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핵화 강조한 김정은, 대미 강경 메시지도
새로운 길 모색은 결국 미국 설득용 연설
남북 경협 강조한 김정은, 文 정부 고민 깊어
미국과 북한 사이에 낀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노동당 중앙위원회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9시 신년사를 밝혔다. 신년사가 대내(對內)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미(對美) 메시지가 상당히 약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고, 그 분석이 적중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신년사 메시지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모든 공을 떠넘긴 모양새다. 아울러 우리 정부를 향해서도 투트랙 전략을 사용할 뜻을 내비치면서 우리 정부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우리 정부의 올해 대북 전략이 어떻게 구사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1일 여느 때와 다른 모습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과거에는 연단에 나와 연설하는 모습이었지만, 올해는 마치 미국 대통령이 신년사를 발표하듯이 소파에 앉아 신년사 메시지를 발표했다. 신년사가 대외용 메시지보다는 대내용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신년사에서는 현 상황을 타개할 내용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김 위원장은 다소 내용이 부실한 메시지를 발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메시지가 가져다주는 의미는 상당히 깊다.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결단을 촉구한 것이다.

달라진 김정은 신년사

김 위원장은 신년사 메시지를 통해 북한은 비핵화를 위한 대화 의지가 있지만 미국이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제재와 압박을 이어간다면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이는 강·온 양면 작전을 구사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통치자로서 미국에게 제재를 완화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북한 정권은 의연하게 대처하겠다는 것을 북한 주민에게 알린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국을 향해 보다 강한 메시지를 보내 협상을 이끌어 내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지난해 신년사에서는 자신의 책상에 핵단추가 있다고 밝혔지만 올해는 “미국과 불미스러웠던 과거를 이어갈 의사도 없다”고 말하면서 미국과의 대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신년사가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더욱이 “우리는 더 이상 핵무기를 만들지도, 이용하지도 않으며 사용하지도, 전파하지도 않을 것을 내외에 선포하고 실천적 조치를 취해왔다”고 언급하며 비핵화의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런 점을 본다면 확실히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신년사 메시지란 점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남북 관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를 ‘대전환의 한 해’로 평가하면서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은 ‘전쟁이 없는 조선반도’를 만들기 위한 사실상 불가침조약이며 남북관계에서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온 겨레가 북남관계 개선의 덕을 실제로 볼 수 있어야 하고, 당면해 우리는 아무런 전제조건이나 대가 없이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관광을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 언급, 남북 경협에 상당한 염두를 두고 있다는 것을 뜻을 보였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번 메시지가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메시지라는 점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실상 숙제를 던져 줬다는 평가다. 특히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미 친서를 보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도 친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친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계획 내용이 포함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지배적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대화를 재개하기 위해서 김 위원장이 통 큰 결단을 내렸을 것으로 추측된다.

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 발표 관련 보도를 보고 있다. ⓒ뉴시스
1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2019년 신년사 발표 관련 뉴스속보를 보고 있다. ⓒ뉴시스

美 압박한 김정은

김 위원장의 작전은 투트랙이다. 미국을 향해 비핵화 이행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려줄 것을 압박하고, 문 대통령을 향해서는 남북 경협의 물꼬를 터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경하게 나온다면 우리 정부만이라도 자신들과 교류하자는 제스처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올 1월이나 2월에 북미정상회담을 하자고 이미 제안을 한 바 있기 때문에 곧 북미대화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북미대화의 내용인데, 이번 신년사를 통해 북한은 양보할 만큼 양보했으니 이제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내려야 한다는 점을 이번에 확실히 강조한 것이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와 더불어 우리 정부에게는 미국이 비록 강경하게 나오더라도 자신들과 경제적 교류를 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문 대통령의 고민은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오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이번 메시지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은 미국의 강력한 대북 제재가 완화돼야 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위원장은 미국이 강경하게 나가더라도 우리끼리 남북 경협을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을 선택하느냐 북한을 선택하느냐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 북한의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경우 우리 정부에게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우리 정부는 북한은 물론, 미국도 설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한반도 관계가 더욱 악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한이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신년사 메시지를 통해 미국과의 대화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고, 이를 바탕으로 남북 경협을 활발히 했으면 하는 뜻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곧 있을 북미 고위급 회담에서 어느 정도 타결을 이루고, 그다음 북미정상회담이 이뤄진 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과의 대화가 어느 정도 진전이 된다면 김 위원장으로서는 남북 경협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우리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평양시민 10만명을 대상으로 연설을 했듯이 김 위원장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남북 경협에 대한 연설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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