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소연의 그린라이트㊳] 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인가?
[안소연의 그린라이트㊳] 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인가?
  • 안소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05 14:4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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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 되는 법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 되는 법><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20대 KBS전속 성우 시절, 나는 틈만 나면 주차장에 가서 혼자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책을 읽거나 노트에 뭔가를 끄적거리면서. 

아르바이트 한 번 제대로 안 해보고 입사한 내게 ‘사회생활’이란 이름의 일상은 부딪히는 곳, 닿는 곳마다 송곳처럼 아팠다. 좋은 것이 왜 없었으랴만 그 때의 나는 온 신경을 내 아픔에만 집중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이 무엇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한다. 로또 한 장을 사들고 일주일 내내 입이 헤벌어지는 즐거운 상상만하면서 보낼 수도 있고 속상한 일, 후회되는 일, 걱정되는 일에만 집중하면서 미간의 주름에 영구문신을 새길 수도 있다. 

그 때 나는 한없이 어리석었다.

그래서 혼자인 게 좋았다.

출근길만 아니라면 길 밀리는 것조차 환영이었다. 가족도 없고 직장 사람들도 없이 나 혼자 나만의 공간 안에 오~래 있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안심되고 편할 수가 없었다. 라디오에서 좋아하는 음악이라도 나올 것 같으면 볼륨을 높였고, 비 오는 날이면 와이퍼의 움직임, 물방울에 반사되며 흘러내리는 색색의 빛들을 보면서 좋아했다.

21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출가했던 오빠네 식구가 쌍둥이 육아 때문에 집으로 들어왔다. 

할머니 엄마 아빠 오빠네 식구 넷, 나까지 8명의 식구가 북적이며 살게 되었을 때, 혼자이고 싶은 내 욕망은 절정에 달했다. 하필 그 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아버지 차를 얻어 타고 다닐 때여서 나만의 공간이라는 것이 없었다. 언제든 누구든 작은 내 방문을 열어젖혔다.

결국 S대 입구에 막 새로 생긴 원룸에 전세를 얻었다.

차까지 다시 장만하고 나니 나는 아주 아주 잠깐만 사람들과 섞이고 나면 거의 언제나 오롯이 혼자가 될 수 있었다. 

아, 독립이 이렇게 좋은 거구나!

하지만 혼자 있을 자유를 얻은 대신 몸이 축나기 시작했다. 언제나 냉장고 문만 열면 먹을 것이 있던 우리 집과는 달리 새로 장만한 내 냉장고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강제 절식과 폭식을 거듭했다.

위산과다로 배고픔을 잘 못 참는 나는 어느 아침, 아무리 뒤져도 먹을 것이 없어 곰팡이 핀 밥을 먹고 말았다. 물론 눈에 보이는 곰팡이를 잘 걷어내고서. 배불리 먹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훗. 곰팡이, 별 거 아니군.  

30분쯤 지난 시각, 모두가 시속 10Km로 달리는, 주차장과 다름없는 출근길 강변북로에서 갑자기 신호가 왔다. 아무리 그래도 곰팡이는 너무하지 않느냐는 내 가련한 몸의 항변이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차창 밖을 향해 폭포수 같은 오바이트를 쏟아내고야 말았다. 아, 차라리 혼자 있는 집에서 그랬다면 좋았을 걸... 모든 것이 정지한 것 같던 그 순간 주변 운전자들의 눈과 입이 벌어지던 모습이 지금도 슬로우 모션처럼 떠오른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경험한 바, 혼자서도 잘 사는 사람이 결혼해도 잘 산다.

살림이라는 건 결국 사람을 살리는 일.

밥도 할 줄 알아야하고, 빨래, 설거지, 청소, 정리 정돈, 분리 배출, 쇼핑, 금전관리, 건강관리... 다 잘 해야만 한다.

살림 잘 하는 사람을 그래서 제일 우러러본다. 살림 장인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모두 살린다. 

갑자기 혼자 살기 얘기를 하는 건, 요즘 나와 같이 라디오를 진행하는 20대 초반의 동료 K씨 때문이다. 수 천대 1의 경쟁을 뚫고 최근 한 블록버스터 영화에 당당히 주인공으로 발탁되었으므로 조만간 스타의 반열에 오를 것 같은 그녀가 어느 날 이런 얘길 했다. 부모님이 너무 엄하셔서 집에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그게 참 싫다고, 그래서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오! 노! 네버!!!!!

인간도 동물이므로 장성하면 모두 독립을 원한다. 나처럼 심하진 않더라도 혼자만의 공간을 원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러나 독립을 원하는 것과 결혼을 원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그걸 착각하면 큰 실수를 범하게 된다.

미혼인 분들은 잘 생각해보셔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부모로부터의 독립인지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인지.

그리고 과연 나는 혼자서도 나 자신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인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