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해까지 이른 가정폭력, ‘학대예방경찰관’ 인력 확대 필요성 높아져
살해까지 이른 가정폭력, ‘학대예방경찰관’ 인력 확대 필요성 높아져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8.11.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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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 가정폭력 시달리다 살해돼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안 국회 계류…법 개정 진전 없어
피해예방 위해 가정폭력 전담 ‘학대예방경찰’ 충원 필요
여성단체 “가해자 격리조치·형사처벌 등 강력 대응해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48)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전 부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김모(48)씨가 지난달 25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10월 22일, 서울 강서구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서 40대 여성이 피살됐다. 피의자는 피해자의 전남편 김모(48)씨였다.

피해자는 김씨와의 사이에 세 명의 딸을 두고 있었다. 김씨의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피해자는 딸들을 위해 20년을 버티다 결국 4년 전 이혼한 뒤 딸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김씨는 이혼 후에도 시도 때도 없이 피해자를 찾아와 죽이겠다며 협박했다.

피해자는 김씨를 피해 6차례나 이사를 다녔다. 임시조치를 통해 김씨에게 접근금지명령도 내려졌으나 그는 피해자 주변을 지속적으로 맴돌면서 살해 계획을 세웠다. 피해자는 김씨가 자신의 주변을 맴도는 것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못했다. 신고해봤자 김씨에게는 과태료만 부과될 뿐 징역 등 격리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보복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딸은 사건발생 다음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입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을 통해 “끔찍한 가정폭력으로 인해 엄마는 아빠와 살 수 없었고 이혼 후 4년여 동안 살해협박과 주변가족들에 대한 위해 시도 등 많은 사람들이 힘들었다”며 “엄마는 늘 불안감에 정상적인 사회활동을 할 수 없었고 보호시설을 포함 다섯 번의 숙소를 옮겼지만 온갖 방법으로 찾아내 엄마를 살해위협 했으며 결국 사전답사와 치밀하게 준비한 범행으로 딸이자 엄마는 허망하게 하늘나라로 갔다”고 호소했다.

이 사건 외에도 가정폭력으로 인한 피해는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그럼에도 경찰과 사법당국은 피해자 보호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때문에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가정폭력처벌법) 개정과 가정폭력을 점담하는 학대예방경찰관 인력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페이지>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 개정해야”

현행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의 목적을 명기한 제1조는 ‘이 법은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해 환경의 조정과 성행(性行)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을 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며 피해자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보다는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이에 이 목적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 12일 한국여성의전화,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등 30개 단체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 중심의 가정폭력 처벌법 개정을 촉구했다.

이들은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범죄를 가해자 개인의 ‘성행의 문제’로 규정하고, 다른 범죄와 다르게 ‘형사처벌이 아닌 보호처분’을 통해 ‘가정의 평화와 기능을 회복’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다”며 “이는 가정폭력을 사적이고 경미한 문제로 바라보는 잘못된 인식과 가정 유지에 대한 맹목적이고 비합리적인 신념에 입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정폭력범죄 사건은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형사처벌보다는 검찰 조사과정에서 사건 대다수가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등으로 불기소되거나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되고 있다. 

법무부에 따르면 2016년 접수된 가정폭력사범은 5만4191명이다. 이 중 4527명(8.5%)이 기소됐으며 2만7273명이 불기소, 2만311명이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됐다.

또 가정폭력 사건 가해자에게 상담을 조건으로 기소를 유예하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제도는 처벌로서의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보호사건으로 송치돼도 불처분 및 상담위탁 위주로 처분돼 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가정폭력 사건의 처벌 수위가 경미해 가해자들이 가정폭력을 범죄행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백혜련, 위성곤 의원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등 관계자들이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백혜련, 위성곤 의원과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등 관계자들이 가정폭력처벌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피해자·신고자 보호 미비

가정폭력처벌법은 목적조항뿐 아니라 많은 조항에서 피해자 및 신고자를 보호하기 어려운 구조를 띠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 제4조 제4항은 ‘누구든지 가정폭력범죄 신고자에게 그 신고행위를 이유로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고 정하고 있으나 이를 위반할 경우 제재할 수 있는 조항은 없다.

가정폭력 신고자의 경우 신변노출 위험·보복 우려가 크지만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또 현행법은 가정폭력 범죄에 대해 형사처벌 또는 보호처분 중 한 가지를 선택하도록 하는 이원적 구조를 취하고 있는데, 반복적인 가정폭력을 줄이기 위해서는 가정폭력행위자의 성행교정이나 재범방지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 밖에도 같은 거주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가정폭력범죄의 특성을 감안해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접근금지처분 및 피해자보호명령 등 가정폭력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두고 있으나 이를 위반해도 벌금형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실효적인 수단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가정폭력처벌법 제4조는 아동의 교육과 보호를 담당하는 기관의 종사자와 그 기관장, 의료인 및 의료기관장, 복지시설 종사자 및 기관장, 사회복지 전담공무원, 구조대·구급대원 등이 직무를 수행하면서 가정폭력범죄를 알게 된 경우에는 즉시 신고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동법 제5조는 경찰에 진행 중인 가정폭력 신고가 접수된 경우 즉시 현장에 출동해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한 뒤 범죄를 수사해야 한다. 이 밖에 피해자가 긴급치료를 필요로 할 경우 의료기관으로 인도하고, 피해자가 동의한 경우 가정폭력 관련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 인도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경찰은 피해자에게 가정폭력행위 재발 시 퇴거 등 격리, 접근 금지, 위탁, 유치 등 임시조치를 신청할 수 있음을 통보해야 한다.

그러나 가정폭력범죄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이 같은 조치가 실제 효과를 발휘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가정폭력을 ‘범죄’가 아닌 ‘가정사’에 불과하다고 여겨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강서구 아파트 살인사건 피해자의 딸은 2015년 2월 가해자의 폭력을 처음 신고했으나 경찰은 2시간 만에 가해자를 풀어줬고 신고자에 대한 추가 조사는 진행하지 않았다며 경찰의 가정폭력 사건 처리과정을 지적했다.

또 현행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신고의무자를 규정하고 있지만 신고자 보호를 위한 규정이 마련되지 않아 적극적인 신고를 기대하기 어렵다. 가정폭력 상담소 등 관련 시설 종사자가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신변의 위협을 받음에도 적절한 보호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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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필요…법 개정 움직임

제도의 허점을 막기 위해 국회에서도 움직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 등 의원 11명은 지난 8월 28일 가정폭력범죄 신고자에 대한 신변안전조치 마련을 통해 신고의무자가 신고를 꺼리지 않도록 하고 가정폭력범에 대해 형벌과 성행교정·재범방지 교육 수강 등을 아울러 처하는 제도를 도입하는 내용의 가정폭력처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개정법률안은 현재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같은 당 우상호 의원 등 의원 12명은 지난해 8월 11일 보복범죄의 가능성과 신변노출의 위험이 높은 가정폭력범죄, 아동학대범죄 신고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특정범죄신고자 등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 역시 현재 법사위 계류 중에 있다.

또 바른미래당 권은희 의원 등 의원 12명은 지난 16일 접근금지처분 등을 위반한 가정폭력행위자에 대해 징역형만으로 처벌하도록 해 접근금지처분 등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피해자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의 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가정폭력처벌법 개정법률안은 총 18개로, 이 중 상당수가 ▲피해자의 안전과 인권 보장을 중심으로 목적조항 수정 ▲가해자 격리 및 체포 의무화 등 사법경찰관리의 현장 조치(응급조치/긴급임시조치/임시조치 등) 강화 ▲상담조건부 기소유예 폐지, 가정보호사건으로의 처리 폐지 또는 제한 등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형사처벌 원칙 수립 ▲수사·재판절차 상 피해자의 안전과 권리 보장을 위한 제도 강화 등 가정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피해자의 인권보장을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하지만 가정폭력처벌법 개정은 도무지 진척이 없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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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O’ 인력 충원으로 가정폭력 예방

증가하는 가정폭력 등 학대에 대처·예방하고자 지난 2016년 3월 초 학대예방경찰(APO, Anti-abuse police officer) 제도가 도입됐다.

APO는 노인·여성·아동·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학대사건을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가정폭력 등 학대사건이 꾸준히 증가하는데 비해 인력이 부족해 업무부담이 큰 것이 현실이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1월 발행한 ‘가정폭력 전담 경찰관 제도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전국 경찰의 APO 배치 현황은 334명이며, 지역별로는 서울 85명, 경기 남부 52명, 부산 20명, 인천 19명, 대구 18명, 경기 북부 15명 등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경우 85명의 APO가 재발우려가 있는 2117가정을 관리하고 있다. 1인당 관리가정은 2가정에서 56가정에 이를 정도로 업무 편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지난해 12월 주최한 ‘가정폭력 경찰대응 전면쇄신을 위한 긴급정책토론회’에서는 가정폭력, 아동학대, 노인학대 등을 통합 지원하는 학대예방경찰관 인원이 매우 적어 목적에 부합하는 실효성을 담보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 10월 19일 국정감사에서 김기출 경기북부지방경찰청장은 APO의 업무부담이 크다며 인력조정 및 확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때문에 APO를 재발우려 가정 수에 맞춰 재배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은 “학대예방 경찰관이 세심한 모니터링을 진행할 수 있도록 인력확충 등 업무부담 경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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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폭력 가해자 엄벌 필요“

가정폭력은 ‘가정사’, ‘개인사’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국가와 시민사회가 나서 예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담인력을 확충하고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인권문화국 조재연 인권팀장은 “가정폭력처벌법은 ‘폭력 가해자와의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으로부터 침해받은 가족구성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며 “제1조 목적조항을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및 그 절차에 관한 특례를 규정함으로써 가정폭력범죄의 피해자와 가정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하고 인권을 보장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목적조항뿐 아니라 전면 개정을 통해 가정폭력범죄에 대한 형사 처벌 원칙과 화해·조정 절차 금지 원칙 수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 팀장은 “가정폭력 피해자 및 신고자 보호를 위해 가정폭력 현장출동 시 가해자 임의동행 등 현장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해 실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임시조치 위반 시 체포 및 형사처벌 등 엄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검찰·판사 등 법조인과 경찰에 대한 가정폭력 및 성평등 인권교육, 가정보호사건 담당자 대상 교육 등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국가정폭력상담소협의회 유향순 상임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가정의 보호·유지에 목적이 있다 보니 피해자 보호가 더 어려워진다”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엄벌을 강조하도록 목적조항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가해자의 성행교정을 위한 보호처분과 형사처벌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며 “가해자들의 인식을 고치는 성행교정은 재범률을 낮추는데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유 상임대표는 “가해자가 접근금지 등 임시조치를 위반했을 때 처벌이 과태료에 그쳐 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며 이를 벌금형 이상으로 개정해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의 경우 반의사불벌죄이기에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형사 처벌할 수 없다. 피해자가 가족구성원의 형사처벌 여부를 결정하기는 어렵다”며 “반의사불벌죄에서 제외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