 갖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는 농촌을 ‘쉼’의 공간으로 봐요. 귀농할 생각이라면 여유를 갖는다는 마음으로 와야 해요. ‘농촌에서 성공해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하면 아무것도 못 해요. 힘만 들고 압박감에 시달릴 뿐이에요.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 내려온다고 생각하고 귀농하면 좋겠어요.”

누군가에게 귀농은 ‘로망’이고 ‘환상’일 수 있다. 그러나 귀농인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자금지원, 귀농귀촌 교육 등이 있지만 귀농인이 농촌에 정착하고 생활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상황이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농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

“농작물 재배 교육은 잘 돼 있지만 경제적 지원은 많지 않아요. 귀농인은 농촌에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바라는데 지금의 지원 수준으로는 부족해요. 귀농인들이 지속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집과 땅을 마련할 수 있는 지원이 필요해요. 그렇게만 된다면 귀농인들의 만족도도 높아지고 지속적으로, 열심히 농사를 지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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