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경상북도 문경 홍덕동에서 발견된 무연고 분묘 ‘진성이낭 묘’를 기억하는가. 17세기 조선시대 진성 이씨 성을 가진 여인은 수백년 후 미라 상태로 다시 세상의 빛을 봤다.

직물과 목재 유물 등 50여가지의 유물이 여성과 함께 출토됐다. 이씨 여인의 사인은 성인병으로 밝혀졌다. 현대인의 전유물인 줄로만 알았던 성인병이 조선시대 여인에게서 확인되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그러나 2019년 현재, 여인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연구가 끝나면서 화장(火葬) 처리돼 한 줌의 재가 됐기 때문이다. 보존 처리를 거쳐 박물관에 보관된 유물만이 이 세상에 남은 그의 유일한 흔적이 됐다.

연구자들은 미라가 가진 역사와 문화적 가치가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내에는 미라 발굴·연구·사후 관리를 위한 정책이나 규정 등 어떠한 체계도 마련돼 있지 않아, 미라가 발견되고 필요에 따라 연구를 마치고 나면 화장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몇몇 미라만이 연구자 개인의 뜻에 따라 어렵사리 보존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한국 미라가 갖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고찰하는 한편, 미라가 화장터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한국의 미라 발굴·연구·관리 부실 문제를 꼬집어 보기 위해 ‘사라진 미라를 찾아서’를 기획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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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관 속에서 당장이라도 일어날 것 같은 하얀 아마포(린넨)를 둘둘 감은 앙상한 시신.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흔히 등장하는 미라의 모습이다. 

‘미라’하면 당연하게 이집트 미라를 떠올렸지만, 국내에서도 다수의 미라가 발굴되고 관련 연구도 활발해지며 최근 한국 미라에 대한 관심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 미라는 자연적으로 발생하고 보존 상태가 탁월해 그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미라는 미디어 혹은 이따금씩 열리는 전시회에서나 볼 수 있는 호기심의 대상일 뿐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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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서 온 타임캡슐’

‘미라’는 자연스럽게 또는 의도된 인공적 처리를 통해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원형에 가까운 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나 동물의 사체를 의미한다. 단순히 뼈대만 남아있는 것은 해골일 뿐, 근골격과 내장, 피부 연부조직까지 모두 남아있어야만 미라라고 할 수 있다.

미라는 환경이나 기후, 풍습에 따라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다. 

환경이나 기후적 측면에서는 미생물에 의한 사체의 부패 정도가 아주 적을 때 만들어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데, 건조하고 차가우며 공기가 차단된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이에 따라 건조 미라, 공기차단 미라, 냉동 미라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건조한 환경은 미라가 생성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인 조건으로, 시신이 썩도록 만드는 미생물은 수분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로 남미 안데스산맥 서쪽 아타카마사막이나 몽골 남부 고비사막 인근에서 건조 미라가 많이 발견된다.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기후에서도 시신이 잘 썩지 않는데, 주로 알프스산맥이나 알타이산맥에서 냉동 미라가 발견된다.

이 밖에도 방부 처리 등을 거친 ‘인공 미라’도 있다. 가장 흔히 알려진 고대 이집트 미라가 바로 인공 미라에 해당된다. 영혼 불멸 사상을 기반으로 시신에 혼이 깃들어 고인의 내세와 시신 보존이 매우 연관이 있다고 믿어 시신에 방부 처리를 해 미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미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심장을 제외한 모든 내부 장기와 뇌를 꺼낸 후 방부처리를 해 40일 가까이 시신을 말린다. 이후 비어있는 몸속에 톱밥이나 나뭇잎, 천 조각 등을 넣고 기름을 발라 생기를 부여한 후 아마포로 전신을 돌돌 감는다.

지난 2014년 11월 대전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중종대 인물인 단양우씨 미라 <사진 제공 = 대전광역시>

한국의 미라는 ‘공기 차단 미라’가 대부분인데, 이집트처럼 인공적으로 만든 미라가 아닌 매장 풍습에 의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미라가 대부분이다.

한국 미라는 석회를 이용해 무덤을 봉인함으로써 밀폐성을 높인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많이 발견된다.

회곽구조의 묘는 중장비를 이용해 들어내야 할 만큼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횟가루가 굳기 시작하면 높은 열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때 관의 내부는 1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급격하게 상승하게 된다. 높은 온도로 부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생물 대부분이 죽게 되고 시신이 썩지 않아 미라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또 관 속에 복식이나 옷가지, 이불 등을 많이 넣는 풍습도 미라가 만들어지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한다. 피장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이나 천 조각 등 수의(壽衣)로 덮고 싼 후 가로세로 방향으로 19벌의 옷을 이용해 고정하는 소렴(小殮)을 거친다.

이후 이불이나 옷가지 등으로 시신을 감싸는 대렴(大殮)을 하는데 신분에 따라 선비는 30벌, 대부는 50벌, 왕은 90벌 정도 사용한다. 또 내관의 상하좌우 빈 공간을 옷가지나 옷감으로 채우는 보공 절차도 거친다.

옷을 많이 넣을수록 관속의 산소량이 적어져서 부패가 덜 진행되는 원리다.

미라가 형성되기 좋은 환경적인 조건을 갖추지 못하고, 인위적으로 미라를 만드는 풍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라가 발견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같은 매장 풍습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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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미라는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보존 상태가 탁월하고 풍부한 자연과학적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 있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고 평가된다.

여기서 보존 상태가 탁월하다는 것은 앞서 언급된 것처럼 이집트 미라는 제작자에 의해 뇌와 내부 장기를 모두 적출해 속을 충전물로 채우지만 한국 미라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모든 장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점을 말한다.

또 한국 미라는 촉감이 부드럽고 사지를 벌리면 벌어질 만큼 탄력성 뛰어나다고 한다.

예컨대 2002년 9월경 경기 파주시에서 파평 윤씨 선산의 무연고 묘지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여성 미라, 이른바 ‘파평 윤씨 모자 미라’는 마치 산 사람의 것 같은 까만 머리카락과 손상이 거의 없는 두 손과 발을 유지하고 있었다.

X선 검사 결과 미라의 몸속에서 태아가 확인됐고, CT(컴퓨터단층촬영)과 MRI(자기공명영상) 촬영 등을 통해 분만 도중 자궁 파열로 인한 과다출혈로 태아와 함께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 자궁 속 태아까지 미라 상태로 남아 있는 모자 미라는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사례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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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는 지금은 알 수 없는 아주 먼 과거 시대의 다양한 정보를 담고 있다. 미라나 주변 토양, 무덤에서 채취한 시료를 통해 기생충의 흔적을 찾아 당시의 식생활이나 위생상태, 보건 환경, 질병 등 생활상을 알아낼 수 있다. 또 뼈나 머리카락에 남아있는 안정동위원소 정보를 이용해 식생활 추정도 가능하다.

질병이나 영양상태, 노동 강도, 식생활 등 다양한 인류사를 복원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라는 그 자체만으로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가치 높은 역사는 잘 관리하고 보존돼야 마땅하지만 한국의 미라들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나 다름없다.

영화에서처럼 박물관 쇼윈도에서나 볼 수 있을 줄 알았던 미라들은 값비싼 부장품과 옷 한 벌도 온데간데없이 앙상한 몸뚱이만 남아, 화장 처리되거나 병원 부검실이나 의과대학 실습실 등에 방치된 초라한 신세가 됐다.

미라가 깊은 땅속에서만도 못한 지경에 이르게 된 원인은 미라 발굴·연구·관리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일부 연구자들이 수년 전부터 체계적인 미라 발굴·연구·관리 체계를 요구해왔고 논의의 불씨가 지펴지는 듯했으나, 이내 지지부진해졌다.

이대로라면 전 세계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파평 윤씨 모자 미라마저도 진성이낭 미라와 같은 비극적인 운명이 불가피한 상황. 국내의 미라 발굴·연구·관리 문제를 되짚어보고 해결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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