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천천히 걸어야 멀리 간다
[칼럼] 천천히 걸어야 멀리 간다
  • 김재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08 16:2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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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명한 사람이 조금만 읽어서 잘 외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지만, 둔한 사람에게 많은 분량을 익히도록 하는 것은 마치 약한 말에 무거운 짐을 실은 것과 같으니 어찌 멀리 갈 이치가 있겠는가?” <이덕무(李德懋, 1741-1793)>

마음 아팠던 기억

지금은 스물한 살인 가진이가 네 살 되던 해에 나는 가진이한테 『사자소학』을 가르쳤다. 아내가 가르쳐보라고 권유를 했고, 가진이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가르쳐보니 얘가 차분하게 잘 앉아 있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온다. 신이 나서 한 시간 가량 가르쳤다. 끝내기 전에 배운 걸 다시 읽어보라고 했다. 분명 가르칠 때는 다 알아들었는데 혼자서 하라고 하니 읽지를 못한다.

이즈음에서 그만뒀어야 했다. 나는 가진이가 틀리게 읽으면 즉시 바로잡아줬다. 아쉽게도 가진이는 그 이상을 하지 못했다. 이미 지친 데다 내가 화를 내진 않았지만, 아빠가 자기를 혼낸다고 생각을 하는 지 생각만큼 잘 안 돼서 그러는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옆에서 보던 아내가 나를 말렸다.

“너무 오래 붙잡고 앉아 있으니 그렇잖아. 이제 그만해.”

“그래도 배운 거 복습은 해야 되잖아.”

“아니, 애가 울잖아. 계속하면 안 되지.”

“내가 혼을 낸 건도 아닌데 왜 울지?”

이렇게 그 때는 내 잘못을 모른 채 넘어갔고, 이후로 가진이한테 한자를 가르치지 않았다. 이 일도 잊어 버렸다. 시간이 흘러 가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우연찮게 내가 가진이네 반에 학부모 교사로 가서 한자를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한자에 얽힌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수업을 하니 아이들이 무척 즐거워했다. 가진이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날 저녁 득의양양해 진 나는 가진이한테 우쭐댔다.

“아빠 수업 재미있었지?”

“응. 재미있었어.”

“하하, 고마워. 너 그럼 아빠한테 한자 배울래?”

가진이는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다.

“아니. 싫어.”

당연히 배우겠다고 말할 줄 알았는데 싫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애써 웃으면서 물어 봤다.

“왜? 재미있다면서?”

“응. 재미는 있는데 배우기 싫어.”

“아빠가 무섭게 할까봐?”

“아니, 그냥 싫어.”

“어, 그래.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가진이가 대답할 때의 표정을 봤다. 질색을 하지도 않았고 담담했다. 도대체 왜 싫다고 했을까? 한참 생각을 하다가 몇 년 전 그 일을 기억해 냈다. 아빠와 함께 했던 그 한 시간이 이 아이한테는 매우 힘든 시간이었구나. 아빠한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열심히 했는데 칭찬은커녕 틀린 걸 지적하고 반복이나 시켰으니 얼마나 힘들었을 거야. 그 기억 때문에 싫다고 한 거였구나. 정말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 한 시간을 잘못 보낸 덕분에 가진이는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아빠한테 마음까지 닫아 버렸다.

내 인생을 위해 배워 두고 싶어

아내도 저 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고등학생이 되는 셋째 딸 하진이한테 한자를 가르치라고 했다. 고등학교 들어가면 고전을 배울 테고, 그 공부를 하려면 한자를 알아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내가 대답했다.

“가진이 어릴 적 생각 안 나? 그걸 겪어 보고도 또 가르치라고 하는 거야?”

“당신도 그 때하고는 달라졌을 거 아냐. 남들은 돈 들여서 학원도 보내는데 당신은 대학에서 한문을 강의하는 선생님이면서 왜 가만히 있어?”

“아니, 안 그래도 공부 부담이 많은 애한테 한자까지 가르쳐야 돼? 애 힘들어서 안 돼.”

이렇게 말을 한 마디씩 주고받다가 우선 하진이한테 물어보고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어느 날 하진이한테 살짝 물어봤다. 뜻밖의 대답이 나왔다.

“배우고 싶지. 그런데 나 일요일 밖에 시간이 안 돼.”

“그럼 일요일에 하지 뭐. 고등학교 가면 한문 과목을 배울 거고, 고전문학에도 한자 많이 나오니까 알아두면 좋을 거 같네.”

“그렇지. 근데 그거하고 상관없이 배우고 싶어.”

“왜?”

“내 인생을 위해서 배워둬야 될 것 같아.”

“…….”

하진이는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 궁금했지만 더 묻지 않고 공부를 시작하기로 했다. 하진이는 모르겠지만, 하진이를 보니 예전에 가진이를 가르치다가 실패했던 생각이 나면서 긴장이 됐다. 조선 후기 정조(正祖) 시절 사람으로 이름난 천재였던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말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에게 글을 가르쳐 줄 때에는 많은 절대로 많은 분량을 가르쳐선 안 된다. 총명한 사람이 조금만 읽어서 잘 외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지만, 둔한 사람에게 많은 분량을 익히도록 하는 것은 마치 약한 말에 무거운 짐을 실은 것과 같으니 어찌 멀리 갈 이치가 있겠는가? 글은 분량을 적게 해서 익숙해 질 때까지 읽어 뜻을 아는 것이 귀중하다. 만약 이처럼 한다면 아이가 둔해서 잘 외지 못한다 하더라도 용서하는 것이 좋다. 헛되이 읽기만 하고 잘 외지 못하면 더욱 주의하여 아이가 외는 것을 살피는 것이 좋다. 나는 어릴 때 하루 배우는 분량이 50줄에 불과하였는데, 그것은 기질이 약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헛되이 읽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성질이 순진했기 때문이다. 외는 것은 잘하지 못했는데 그것은 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해 질 때까지 읽어서 뜻은 알았기 때문에 어른이 책망하지 않았다.”<이덕무(李德懋),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권27-29, 「사소절(士小節)」 중에서>

딱 나 들으라고 하는 말이다. 예전에 가진이를 가르칠 때도 이 말을 알고 있었지만, 실천하지 못했다. 가진이가 총명한지 둔한지도 파악하지 않았고, 가르치겠다는 의욕만 앞세웠다. 파악을 했다 하더라도 그렇게 즉시 확인하려 하고 반복해서는 안 됐다. 가진이는 ‘약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진이한테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욕심 부리지 않고, 아이 수준에 맞춰서 천천히 가르치리라 다짐했다. 하진이하고는 옛날 어린아이의 한문 교습을 위해 여러 시인들의 한시(漢詩)의 구절을 추려서 엮어 놓은 『추구(推句)』를 함께 읽기로 했다. 한 구절을 읽고 왼 뒤에 하진이가 말했다.

“아빠, 이렇게 배웠는데 나중에 기억이 안 나면 어떡해?”

“기억이 안 나는 게 정상이야. 이걸 매일 하는 게 아니잖아. 지금 아빠하고 할 때 이해를 하고 열심히 쓰고, 읽으면 돼.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보면 되는 거야. 기억 못한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잖아. 잊으면 다시 보고, 또 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이 되는 거야.”

“이 글자는 조금 어려운데?”

“어렵지? 맞아. 어려워. 그럼 우선 오늘 이 글자 뜻이 뭔 지 알고, 쓰는 법만 익혀. 그렇게 넘어가면 돼. 다음 주에 까먹을 수도 있겠지. 그럼 또 한 번 써 보면 되는 거야. 대신 지금 아빠하고 할 때는 알아야 돼. 지금은 알겠어?”

“응.”

“좋아. 그럼 되는 거야. 자, 읽어 보자. 시작.”

“천고일월명(天高日月明)이요 지후초목생(地厚草木生)이라, 하늘이 높으니 해와 달이 밝고, 땅이 두터우니 풀과 나무가 자라네.”

잊어버려도 괜찮아

다행히 하진이는 싫증을 내지 않고 한자 공부를 하고 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나도 무어라 장담할 수가 없다. 이것이 가장 올바른 방식인가? 옛 사람인 이덕무의 말을 오늘을 사는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바람직한가?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숫자로 계량화하고, 그것으로 등급을 매기는 세상인데 내가 너무 순진한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별 생각이 다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량을 가르치지 않고, 외라고 닦달하지 않는 것은 이덕무의 말대로 아이는 아직 멀리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상태’라고 하는 건 아이의 지적 수준일 수도 있고, 배우고자 하는 의지의 강약일 수도 있으며, 몸 상태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 되었건 간에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가르칠 수 없고, 가르친다고 해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진이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입시를 치러야 한다. 대학입시, 무척 중요하다. 이 시험의 결과에 따라 아이의 삶이 일정부분 좌우되는 것이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러나 대학입시가 인생의 종착역이 아닌 이상 멀리 봐야 하지 않을까 한다. 내가 배운 지식과 살면서 얻은 지혜는 어찌 보면 대학입시 이후에 펼쳐질 더 오랜 시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진이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거하고 상관없이 배우고 싶어. 내 인생을 위해서 배워둬야 될 것 같아.”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삼국지인물전 외 5권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하진이는 어휘력 향상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주요 과목이 아닌 한문을 배우겠다고 했다. 나는 성과를 생각했는데 하진이는 그러지 않고 배움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것이다. 대견하면서도 부끄러웠다. 가진이한테서는 무작정 가르쳐선 안 된다는 것, 하진이한테서는 인생을 멀리보고 살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가진이에겐 그 때 일을, 하진이에겐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을 잊어버려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둘 모두 멀리 가기 위해 준비하는, 그러나 아직은 ‘약한 말’이기 때문이다.

※ 번역문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을 인용하되 필요에 따라 필자가 일부 표현을 바꿨습니다. 한국고전번역원 번역가 선생님들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투데이신문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김재욱입니다. 오랜 만에 지면으로 인사드립니다. 지금껏 “김재욱의 평천하”와 “대한민국 삼국지 군웅할거의 시대”를 아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올해부터 “김재욱의 평천하”에 다시 칼럼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분간 고전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교육과 관련된 글을 연재하려고 합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투데이신문 독자여러분 평안하시고, 하시는 일 모두 이루시기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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