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칼럼]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1.15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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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번 주 칼럼이 나올 때쯤에는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을 것이다. 매년 겪는 대학수학능력시험이지만, 그 때마다 필자는 청소년 시절을 상기하곤 한다. 최근에 필자는 “몸과 마음, 그리고 이것으로 인해 등장하는 다양한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집필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래서 그럴까? 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즈음해서 필자는 갑자기 필자가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종의 “좌우명”으로 가지고 있는 구절들이 떠오르게 되었다.

특히 필자는 고교 시절에 꽤 많은 노력을 해야 된다고 강제 받았고, 그만큼 꽤 많은 노력을 했었지만, 늘 노력하는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때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떠올렸고, 이후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장에 적었던 구절이 바로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였다.

많은 고사성어(故事成語)들이 중국의 역사서나 경전 등 고전에서 비롯되는데,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말도 고전에서 찾을 수 있다. 성리학을 확립시킨 주희(朱熹)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양기(陽氣)가 발하는 곳에는 쇠와 돌도 또한 뚫어진다. 정신이 한 번 이르면 무슨 일이 이뤄지지 않겠는가?

이 구절에 ‘정신이 한 번 이르면 무슨 일이 이뤄지지 않겠는가?’에 등장한다. 이 구절이 바로 “정신일도하사불성”의 해석이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주희가 성리학을 확립시켰고, 그 성리학이 중국, 한국, 일본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상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정신일도하사불성”이라는 말이 성리학을 배경으로 등장한 고사성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일체유심조”의 뜻은 “모든 것[일체(一切)]은 오로지[유(唯)] 마음이 지어내는 것[심조(心造)]”이라는 뜻이다. “일체유심조”의 경우 불교를 배경으로 쓰이는 고사성어다.(조직폭력배들의 문신에 종종 등장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착하게 살자”만큼이나 조직폭력배의 문신에 어울리지 않는 구절이라고나 할까?) 이 사상을 불교의 주요 경전 중 하나인 『화엄경(華嚴經)』의 중심사상인데,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비롯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만일 사람들이 삼세일체불을 알려고 한다면 마땅히 법계의 본성이 모두가 마음의 짓는 바에 달려있음을 보라(若人欲了知 三世一切佛 應觀法界性 一切唯心造)

여기에서 삼세일체불이라는 것은 과거불, 현재불, 미래불 전부를 뜻하는데, 과거불은 석가모니가 태어나기 전에 석가모니에게 그가 부처가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주었다는 연등불(燃燈佛)을 비롯한 과거7불(석가모니도 포함됨), 현재불은 우리가 고타마 싯다르타라고 알고 있는 석가모니, 미래불은 미륵불이다. 이들을 모두 아는 것은 불법의 본성이 모두 우리 마음과 마음을 쓰는 것에 달려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사상은 불성(佛性)이나 진여(眞如 : 사물 그대로의 모습. 우주 만물의 근간이 되는 평등한 절대 진리)가 나의 마음이나 중생의 마음[망심(妄心)]과 하나라는 “일심(一心)”사상을 드러낸다.

일체유심조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일화가 바로 원효(元曉)의 해골물 이야기이다.  원효는 661년(문무왕 1) 의상(義湘)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던 중 동굴에서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서 물을 마셨는데, 그 물이 매우 맛있었지만, 깨어보니 그 곳은 무덤터였고, 마셨던 물은 해골 안에 들어있는 썩은 물이었다. 그리고 심하게 토하고 난 뒤 원효는 홀연히 깨달음을 얻어서 유학길을 포기했다는 그 유명한 일화다. 《속고승전(續高僧傳)》에 따르면, 원효가 당시 깨달았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마음이 일어나면 만법이 생기고 마음이 멸하면 만법이 소멸한다.(心生故種種法生 心滅故種種法滅)

“정신일도하사불성”의 정신(精神), “일체유심조”의 “심(心)”은 공교롭게도 모두 “마음”으로 번역 가능하다.(물론 “정신”의 경우 “마음”이라고만 번역되긴 힘들다.) 적어도 성리학과 『화엄경』에서는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마음만 한 곳으로 모으면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성리학과 『화엄경』이 마음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 제가 최근에 관심을 가지는 사안 중 하나가 “몸과 마음, 그리고 이로 인해 파생되는 것들”에 관하여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당분간 칼럼에서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룰 예정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와 관심을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