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고발인 조사
SK케미칼 제조 원료 CMIT/MIT, 유해성 연구 관건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를 위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 회원들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 수사 촉구 고발장 접수를 위해 지난달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 기업으로 지목된 SK케미칼과 애경 등에 대한 검찰 수사가 재개됐다. 과거 ‘증거 불충분’으로 종결됐던 사건이 이번 재조사에서 새 국면을 맞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2부(권순정 부장검사)는 지난 4일 오전 SK케미칼의 전현직 임원을 업무상 과실 및 중과실치사상 혐의로 고발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가족과 고발인 측 변호사인을 불러 고발인 조사를 했다.

이는 앞서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이하 가습기넷)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지난해 11월 27일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철 SK케미칼 대표이사 등 14명을 ‘업무상과실‧중과실 치사상’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데 따른 것이다.

가습기넷 등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측에서는 SK케미칼을 사고를 발생시킨 가습기살균제 원료 물질인 클로로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CMIT)와 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를 개발하고 유통시킨 업체로 가습기살균제 대참사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애경산업은 SK케미칼의 개발한 원료를 사용해 ‘가습기메이트’를 제조 유통시켜 많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안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SK케미칼과 애경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아직까지 법적 처벌을 받은 바 없다.

앞서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와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에서 지난 2016년에도 두차례에 걸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 임원들에 대해 검찰에 고발했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된 원료의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며 증거 불충분으로 기소가 중지된 바 있다.

공은 다시 검찰로, 관건은 유해성 입증

따라서 이번 재조사에서 SK케미칼 등에 대한 법적 책임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해당 물질에 대한 유해성 입증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처벌을 받았던 옥시 등의 경우엔 살균제 월료로 사용한 폭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의 유해성이 밝혀져 관련 재판까지 진행됐다.

하지만 SK케미칼가 개발, 제조한 원료 CMIT/MIT의 유해성 입증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앞서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2012~2013년 동물을 대상으로 실행한 독성실험에서 CMIT/MIT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확정짓지 못했다. 이어 정부가 지난 2016년 인체유해조사에 착수했지만 아직까지 결과를 내놓지 않으면서 원료를 제조한 SK케미칼과 이를 판매한 애경 등은 수사에서 제외됐다.

하지만 이후 CMIT/MIT의 유해성을 지적하는 연구 결과 등이 속속 소개되면서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가습기넷은 지난 11월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고발하는 내용의 보도자료에서 “지난 2017년 8월과 2018년 10월에 한국환경보건학회지에 각각 등재된 대구가톨릭대 GLP센터 논문들과 애경 제품을 쓴 쌍둥이자매 병증을 연구한 서울아산병원 연구팀이 지난 10월 발표한 논문을 비롯해 2012년 영국 의학지 ‘브리티시 메디컬 저널(BMJ)’과 2013년 의학지 ‘Contact Dermatitis’에 실린 연구 결과, 2014년 영국 루이샴 병원 연구팀 논문 등에서 CMIT/MIT의 유해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렇듯 여러 연구와 자료들이 또 다른 원료물질인 CMIT/MIT도 참사의 원인이라 가리키고 있다”며 재고발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최근 환경부가 유해성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를 검찰에 제출하면서 멈춰 있던 수사가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앞서 환경부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와 관련해 SK케미칼 등 기업의 책임이 있다는 입장을 발표한데다 최근 추가 역학조사 가능성까지 시사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29일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박천규 환경부 차관은 “환경부는 CMIT/MIT 함유제품 단독사용자에게서도 PHMG로 인한 피해자와 동일한 특이적 질환이 나타났기 때문에 해당 기업 가해자의 폐손상 피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며 “정부가 피해를 인정한 만큼 SK와 애경도 피해자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추가 역학조사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얼마남지 않은 시간·기업 책임 여론↑ 

가습기넷을 비롯한 피해자·시민단체 등에서 우려하는 것은 시간이다. SK케미칼 등에 제기한 업무상과실, 중과실치사상 등 혐의의 7년이라는 공소시효가 문제다.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난 2011년 시점을 기준으로 할 경우 공소시효는 2018년에 만료된다. 하지만 2015년에도 피해 자중 사망자가 발생해 공소시효를 2022년까지 봐야한다는게 피해자 측의 주장이다.

가습기넷 측은 앞서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2월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등에 대해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2016년 9월부로 끝났다는 이유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1월 ‘사회적 참사 특별법’이 입법되고 특별조사위원회 구성됐지만 아직까지도 본격적인 활동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며 검찰의 빠른 수사를 촉구했다.

사태 해결과 관련해 국민여론도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관련해 상당수가 가장 큰 책임은 기업에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환경보건시민센터는 7일 발표한 가습기살균제 참사 사건 관련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69.7%가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했고 가습기살균제 사건의 가장 큰 책임소재를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57.8%가 기업이라고 응답했다. 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도 40.5%에 달했다. 소비자라는 응답은 1.6%였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은 응답자 중에 25.8%였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피해신고를 한 사람은 4.1%에 불과했다. 피해신고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건강피해가 없다고 생각해서가 42.6%, 신고해봐야 별 효과가 없을 것 같아서 21.5%, 신고해야 하는지 몰라서 20%, 구매증거가 없어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16% 순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조사 기간을 제한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피해자 찾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조사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대 보건대학원이 리서치뷰에 의뢰해 지난달 17일부터 3일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고발 대상인 SK케미칼 등 제조사 측은 “환경부 조사를 지켜봐야한다”는 기존입장을 고수하며 특별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한편, 가습기넷에 따르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는 총 6210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사망자 1359명, 생존 환자 4851명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기준 환경부가 인정한 가습기살균제 건강피해자는 총 798명(질환별 중복 인정자 제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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