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신체의 유지 vs. 신체의 변형 (1)
[칼럼] 신체의 유지 vs. 신체의 변형 (1)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12.1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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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종교와 사상들은 몸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종교나 사상도 있고, 그 반대로 있으며, 몸에 대한 이야기를 최대한 하지 않는 종교도 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바라보면 종교나 사상이 몸에 대한 좀 더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신체의 유지 vs. 신체의 변형”으로 구분해 보는 것이다.

몸의 유지를 강조하는 종교·사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유교를 들 수 있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의 뜻은 ‘몸과 머리카락은 부모로부터 받았다’는 뜻으로 유교의 경전인 『효경(孝經)』에 등장하는 말이다. “몸은 부모가 준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는 한국의 전통사회에서 강력하게 작동했다. 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우선 조선 초 불교에 대한 비판 중 하나로 작동한 점을 들 수 있다. 조선을 개창(開創)한 세력들은 이전에 천 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종교적·사상적 배경이 된 불교를 성리학으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이로 인해 고려 말 조선 초부터 불교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가했다. 그 비판 중 하나가 “출가(出家)”에 관한 것이었다. 즉 구도(求道)를 핑계로 부모를 버리는 행위는 천륜(天倫)을 저버리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리고 삭발을 하는 행위 역시도 “신체발부 수지부모”의 맥락에서 천륜을 저버리는 대표적인 행위로 비판을 받았다. 새 왕조가 특정 종교를 통제하고 새로운 사상을 이식(移植)하는 과정에서 몸에 대한 관점이 종교 통제의 근거가 된 것이다.

단발령(斷髮令)에 얽힌 일련의 사건들도 유교가 몸을 유지하는 것을 강조한 사례로 들 수 있다. 1895년 고종은 을미개혁의 일환으로 긴 머리카락을 깎을 것을 조칙으로 정하고, 고종과 태자가 솔선해서 머리를 깎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를 금과옥조로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단발령은 천륜을 내팽개치는 행위였을 것이다. 그래서 위정척사 세력의 상징적 인물인 면암 최익현은 단발령이 내려지자 ‘내 머리카락을 자르려면 내 머리를 잘라야 할 것이다’라는 말로 강력하게 반발했다. 더군다나 을미사변 이후 당시 김홍집 내각과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분노가 있었던 백성들에게 단발령 선포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그래서 단발령이 내려진 이후 각 지역에서 의병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다.

단발령에 얽힌 사건들에서 우리는 몇 가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조선 정부가 내세웠던 단발령 공포(公布)의 이유였다. 기록에 따르면 단발령이 내려진 이유는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효율성”과 “합리성”으로 대표되는 근대적 사고방식이 기존에 “몸은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라는 생각을 지워버린 순간이었다.

둘째, 단발령이 하필 “남성의 상투를 자르는 것”이라고 규정됐다는 것이다. 즉 여성의 댕기머리나 쪽진 머리는 단발령의 대상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조선 정부가 단발령 공포의 이유로 제시한 “위생에 이롭고 작업에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노동력을 제공하거나 정부의 역(役)에 참여하는 것은 남성에 국한됐기 때문에 단발령의 대상 역시 남성에 국한됐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성별에 상관없이 적용돼야 효과가 있는 것이 위생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가정은 성립되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이 모습은 당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정부의 두발 단속의 대상은 남성의 두발이다’라는 사고방식이 정책으로 표현된 것일 수도 있다. 당시 성차별적인 모습이 엉뚱하게 단발령으로 방증된 것이 아닐까?

셋째, 정부 차원에서 백성들의 두발 문제까지 개입했다는 것이었다. 근대 이전 제왕이 통치하던 시대에서 두발이나 복식(服飾)에 대한 정부의 통제는 어쩌면 당연했을 수도 있다. 복식(服飾)이야 시대별로 사용할 수 있는 옷감이 다르고, 신체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변형이나 통제가 쉬울 수도 있다. 그러나 두발의 경우 신체의 일부를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통제하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머리카락은 자르기는 쉽지만 다시 기르는 것은 더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은가? 그리고 머리는 기르는 것은 당시로서는 천년이 넘게 유지된 전통이었다. 이것을 한 순간에 국가의 명령에 의해서 바꾼다는 것은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쉽지 않은 행위이다.

오늘날 헤어스타일은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행위다. 그래서 평범한 머리에서 삭발, 장발, 심지어 레게머리와 같은 다른 인종이나 문화권에서 유행하는 헤어스타일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런데 머리의 색깔을 바꾸는 것조차도 방송에서 규제하던 것이 불과 20여년 전이었다. 어쩌면 불과 20년 전이나 단발령을 반포했던 시기나 ‘신체를 국가가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