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신년사로 시작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판문점·평양 정상회담, 비핵화 물꼬 튼 회담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함께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경기 파주시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함께 산책하며 대화하고 있다. ⓒ뉴시스

올해 한반도는 그야말로 요동쳤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만남을 가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남북정상회담 역시 문재인 대통령 임기 중에 1번 정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게 전부였다. 하지만 올해 북미는 사상 첫 정상회담을 가졌고,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도 3번이나 이어지는 등 한반도는 새로운 물결로 요동쳤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지난해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 등으로 인해 전쟁 위기설이 파다했다. 일부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난다면서 해외로 피난을 가는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올해 1월 1일이 되면서 분위기는 반전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년사가 그 시작이었다. 김 위원장은 신년사를 통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 의향을 밝히면서 남북 대화 의사를 전했다. 이후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동안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비롯한 북한 선수단이 체류하면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기 시작했다. 북한 예술단이 우리 측으로 넘어와 공연을 하고, 우리 측 공연단이 북한에서 공연을 하는 등 문화예술 교류가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남북이 대화 물꼬를 트게 됐다는 기대뿐, 그다음 벌어질 일들은 생각지 못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2018년 한반도

지난 3월 8일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직후 미국 백악관에서 깜짝 발표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5월 안에 만남을 가질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세기의 만남에 대한 주목이 시작됐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난다는 것 자체가 한반도의 냉전 종식을 알리는 중대한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이뤄지는 것은 물론, 평화협정 체결 등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제기되기 시작했다. 또한 남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 등도 함께 거론됐다. 그 이후 일정과 장소 등의 협상이 이뤄지기 시작했고, 그 사이 남북은 4월 27일 판문점에서 11년 만에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북한의 지도자가 우리 땅을 밟는 첫 정상회담이었고,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깜짝 방북을 제안하는 등 다양한 이벤트로 주목을 끌었다. 특히 도보다리 산책은 ‘올해의 포토’로 선정될만하다는 여론이 형성될 만큼 상당한 신선함을 보여줬다. 판문점 정상회담을 통해 그동안 ‘은둔의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던 김 위원장은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문 대통령을 연장자로 깍듯이 대우하는 모습은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북한 지도자의 모습과는 판이하게 다르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이에 일부 국민은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우호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날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합의한 판문점 선언에는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이행이 명문화됐고,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그 이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열린다는 일정이 확정됐고, 그 사이 5월 26일 2차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다. 이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남을 갖고,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미국과 북한의 지도자가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전 세계는 열광의 도가니에 빠지기 충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파격적이었고, 김 위원장의 행보 역시 세간의 주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한반도의 평화가 이른 시일 내에 정착되는 듯한 느낌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싱가포르 선언의 내용이 별다른 내용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비핵화와 그에 상응하는 조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이었다. 두 정상은 공동합의문에서 새로운 관계 설립을 위해 노력하고, 한반도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하며, 4.27 판문점선언을 재차 확인했다. 아울러 북한은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하면서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POW)및 전쟁실종자(MIA)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한 유해 수습도 약속한다고 밝혔다. 그야말로 올해 1월 1일부터 시작해 6월 12일까지 한반도는 숨 가쁘게 평화를 위해 달려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 12일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싱가포르 카펠라 호텔에서 서로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AP/뉴시스

순조롭지 못한 비핵화

그 사이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사일 발사대 해체, 미군 유해 송환 등 다양한 제스처가 북한을 통해 나왔다. 이와 관련해 비핵화 대화가 순조롭게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올해 안에 종전선언이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가 상당히 컸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의 대화는 더 이상 진척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은 나름대로 자신의 비핵화 의지를 보였다고 판단했지만, 미국은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이제는 핵시설 리스트를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은 자신들이 비핵화 이행을 했기 때문에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같은 입장 차이로 인해 북미 간 협상이 교착을 보이면서 비핵화 협상 테이블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트럼프-김정은의 결단은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6일 중간선거와 맞물려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고, 북한 역시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 비핵화 이행에 진전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을 오가면서 중재자 역할을 했지만, 별다른 결실을 맺지 못했다. 이후 9월 중순 문 대통령은 평양을 방문했다. 남북의 지도자가 한 해에 3번이나 만남을 가진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일이다. 문 대통령은 평양 능라도 경기장에서 10만 평양시민 앞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를 천명했다는 다시 한번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 김 위원장과 함께 백두산 등반을 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연내 서울 답방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평양 순안 공항에서 영접 나온 평양 시민에게 고개를 숙여 답례했고, 평양 시내 식당에서 시민들과 어우러져 저녁 식사를 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런 행보가 평양 시민에게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다는 평가도 나온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은 10.4 선언을 이행하는 것은 물론, 남북의 대화 물꼬를 트게 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고, 2차 정상회담은 싱가포르 회담 준비를 위한 회담이라는 성격이 강했다. 특히 2차 남북정상회담은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정상회담을 개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대목이다. 평양 정상회담은 남북이 정례적으로 오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에 앞으로 남북 간에 봄에는 평양, 가을에는 서울에서 하는 정례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높다. 평양정상회담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내년 1월 또는 2월 중 열릴 것 같다”고 밝히며 북미 대화 재개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처럼 올해 한반도는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요동쳤다. 아직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냉전이 이어지고 있는 한반도에서 대화를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이는 또 새로운 미래를 위한 발걸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김 위원장이 각자 바삐 만났다는 것 자체가 올해의 가장 큰 수확이다. 혹자들은 비핵화 이행에 별다른 진척을 보이지 못했다면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남북미가 지난해에 비해 180도 달라진 태도를 보이며 서로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이는 또 내년에는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등으로 인해 한반도에 해빙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이제 시작이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며 “지금 협상 테이블이 난항을 겪는다고 실망할 필요가 없다. 만남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올해 가장 큰 의미”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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