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인간의 몸을 어떻게 보는지의 문제는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몸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우주관이 들어있다. 한의학에서는 우리의 몸에 온 우주가 들어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몸에 대한 시각과 그 변천사를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어떠한 우주관 속에서 살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에 대한 시각의 변천사 속에서 사상사의 전환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서구의 역사에서 몸을 어떻게 바라봤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적어도 고대 유럽 사회에서 몸은 마음과 대비되는 존재였으며, 그 구성보다는 몸이 추구하는 것과 그 결과, 소멸된 이후가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모습은 박상언의 연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박상언은 연구에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쾌락주의자와 오르페우스교에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봤는지 소개했다. 쾌락주의자들은 쾌락이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자 종국이라고 간주하고, 비록 정신적 쾌락에 비해 수준이 낮지만, 육체의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반면에, 동시대의 오르페우스교[Orphism : B.C. 6~5세기에 유행했던 고대 그리스의 밀교(密敎)로 페르세포네, 디오니소스 등을 신봉한 종교. 필자 주.]에게 몸은 순수한 영혼을 감금하는 무덤으로 여겨졌다. 그들에게 몸은 금욕의 대상이었고, 영혼은 정화돼 사멸의 육체에서 벗어나 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했다. 

이후 생겨났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몸을 그리스도와 아담의 원죄를 중심으로 성스러움과 속됨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봤다. 즉 인간의 몸은 신이 자신을 닮게 만든 성스러운 피조물인 동시에 유혹에 빠진 결과 신에게 영생의 박탈, 노동과 출산의 고통을 선사 받은 타락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참동안 특정 종교가 몸과 마음을 바라보는 시각은 유럽과 미국 사회를 점령했다. 특히 수도원에서 시작된 극단적인 몸에 대한 절제는 세속 사회로 확산됐고, 동시에 몸의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모습이 수도원 내부까지 침투하는 일도 공공연히 발견됐다.

이러한 특정 종교의 몸과 영혼에 대한 분리와 몸에 대한 이중적 시각, 그리고 행동의 결과와 사후 몸의 미래에 대한 언급은 앞에서 언급한대로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데 이러한 시각을 깨뜨리는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몸에 대한 관점을 제공하는 주체는 종교에서 과학과 합리성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전우용은 필자와 함께 제작했던 팟캐스트인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몇 가지를 소개했다.

첫 번째가 해부학(解剖學)의 발전이었다. 고대 중국, 이집트, 그리스 등에서 해부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함부로 해부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됐고, 이것은 기존의 특정 종교의 몸에 대한 시각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러던 중 안드레아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가 1543년에 쓴 책인 『인체구조론(De Humani Corporis Fabrica)』 이 출간됐다. 여기에는 근육과 심장, 신경, 뼈, 혈관 등에 대한 정확한 해부학적 그림이 실려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과학기술의 발달이라고 볼 수 없다. 기존에 “신이 자신을 닮게 만든 신의 피조물”이라는 몸의 지위는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와 동일시되기 시작했다.

두 번째가 유리의 발달이었다. 유리의 발달은 유리창의 발달과 거울의 발달로 이어진다. 유리창의 경우 기존에 집 안으로 들어오기 힘들었던 태양광이 집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태양광에 의한 살균이 좀 더 용이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의학의 발달과 맞물려서 전염병을 크게 줄였고, 나아가서 인류의 평균 수명을 늘렸다. 또한 거울의 발달은 자신의 몸에 대한 관심을 확대했다. 기존에 자신의 모습을 물에 반사된 모습이나 돌을 반들반들하게 갈아서 그것에 비추는 것이 전부였다. 이것은 자신의 얼굴이나 외모에 대한 많은 왜곡을 가져왔고, 잘 보이지도 않았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에 관심을 크게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거울의 발달로 인해 자신의 몸을 실제와 거의 비슷하게 볼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자신의 외모와 몸을 가꾸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세 번째는  다윈(Charles Darwin)에 의해 주창된 진화론이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기존에 “신의 피조물”이었던 인간이 영장류, 포유류의 일부가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인간이 특정 종교에서 신의 모습을 닮게 만들고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 아니라, 원숭이와 비슷한 존재에서 점차 진화한 존재가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현재까지도 끊임없는 논란 속에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인간의 몸을 바라보는 시각의 주도권은 특정 종교가 아닌 과학이 쥐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환점들은 종교에 대한 과학의 승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과학은 우리에게 편안함과 윤택함을 준 측면도 있다. 본 칼럼에서 몸에 대한 시각 가운데 무엇이 더 우월한지, 무엇이 더 사실에 가까운지의 여부를 말하고 싶진 않다. 확실한 것은 (필자가 늘 강조하는)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인 “상상력”이라는 것이 적어도 몸에 대한 관점에서는 상당히 제거되는 순간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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