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피스(Hospice)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마지막? 슬픔? 아픔? 기자는 10여년 전 말기 암으로 병상에 있던 외할아버지가 호스피스를 권유받자 ‘돌아가시게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거냐’며 눈물짓던 어머니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호스피스=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들이 대부분인 데다가, 기적적으로 병이 완쾌돼 퇴원하는 일은 전무후무하기 때문이겠죠. 누군가를 남겨둔 채 떠나야 하는 사람, 혹은 누군가를 떠나보내야 할 사람이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하는 호스피스에서의 삶이 절망스럽고 두렵다고 여겨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인지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연명을 위한 수많은 의료장비와 약물, 고통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살아온 날을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호스피스에서의 삶은 마냥 슬프지만도, 마냥 아프지만도 않습니다.

<투데이신문>은 호스피스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봤습니다. 삶과 죽음의 가느다란 경계 위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희로애락에 동행했습니다. 경기도 분당 보바스기념병원 호스피스 완화병동(이하 보바스 완화병동) 7일 간의 기록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입니다.

연재에 앞서 취재에 협조해준 보바스기념병원 측에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아울러 떠나신 분들의 명복과 내원 환자들의 쾌유를 빕니다.

*병원 내에서 진행된 모든 취재는 의료진 및 환자들의 동의하에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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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태현정 완화의료 센터장, 정선형 팀장, 박진노 원장, 김용의 사회복지사, 양아름 코디네이터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김OO님, 고OO님, 이OO님, 김OO님, 백OO님, 박OO님 지난주 6분 임종하셨습니다.” 

지난주 임종 환자를 알리는 정선형 팀장의 차분한 목소리가 보바스 완화병동 한 주의 시작을 알렸다. 임종 환자의 명복을 비는 짧은 기도와 함께 무거운 마음을 뒤로한 채 정 팀장을 비롯해 박진노 원장, 태현정 완화의료 센터장, 양아름 코디네이터, 김용의 사회복지사 등이 참여한 의료진 팀 회의가 시작됐다. 의료진 팀 회의에서는 전 주 임종 환자와 내원 환자의 상태, 향후 일정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다.

호스피스에서는 병의 완치가 아닌 그로부터 파생된 통증이나 신체, 심리사회적, 영적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평가와 치료를 병행함으로써 환자의 통증을 예방하거나 덜어주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에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치료(Cure)가 아닌 편안히 죽음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돌봄(Care)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렇다 보니 의료진의 역할도 일반 병동과는 차이가 있다. 보바스 완화병동에서는 내원 중인 환자의 신체나 심리적 상태를 체크하고 적절한 약물이나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자의 가족들까지도 꼼꼼하게 관리하고 있다.

환자와 가족의 관계, 가족의 심리까지도 완화병동 환자들의 건강과 컨디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판단에서다. 때문에 수시로 상담 등 환자 가족들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 중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한 말기 암 환자 가족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50대 남성 환자인데, 남성의 두 자녀는 아버지의 정확한 병세를 알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환자 당사자도 본인이 완쾌돼 퇴원을 할 거라는 기대를 갖고 있어 가족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남성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의료진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부인은 무엇보다 아이들이 충격과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도록 아버지의 상태를 이야기해주길 원했다. 고민 끝에 의료진은 환자 당사자를 제외 한 가족상담을 결정했다.

회의가 끝나갈 무렵 며칠 컨디션이 좋지 않던 한 환자가 임종 증세를 보인다는 얘기가 급히 전해졌다. 주치의는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하고 환자에게 향했다. 남은 의료진도 또다시 무거운 마음을 안고 각자의 위치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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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온실 내부, 집같은 편안한 분위기 조성을 위해 의료장치가 가려지도록 설계했다 ⓒ투데이신문

회의를 마친 후 정 팀장은 바쁜 일정에도 짬을 내 병원을 소개했다. 보바스 완화병동에는 4인실과 1인실을 포함해 총 20개 침대가 설치돼 있다.

특히 보바스 완화병동에는 ‘가온’과 ‘다온’이라는 명칭을 가진 특별한 1인실이 있다. 병원이라기보다는 가정집에 가까운 익숙한 느낌으로 연출했다. 간호사는 마지막은 집에서 맞이하고 싶다는 환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환자분들이 많아요. 집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에서 임종하고 싶은 마음인 거죠. 낯선 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고민 끝에 집 같은 편안함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기로 했어요. 보시다시피 의료장치도 보이지 않도록 가려놨어요.”

햇살방이라는 두 곳의 병실은 임종실이다. 처음 완화병동이 생겼을 때 임종실로 사용되던 공간에 햇살이 비치는 모습을 본 따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비어있는 햇살방의 문을 살며시 열자, 살짝 걷힌 커튼 틈 사이로 햇살 한줄기가 내리쬈다. 햇살방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왠지 모르게 느껴진 두려움이 봄 눈 녹듯 녹아내렸다. 그동안 이곳을 거쳐간 수많은 환자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한줄기 빛으로 달래지 않았을까.

병실 외에도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고 생일 등 환자와 가족들이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가족실’, 불교와 개신교, 천주교를 위한 법당과 기도실도 마련돼 있다. 환자들의 발길이 머무는 곳 하나하나에서 그들을 위하는 의료진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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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바라본 바깥 풍경 ⓒ투데이신문

떠나는 길 외롭고 쓸쓸하지 않도록

“박OO 환자분 △△시 △△분 임종하셨습니다.”

햇살방 문틈 사이로 사망을 알리는 주치의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의료진 팀 회의 중 임종 증세를 보인 환자가 결국 세상을 떠난 것이다. 주치의는 고인이 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고통 없는 곳으로 떠났다며 가족들의 슬픔을 어루만져줬다.

임종이 다가오면 환자는 의식이 떨어지고 잠자는 시간이 많아진다. 또 음식물을 삼키기가 어렵고 호흡이 고르지 않으며 혈압과 맥박이 점점 약해진다. 눈을 꼭 감지 못하고 턱이 아래로 처지기도 하며 소변량이 줄거나 대소변 실금이 생기기도 한다. 이 같은 증상이 나타나면 환자는 햇살방으로 옮겨져 마지막을 준비하게 된다.

의료진은 가족들이 고인과의 시간을 좀 더 보낼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그 사이 완화병동 부팀장 홍재은 간호사가 사후처치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후처치란 그동안 환자의 몸과 연결돼 있던 튜브나 링거를 연결하는 라인 등 각종 의료 장치를 제거하고, 몸을 깨끗하게 정돈해주는 과정이다. 짧게는 30~40분, 길게는 2시간 가까이 걸리기도 한다.

가족들을 잠시 내보내고 환자의 사후처치에 나선 홍 간호사를 따라 햇살방으로 향했다. 보통은 간호사들이 하기 마련이지만 이날은 일손이 부족해 김용의 사회복지사가 홍 간호사를 도왔다.

홍 간호사는 뼈만 앙상히 남은 고인의 몸에서도 그동안 생명을 이어줬던 각종 장치들을 조심스럽게 빼내기 시작했다. 그는 고인의 육신 한 곳 한 곳에 손을 댈 때마다 “아버님 죄송해요”, “아버님 잠시만요”, “아이고 아버님”이라며 고인에게 연신 말을 걸었다. 마치 아직 살아있는 환자를 대하듯 했다. 홍 간호사는 사후 1시간 정도까지는 아직 청각이 살아있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얘기가 있기 때문에 처치하는 동안 계속해서 환자에게 말을 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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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처치에 필요한 갖가지 물품들 ⓒ투데이신문

처치 중 환자가 차고 있던 기저귀에서 변이 새어 나오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병실에 퍼진 냄새가 불편할 법도 하건만 홍 간호사와 김 복지사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능숙하게 처치했다. 급한 상황을 정리한 후 홍 간호사와 김 복지사는 물이 필요 없는 목욕용품을 이용해 고인의 몸 구석구석을 닦기 시작했다. 기분 탓에라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목욕을 마친 고인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미리 요청해뒀던 고인이 생전에 입던 옷으로 갈아입혔다. 말끔히 머리 손질을 하고 핏기없는 입술에도 색을 입힌 후 미소를 띠도록 입꼬리까지 잡아주고 나니 고인의 얼굴은 마치 행복한 꿈과 함께 깊은 잠에 빠져있는 듯 보였다.

두 사람은 미리 준비해 둔 꽃다발을 고인의 품에 올리고 가족들을 불렀다. 임종 선고 후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가족들도 오랜만에 보는 익숙한 남편과 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에 편안한 내색을 비췄다. 홍 간호사와 김 복지사는 고맙다는 가족들의 인사를 뒤로하고 햇살방을 빠져나왔다. 가족들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나는 고인과 함께 한참 동안이나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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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을 준비하는 햇살방 내부 ⓒ투데이신문

환자들이 떠나고 남은 자리까지도 대부분 의료진이 함께 정리한다. 이 일에 누구보다 경험이 많은 박해진 간호조무사에게도 환자가 떠난 자리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환자를 맞이하기 위해 준비하는 건 괜찮았는데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건 좀 무섭더라고요. 특히 임종에 쓰일 꽃다발을 만들 때는 마음이 더 이상했어요. 하지만 일을 계속해서 하다 보니까 환자가 고통에서 벗어나 편안한 곳으로 떠났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처음에 느꼈던 두려움과는 사뭇 다른 감정이 들어요.”

보낸 환자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잊혀지지 않지만 유난히 기억 남는 환자들이 있다고 한다. 나이가 젊거나 오래된 환자, 내 가족을 떠오르게 하는 환자들이다.

“병동 로비에서 TV 구경도 하고 거동도 하던 환자가 어느 순간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그만큼 컨디션이 나빠졌다는 거죠. 또 20~40대 한창나이의 환자나 거둬야 하는 가족들이 남아있는 가장 환자들이 가장 마음에 쓰여요. 2014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이 제 막내아들과 같은 나이였는데 그때 느꼈던 안타까움과 동질감이랑 비슷한 거 같아요.”

“언젠가는 환자가 임종 증세를 보여서 정 팀장이 환자의 아들을 데리러 차를 끌고 학교까지 간 적이 있어요. 아직 앳된 얼굴의 중학생이 교복을 입고서 울고 있는데 어찌나 안타까운지 몰라요. 군복을 입은 자녀가 급하게 달려올 때도 마음이 그렇게 안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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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를 상담 중인 의료진 ⓒ투데이신문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공감

완화병동 의료진은 데스크에서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오전 회진을 마치고 나면 각 환자에게 내려진 처방에 맞게 처치에 나선다. 하지만 복통이나 두통 등 환자가 조금이라도 이상 증세를 보이면 수시로 살펴보고 처치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도 수십 번 병실을 오고 갈 수밖에 없다. 환자를 돌보지 않는 시간에는 바빠서 미뤄뒀던 환자 차트를 기록하는데 여념이 없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의료진은 끼니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하루 종일 종종걸음으로 병동을 종횡무진 할 수밖에 없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환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도맡아 하는 의료진은 힘들고 피곤할 법하건만 환자나 가족들 앞에서는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누가 시켜서도, 필수 업무도 아니지만 항상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일상의 사소한 얘기 하나하나까지도 귀 기울인다. 몇몇 환자는 기자에게 “여기 선생님들은 따로 교육을 받나요? 다른 병원 선생님보다 친절해도 너무 친절해”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물론 의료진도 사람인지라 힘들지 않다고 할 순 없다. 다만 그 이유가 업무가 많거나 혹은 바빠서는 절대 아니다.

“힘든 일이야 많죠. 하지만 그게 업무가 힘들거나 바빠서 때문은 아니에요. 그런 건 상황이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다른 간호사들도 마찬가지지만 환자가 아파하는 걸 지켜보는 게 가장 지쳐요. 통증 조절이 안 된다거나, 가족들의 협조가 어려울 때도 힘들죠.”

“살면서 누군가의 죽음을 맞이할 일이 많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그게 일상이니까 임종으로 인해 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거라는 생각을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사실 가족들도 이 일을 달가워하지 않아요. 헤어짐, 이별은 분명 슬픈 상황이에요. 그렇지만 힘든 시간에서 벗어나 편안한 모습을 보면 덩달아 편안해지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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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케어 중인 의료진 ​ⓒ투데이신문

내가, 혹은 내 가족이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 느끼는 불안함과 두려움은 상당하다. 때문에 그들의 신경은 곤두설 수밖에 없고 이 화살은 고스란히 의료진에게로 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자신들의 몫이라는 게 보바스 완화병동 의료진의 생각이다.

“부모나 남편, 아내처럼 내 소중한 사람이 떠나는 데 예민하지 않은 게 이상하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공감해야 돼요. 환자나 가족이 울면 저희도 같이 울어요. 각별했던 환자는 문상을 가기도 하고요. 환자나 가족이 예민한 건 이상한 게 아니에요.”

“절대 그들을 내 잣대로 보면 안 돼요. 어떤 가족은 하루 종일 매달려 간병하기도 하고, 어떤 가족은 말없이 조용히 같이 있기도 하고, 하루 종일 싸우는 가족도 있어요. 그건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거예요. 하나하나 그 자체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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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호스피스를 죽음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없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365일, 24시간, 1분 1초까지도 고군분투하는 의료진이 있기에 호스피스는 여생을 잘 살기 위한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환자분들 중에 ‘죽으러 왔다’, ‘내쳐졌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속상하죠. 여기 오신 분들의 여생이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어요. 오래 머무르실 수도 있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주어진 시간만큼이라도 당신께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게 저희의 역할이에요. 여생을 잘 살기 위한 곳, 그게 바로 호스피스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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