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기 실적 부진, 주 52시간 근무 책임론 솔솔
확률형 아이템 논란 촉발된 규제 확산 움직임
과도한 과금·크런치모드 등 사회적 불신 초래
게임업계, 자율규제 가속화…신뢰 회복 시급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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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장밋빛 고공성장 기대감을 가졌던 게임업계가 최근 침체의 길로 빠진 모습이다. 당장의 실적 부진은 물론 앞으로의 성장 기대감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그 원인으로 국내 각종 규제 등을 원인으로 찾는 모습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과금 수익구조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게임업체들이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도 외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분기 국내 게임업계 실적이 전반적으로 부진하면서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대표적인 게임업체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영업이익은 1년 만에 반토막 났고 중견 게임업체들의 실적도 부진하긴 마찬가지다.

6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엔씨소프트는 지난 3분기에 매출액 4038억원, 영업이익 1390억원을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44%, 58% 각각 감소했다.

넷마블도 지난 3분기 영업이익이 673억원으로 전년보다 39.8% 감소했다. 게임빌과 컴투스도 매출은 각각 6.2%, 4.7%, 영업이익은 64.7%, 23% 감소세를 보였다. 일본에 상장된 넥슨과 검은사막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펄어비스 정도만 선전했다. 넥슨의 경우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15% 늘어난 693억3200만엔(약 6961억원), 영업이익은 4% 증가한 237억1200만엔(약 2381억원)을 기록했고 펄어비스도 매출은 323.8% 증가한 1170억원, 영업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297.2% 증가한 603억원을 기록했다.

주요 게임사의 실적 부진 소식은 자연스럽게 업계 부진과 침체 우려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올 3분기 대형게임사들이 전년 대비 저조한 실적을 거두면서 침체된 게임업계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당장의 실적 부진 뿐 아리나 중국을 필두로한 외산게임의 공세적 진출과 점점 치열해지는 시장의 경쟁 등에 따른 우려가 기저에 깔려있는 분석이다.

한풀 꺾인 성장세, 원인은 주 52 시간 근무제 때문?

게임업체 침체와 관련해 제도에 의한 규제 강화 여부는 뜨거운 화두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사회적 시선과 이에 따른 규제 강화 움직임이 산업 침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언론과 증권가에서 게임업계 성장세가 꺾인 원인으로 올 초 도입된 주52시간제가 지목돼 눈길을 끌고 있다. 올 7월부터 300명 이상 사업장에 대해 의무화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야근과 특근이 사라지면서 애초 예정됐던 신작 출시가 늦어졌고 그에 따라 3분기 실적이 직격탄을 맞았다는 해석이다.

이창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이달 8일 컴투스에 대한 보고서를 통해 “개발자 근무시간 주 52시간 적용, 국내외 모바일 게임 시장 트렌드의 잦은 변화, 사용자 눈높이의 상승 등으로 인해 기대 게임들의 출시 일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며 “이에 대한 불확실성은 2019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 공식적인 입장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이 같은 진단에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넷마블 권영식 대표는 지난 8일 열린 컨퍼런스콜에서 “근로환경 변화로 일하는 문화를 개선하면서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근무환경 변화가 수익성 악화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넥슨, 펄어비스 등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했음에도 실적이 오른 업체들도 있다. 넥슨은 신작 수가 전년만 못했고 ‘검은사막’과 ‘뮤’ 지식재산권(IP)으로 수익을 올린 펄어비스 또한 신작 개수와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엔씨소프트도 작년 ‘리니지 M’ 실적의 기저효과일 뿐이고 게임빌과 컴투스도 신작 출시 지연이 아닌 해외사업 전략 변화 등 주요인이란 분석도 있다.

특히 신작 출시 지연은 근무환경 변화 보다는 빠른 시장의 트렌드 변화와 이에 따라 길어지는 제작기간 등 시장 변화요인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일부 대형게임사들은 수년 전부터 유연 근무제 등 주 52시간 근무제와 상응하는 근로형태를 도입해 왔기 때문에 이번 분기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이다.

또 게임업계가 신작 출시를 앞두고 근무 강도를 높이는 이른바 ‘크런치모드’와 같은 열악한 노동 문제가 주 52시간 제도 도입을 자초했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확률형 아이템’이 불러온 규제 움직임

게임산업 규제 화두를 수면위로 올린 것은 이보다 앞서 불거진 ‘확률형 아이템’ 논쟁이다. 확률형 아이템의 적절성 논란은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서 다뤄진데 이어 정부도 이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시사 하면서 관심이 증폭됐다.

확률형 아이템은 고가 과금 유저 중심의 유료 아이템 구조 부작용을 개선하기 위해 대안적 취지로 도입됐지만 낮은 아이템 획득 확률과 일부 업체들의 불투명한 확률 정보 공개 등으로 이용자들의 불신을 키우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사실상 과도한 과금을 유도하는 도박과 다름없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용자들에게 공평하게 아이템을 공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리니지M’으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엔씨소프트의 김택진 대표는 지난달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확률형 아이템은 부분 유료화의 일환으로 도입한 것으로 사행성을 유도하고 있지 않다”며 “이용자들은 게임에서 돈을 내는 베팅 행위를 하지 않는다. 확률형 아이템은 이용자들에게 가장 공정하게 아이템을 나눠주기 위한 기술적인 장치”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확률형 아이템’ 논란은 규제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이날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게임산업협회와 업무 협약을 맺고 더 강화된 자율 규제를 하고 있다”며 “게임물 관리위원회에서 공동으로 분석하고 바람직한 정책의 방향을 찾고 있다”고 규제 가능성을 시사했다. 앞서 이재홍 게임물관리위원장도 “국내 게임업계의 확률형 아이템에 수익성 의존도가 과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앞서 공정위는 게임사들이 확률과 획득 기간 등의 정보를 허위로 표시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게임을 사행산업으로 분류해 중독예방치유부담금을 내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우리나라도 이 같은 흐름을 거스르긴 쉽지 않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에 따르면 벨기에에서는 지난 4월 확률형 아이템을 도박으로 규정했고 유럽에서도 확률형 아이템을 활용한 게임은 사행성 게임이라고 규제를 준비하고 있다.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정부의 규제 도입이 예상되면서 국내 게임업체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수익 창출 방식에 대한 문제점도 부각되고 있다. 게임업계가 수익성이 보장된 확률형 아이템 방식의 부분 유료화 수익구조에 안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경험적으로 확실한 수익이 보장된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유사한 확률형 아이템 과금 방식을 답습, 새로운 수익구조 개발에는 요원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추가 과금요소 없는 페키지 게임 등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높은 능력치를 요구하는 장비 아이템 과금 아이템 없이는 정상적 게임 진행 자체가 어려운 구조 허다하다. 사실상 월정액 과금 방식의 게임 보다는 부분 유료화 방식이 지배적인 게임 콘텐츠 구성은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면 더욱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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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가 발목? 불신 자초한 게임업계

업계에서는 ‘게임=도박’이라는 부정적 시선과 규제의 강화가 게임산업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밖으로는 최근 가장 큰 수출시장인 중국이 게임 총량과 청소년 게임시간을 제한하는 등 게임을 규제하고 있어 국내 업체들의 중국 시장 진출이 불투명해졌고 안으로는 웹보드게임·PC온라인게임 결제한도 등의 규제로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확률형 아이템의 규제는 곧바로 수익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크게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정부 규제 완화 및 자율규제 확대 등와 관련해 게임산업계가 이를 위한 충분한 사회적 신뢰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자성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주 52시간제도 도입이나 확률형 아이템 논란에 따른 규제 강화 움직임도 사실상 게임업계가 자초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임의 완성도를 높여 경쟁력을 창출하려는 노력보다는 상업성과 수익성에만 집중해온 업계 풍토가 사회적 불신을 스스로 자초했다는 분석이다.

게임업계에서는 자율규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업계를 대변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는 지난해부터 온라인게임 결제한도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이달 16일 사단법인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를 출범시켜 자율규제 모니터링 강화, 청소년 이용자 보호 등 게임 관련 정책을 다룰 다양한 분과 위원회를 추가하는 등 게임산업 자정 노력에 적극 나서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업계의 자율규제 움직임이 아직까지 소비자들의 공감을 크게 이끌어 내지는 못하는 분위기다. 최근 한국게임산업협회가 매월 발표하는 자율규제 모니터링 월간보고서 분석 결과, 올 1~6월 자율규제 준수율은 월평균 85.1%로 나타났다. 자율규제 미준수로 공표된 게임 건수는 72건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월평균 준수율(87.3%)과 비교해 2.2%포인트 하락한 것이다. 게임사들이 자체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 정보를 공개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자율규제에 돌입했지만 준수율은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또 협회에서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업체들에게 자율규제 준수를 권고하고 있지만 강제력이 없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남아있다.

이와 함께 게임산업 위기를 진단하기 위해서는 규제 외에도 게임업계 수익 양극화 심화, 시장 트렌드 및 기술 변화 등 산업 구조적에 따른 경쟁력 부재 등 내부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부, 아쉬운 정책 지원도 한 몫

정부 또한 게임산업 위기론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게임업계는 정부의 규제 뿐 아니라 미진한 정책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정부가 게임산업 성장 사다리 펀드 조성, 민관 합동 게임규제 개선 협의체 구성, 해외시장 유통·마케팅 지원 확대 등 약속했던 지원 정책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10월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열린 ‘문체부 게임 산업 정책 평가 및 향후 정책방향 제시’ 토론회에서 위정현 한국게임학회장은 “지난 3일부터 10일까지 학계·산업계·언론계 등 게임업계 전문가들 112명을 대상으로 문체부 정책평가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도종환 장관 취임 이후 문체부의 게임산업 정책은 100점 만점으로 환산할 경우 평균 44점에 불과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해당 설문조사 결과 정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게임업계 최우선 과제로는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개선(57%) ▲게임 생태계 복구(49%) ▲규제개혁(36%) ▲글로벌 진출과 해외시장 대응(25%) ▲인력양성(18%) 등이 꼽혔다.

정부도 이 같은 업계 인식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28일 게임업계 현안을 청취하기 위해 업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가졌다.

이 총리는 “게임이 콘텐츠 수출의 절반 이상을 담당할 만큼 커졌지만 각종 규제, 업계 내부의 양극화,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며 업계 위기의식에 공감을 표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업계 관계자들은 게임 제작·홍보와 젊고 우수한 인력 충원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게임업계에 대한 일부 규제 완화 및 합리화와 관련한 의견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 총리는 “이날 제시된 의견들은 관계부처에서 반영해 연구·검토토록 할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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