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는 다 떨어지는데 결실은 없고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
난항 겪는 예산소위 구성…더불어민주당은 난색
김성태-김관영의 속내, 힘든 숙제 안고 있어
법정시한 넘기면 결국 준예산 편성 가능성도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뉴시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뉴시스

모래시계 예산 정국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길이 없다. 예산심사를 위한 소위 구성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 소집에 불참했다. 그야말로 예산 정국은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예산안 심사 법정시한인 오는 12월 2일이면 모두 떨어진다. 그 이전에 예산안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예산 정국임에도 야당은 도박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모래시계는 한정된 모래가 아래로 다 떨어지면 그 기능을 상실한다. 예산 정국의 모래시계는 법정시한인 12월 2일로 맞춰져 있다. 그때까지 여야의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정부 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 상정된다. 물론 야당이 반대해 부결될 가능성이 높지만, 부결되더라도 준예산 편성 등으로 이어져 야당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국이다.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전에는 예산안 정국이 야당에게는 가장 유리한 카드였지만, 국회선진화법 통과 이후에는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최근 야당의 행보는 도박을 하는 듯한 모습이다. 예산심사를 위한 소위 구성을 16일까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구성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오는 30일 본회의를 열어 예산안 처리를 하기로 합의를 한 점을 감안한다면 보름도 남지 않은 시간이다. 모래시계의 모래는 이제 그 끝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 아직까지 소위 구성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예산안 심사에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가 된다. 470조원이라는 슈퍼예산을 제대로 심사하지 못하면 졸속심사가 된다. 이는 국민에게 있어 가장 큰 고통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따라서 야당이 제대로 된 심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야당은 국회 의사일정 보이콧을 선언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예산안 심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예산안 심사에 출석해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시스

예산 정국…절대 불리한 야당

이처럼 예산안 정국이 꼬여가면서 가장 애가 타는 사람은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다. 김 장관은 예산안 정국을 끝으로 물러나기로 돼 있다. 때문에 예산안 정국에서 여야가 아무런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고, 준예산 편성으로 가게 된다면 김 부총리로서는 끝마무리가 깔끔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이에 김 부총리는 지난 13일 여야 4당 원내대표는 만나 내년도 예산안을 법정시한까지 처리해달라고 호소했다. 김 부총리는 후임까지 정해졌지만, 예산안 처리의 책임을 지고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특히 김 부총리는 “야당의 건설적 비판과 제안을 수용하겠다”면서 “국회에서 처리해준다면 내년도 예산이 경제 역동성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언급하며 예산안 처리에 협조를 당부했다.

이처럼 예산안 정국이 꼬이는 이유는 자유한국당 김성태, 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 인사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명래 환경부 장관 임명 강행에 반발하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경질과 함께, 고용세습 의혹과 관련된 국정조사 실시를 요구했다.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조사 실시는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지만, 조국 수석 경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라며 반발하고 있다. 아울러 보수야당이 민주당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를 내세워 협상을 하고 있다면서 그 속내가 무엇이냐를 놓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분명 예산 정국은 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지만, 현재 보수야당 원내대표들은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집권여당은 야당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 대치 국면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치 국면이 장기화되면 오는 30일 예고된 본회의에서 예산안 처리는 사실상 힘들어지게 된다. 법정시한인 12월 2일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기한 내 예산안 처리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산안 정국은 안갯속을 헤맬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는 계속해서 야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를 내밀며 협상에 임하라고 다그치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사실 정치권에서 야당 원내대표들이 조 수석의 경질을 요구하고 나선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는 집권여당이 받아들일 수 있는 카드를 내밀어야 밀고 당기기를 하는데 여당이 받아들일 수 없는 카드를 내밀었다는 것은 사실상 협상을 하지 말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해석도 있다. 이와 관련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무리한 정치공세라면서 비판을 가하고 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 16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서울시와의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야당이 대통령의 정당한 인사권 행사를 문제 삼아 무리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어 정기국회가 매우 걱정된다”고 밝혔다. 또한 원내대표를 지낸 우상호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한국 헌정 사상 가장 황당한 보이콧”이라고 지적했다. 이형석 최고위원은 예산정책협의회에서 두 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대해 “정부와 서울시가 채용 비리를 저지른 것처럼 야권이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현혹하는데 선제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또 야당의 고질적인 국회 파행이라고 하는데, 야권 교섭단체가 결기 있는 행동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참담한 상황을 누가 만들었느냐”고 반문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후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는 민주당만 결심하면 되는데 청와대와 박원순 서울시장 눈치를 보느라 못하고 있다"며 "언제까지 채용 비리를 덮기 위해 국회를 마냥 공회전시킬 것이냐”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도 이날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이 국회를 버리니 국회가 정부를 버리는 거 아니냐”라고 질타했다. 이처럼 집권여당이 수용하지 못할 조건을 야당이 내건 상황에 대해 일각에서는 야당의 또 다른 노림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벼랑 끝 전술 펼치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내년 2월 전당대회를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 아직까지 김 원내대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정치권에서는 공공연한 소문이 됐다. 그런 상황에서 12월 중순 원내대표 자리에서 그만두기 전에 김 원내대표로서는 많은 결실을 맺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혁혁한 결실을 당에 보여줘야 당 대표 주자로 우뚝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김 원내대표가 출산주도성장 정책을 내세웠기 때문에 새해 예산안에서 출산주도성장과 관련된 예산을 따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김 원내대표는 정부안 가운데 20조원을 삭감해 출산주도성장에 사용한다는 계획까지 세웠다. 이에 일자리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대신 출산주도성장 예산을 대폭 증액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따라서 새해 예산안 정국을 최대한 이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이유로 예산소위 구성을 통한 예산안 심사보다는 여야 원내대표 합의를 도출할 가능성도 높다.

김관영 원내대표로서도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원내대표 자리에 앉은 후에 별다른 소득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김 원내대표는 선거법 개정이라는 결실을 맺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들로 미뤄볼 때, 두 원내대표가 벼랑 끝 전술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결실을 얻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문제는 이로 인해 앞서 언급한 대로 졸속심사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다소 느긋한 모습이다. 여야 합의를 이뤄내지 못하면 정부원안이 국회 본회의에 자동부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당으로서는 예산안 정국 이후의 상황도 봐야 한다. ‘유치원 3법’, ‘탄력근로제 관련 법안’, ‘규제완화 법안’, ‘공수처 법안’ 등 각종 민생법안 등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단순히 예산 정국만 따진다면 민주당으로서는 급할 것이 없지만, 야당 협조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 각종 민생법안 처리까지 생각한다면 민주당으로서는 정상적인 국회 일정이 진행돼야 한다. 그러나 두 원내대표는 국회 의사일정을 보이콧하며 앞으로 야당의 협조가 없이 각종 법안 처리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난 15일 국회 본회의는 그나마 비쟁점 분야 법안 처리이기 때문에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가 열린다면 법안 통과는 충분히 된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쟁점분야 법안 처리에 있어 야당의 협조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고용세습 국정조사 실시 요구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와 ‘조 수석의 경질’은 절대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에 야당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민주당으로서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따로 분리를 시켜서 바른미래당만이라도 국회 의사일정에 복귀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민주당이 선거법 개정 문제를 꺼내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분열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측했다. 즉, 선거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임할 테니 바른미래당만이라도 국회 의사일정에 복귀해달라고 요청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 패싱론’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과거에도 몇 번씩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채 국회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지속적으로 나왔다. 따라서 이번에도 충분히 그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은 높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뉴시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 ⓒ뉴시스

새해 예산안의 향방은 어디로

여야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최악의 시나리오는 정부 원안 그대로 국회 본회의에 자동상정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야의 표결 대결이 불가피하다. 정치권에서는 표결 대결로 간다면 부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보이콧을 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반대표를 던질 것이고, 나머지 소수 야당과 민주당 내부에서도 일부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년 1월 1일 전까지 새해 예산안 심사를 다시 해 합의된 예산안을 국회 본회의에 재상정해야 한다. 만약 1월 1일 이전까지 새해 예산안 처리를 하지 않게 된다면 준예산을 편성해야 한다. 준예산이란 국가의 예산이 법정기간 내에 성립하지 못하는 경우에 정부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전회계년도 예산에 준해 집행하는 잠정예산을 말한다. 이로 인해 집권여당이 비난받는 것은 물론이고, 야당들, 특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에게는 더욱 거센 비난의 화살이 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다면 국회 무용론과 더불어 여론 역시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19일 열리는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원내대표의 정례회동이 새해 예산안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문 의장 역시 국회 파행에 대한 심각성을 알고 있으며, 여야 원내대표도 그 후폭풍이 상당히 거세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적인 합의가 이뤄질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있다. 다만 여야 원내대표의 의견이 워낙 차이가 크기 때문에 합의를 이뤄내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여야 모두 출구전략을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 무용론이 더욱 증폭되면서 여야 모두 부담이 상당히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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