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 중인 월요일 오후팀 자원봉사자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오늘도 힘드시겠지만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후 1시, 김용의 사회복지사의 활기찬 목소리로 자원봉사 월요일 오후팀의 일과가 시작됐다. 보바스기념병원 호스피스 완화병동(이하 보바스 완화병동) 자원봉사자들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과 오후로 팀을 나눠 활동한다.

봉사 시작에 앞서 김 복지사와 봉사자들은 환자들의 상태와 정보를 공유하는 짧은 회의를 거친다. 이날 돌봐야 할 환자들 명단을 확인하던 봉사자들은 “오늘 침대가 많이 비었네”, “아 OOO호 환자분 임종하셨나 보네”라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자원봉사팀의 주된 업무는 환자들의 목욕과 다리나 팔의 부종 완화를 위한 림프마사지, 병동 내 환자들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의 일손 돕기다. 요일별로 정서적 지지를 위한 음악, 원예, 네일아트 등 요법도 병행되고 있는데 월요일 오후팀에서는 간식을 제공하는 푸드 요법을 진행하고 있다. 평소 간식 섭취가 어려운 환자들이나 환자 가족들을 위해 영양사와 상의한 후 집에서 손수 준비해 온 간식을 선물한다.

이날의 간식은 노란 달걀물을 입혀 구운 토스트와 가을 단풍처럼 잘 익은 연시 두 조각, 달달하게 입맛을 돋우는 단호박죽. 자원봉사자 최정민씨는 준비해온 간식을 가방에서 하나씩 꺼내 따뜻하게 데울 준비를 했다.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여기서 조리할 순 없어요. 집에서 이렇게 미리 만들어 와요. 그래도 따뜻하게 대접해야 하니까 데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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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담을 그릇과 포크, 숟가락을 정돈 중인 자원봉사자 백남영씨 ⓒ투데이신문

최씨가 토스트를 데우는 동안 백남영씨는 음식을 담을 그릇과 숟가락, 포크를 정돈했다.

“기자님도 도와주세요, 좀 그런가(웃음).”

백씨를 따라 기자도 트레이 매트를 깔고 숟가락, 포크를 가지런히 놓았다. 그 사이 백씨는 흐르는 물에 헹궈 반으로 가른 연시를 접시 위에 올렸다. 음식 하나 담는데도 대충은 없다. 환자들의 입맛을 돋울 수 있도록 먹음직스럽게 담아내야 한다.

그 사이 최씨는 완성된 토스트 위에 달달한 메이플 시럽을 올렸다. 미리 가스불 위에 올려 둔 단호박죽도 식기 전에 그릇에 옮겨 담았다. 세 가지를 한 상에 올리니 알록달록 한 폭의 그림처럼 예뻤다.

“메뉴를 선정하면서 색도 하나하나 고민해요. 음식은 눈으로도 먹는다잖아요. 보기 좋아야 받는 환자들도 기분 좋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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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오후팀 봉사자들이 준비한 간식 ⓒ투데이신문

백씨는 음식이 식지 않도록 쟁반보를 덮어 손수레에 차근차근 옮겨 담았다. 준비된 간식은 모든 환자들에게 대접하는 건 아니다. 의료진과 의논을 거친 후 음식 섭취가 가능한 환자나 보호자를 선정한다. 백씨는 환자에게 준비한 간식에 대해 하나하나 친절히 설명했다.

“안녕하세요, 오늘 토스트랑 달달한 단호박죽 준비했어요. 연시도 같이 드셔보세요. 잘 익어서 아주 달아요.”

두 사람이 간식 준비로 정신없는 사이 남은 봉사자들은 두명씩 짝을 짓고 목욕과 림프마사지를 위해 여러 벌의 수건과 마사지에 필요한 오일을 챙겨 환자들이 있는 병실로 각각 향했다.

이제 막 목욕을 마쳐 개운한 듯 밝은 표정을 환자가 침대에 누워 자원봉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자들은 능숙하게 마사지 준비를 했다. 환자는 다리 마사지를 받기로 했다. 우선 침상에 오일이 묻지 않도록 환자 다리 아래 고무판을 깔았다. 그리고는 혈액순환을 돕기 위해 화장실에서 따뜻한 물에 수건을 흠뻑 적셔 환자의 다리 위에 올렸다.

몇 분 후 수건을 걷어내고 그윽한 아로마향 오일을 손에 덜어 마사지를 시작했다. 봉사자들은 엄지손가락을 이용해 발가락 끝부터 허벅지까지 부드럽게 지압했다. 마사지를 받는 환자도 만족스러운 듯 ‘시원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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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마사지 중인 자원봉사자 오숙경씨와 김순옥씨 ⓒ투데이신문

자원봉사자 오숙경씨와 환자는 안면이 있는 듯 가까운 친구 사이처럼 이런저런 대화도 주고받았다. 요즘 점점 컨디션이 나빠지는 것 같다며 걱정하는 환자에게 오씨는 계절 탓으로 돌리며 자신도 그렇다고 환자를 안심시켰다.

“나 요즘 몸이 점점 나빠지나 봐요. 계속 잠만 오고 그래. 피부도 점점 거칠어지는 것 같고. 각질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에이 나도 그래요 요즘. 가을이라 그래. 이쯤 되면 원래 졸리고 그러잖아. 피부는 씻고 나왔으니까 건조한 거예요. 오일 듬뿍 발라드릴게요.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2시가 조금 넘어서 봉사자들의 일과가 끝났다. 이날은 비어있는 침대가 많아 일정이 비교적 빨리 끝났다. 쉼 없이 움직이던 봉사자들도 테이블에 둘러앉아 한숨 돌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보바스 완화병동에는 3~4년 가까이 된 베테랑 봉사자가 많은데, 이들 중에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한 이도 있었다.

“시어머니가 아프셔서 저희 집에 와 계세요. 사실 저희 가족이나 다른 형제들도 시어머니 병간호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이왕 저희 집에 와 계신 거, 제가 잘 모르는 것보다는 봉사를 통해서 마음가짐도 달리하고 병간호도 배우고 하면 더 잘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 거예요.”

“저는 어머니께서 호스피스에서 봉사를 하셨었어요. 그래서 이 봉사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마음이 한참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극복하면서 저도 호스피스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자님은 젊어서 아직 부모의 마음을 모를 거예요. 우리도 젊어서 부모님 마음을 다 알았더라면 전부 효녀 심청이가 됐을 거야. 처음에는 몰랐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후회되고 깨닫게 되더라고. 호스피스에는 어르신들이 많으니까, 그때 부모님에게 못한 거 대신하는 거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편에 소개된 故유혜란씨 전시회 준비를 돕는 봉사자들 ⓒ투데이신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2편에 소개된 故유혜란씨 전시회 준비를 돕는 봉사자들 ⓒ투데이신문

환자나 가족들은 지치고 예민한 상황에서도 봉사자들에게만큼은 늘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 대하는 거랑 봉사자들 대하는 게 약간 다른 거 같아요. 의료진은 병을 돌보다 보니까 본인이 느끼는 아픔에 대한 분노도 있을 수 있고 하다 보니까 예민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오로지 도움만 주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마냥 좋게 봐주시는 거 같아요. 가족분들도 마찬가지고요.”

모든 환자가 안타깝기 마련이지만 홀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유난히 봉사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다.

“지원환자가 있어요. 연고자가 없거나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기초수급을 받는 분들을 대상으로 성남시와 완화병동에서 반반씩 지원해 한 달 정도 머물러요. 그런 분들을 볼 때 가장 마음이 좋지 않아요. 사실 돈이 많든 적든 다 마음이 쓰이죠. 가족들이 있어도 그들도 많이 지쳤기 때문에 간병인을 쓰기도 해요. 호스피스에는 외로우신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각자의 가정과 생업으로 때로는 봉사가 힘들 때도 있지만 자신들을 기다리는 환자들만 생각에 쉽게 자리를 비울 수 없는 게 봉사자들의 마음이다.

“사실 다른 일이랑 겹치면 힘들 때도 있죠. 근데 환자분들이 기다리고 있잖아요. 그래서 단 한 번도 빠져본 적이 없어요. 고맙게도 주변에서 많이 배려해주고 있어요. 호스피스 봉사는 당연히 와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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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 스님과 세실리아 수녀님 ⓒ투데이신문

보바스 완화병동에는 수녀님과 목사님, 스님 등도 수시로 환자와 가족들을 찾아 진심 어린 소통과 기도로 그들 마음 한구석 상처를 위로하고 있다.

“종교에 맞게 스님과 목사님, 수녀님이 환자를 찾아요. 만나서 영적인 부분의 치유를 돕죠. 죽음 보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임종 준비에 대해 조심스럽게 꺼내죠.”

“끝까지 삶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함께 하는 데 의미를 두죠. 얼굴 보고 인사하고.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그것을 통해 어느 정도 위로받고 확인받고 싶어 하세요.”

환자의 신체적 병을 돌보는 게 의료진이라면, 환자의 마음을 돌보는 건 봉사자들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호스피스 환자들에게 봉사자들은 의료진 못지않게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아는 봉사자들의 발걸음은 오늘도 병실로 향한다.

“봉사하는 이유는 특별한 거 없어요. 그냥 환자분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을 느끼는 거, 저희의 바람은 그거 하나에요.”

*병원 내에서 진행된 모든 취재는 의료진 및 환자들의 동의하에 진행됐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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