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하의 달고나 세상] 용기와 두려움 사이 거리는?
[최민하의 달고나 세상] 용기와 두려움 사이 거리는?
  • 최민하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10 16:2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민하 칼럼니스트소설가. 여행작가. 영어강사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당선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 최민하 칼럼니스트
▷소설가·여행작가·영어강사
▷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카와라우> 당선
▷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투데이신문 최민하 칼럼니스트】 선택은 일상을 통해 흘러들어온 사건이나 사소한 말 한 마디, 혹은 티브이에서 본 장면이나 책에서 읽은 구절에서 시작할는지 모른다. 그러한 순간들이 모여 몸속에 스며들며 체화되는 시간을 갖거나, 아니면 섞이지 못한 채 튕겨 나가 버려지기도 한다. 이십대 초반에 배낭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 이런 순간을 모두 경험한 적이 있었다.

어느 날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와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전과는 달라진 모습에 그 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었더니 배낭하나 짊어지고 세상 구경했다고 말했다. 그 때 당시 겁이 많았던 나는 친구 얘기를 들으며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위험이 도처에 깔린 세상 속을 배낭 하나 메고 걸어갈 용기가 나지 않아 부러워하기만 했다. “여행하면 뭐가 좋아?”라고 물었던 내게, “내가 아는 세상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 라고 말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 “너도 떠나봐. 여행하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질문을 멈추고 생각에 잠기자 친구가 말을 이어갔다. “예를 들어 말이야. 큰 도화지가 세상 전부라고 한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은 그 도화지에 연필로 점 하나 정도 찍은 정도 밖에 안 되더라고. 그걸 알게 되니까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세상이 궁금해지더라.” 그렇게 한 번도 간 적 없는 배낭여행은 그 친구와 만남 후 내 인생의 도화지에 큰 점을 찍었다. 그리고 걸어보지 못한 길은 이루지 못한 꿈처럼 아련하게 오랫동안 로망으로 남아 있었다.  

그런 내게 호주 어학연수가 끝나갈 즈음 한 달의 시간이 텅 빈 적이 있었다. 시공간이 적재적소에서 나를 향해 여행을 가라고 손짓하는 듯 했고 두려움을 떨치면 그토록 해보고 싶었던 배낭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호주를 한 달 동안 같이 여행할 수 있는 친구를 찾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이 흘렀다. 그 때 우연히 맞닥뜨린 조지 버나드 쇼의 ‘어영부영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묘비명이 내 머릿속을 흔들었다.  

배낭여행 떠나기 하루 전날,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가 또 한 번 선택에 기로에 서게 되었다.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었다. 지갑에는 신분증, 그레이하운드 한 달 버스 패스, 현금인출 카드 등 여행할 때 필요한 모든 것이 들어 있었다. 경찰서에 소매치기 신고를 한 후 신분증과 버스패스만이라도 찾기를 바라며 까페 근처 골목에 있는 쓰레기통을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친구가 걱정스럽게 한 마디 했다. 좋은 징조가 아니라며 배낭여행을 포기하던지 정 가고 싶으면 미뤘다가 다음에 가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다시 용기만 내면 모든 것이 시작되어질 수 있는 적합한 시간들이 올까? 만약 이런 시간이 오지 않는다면, 용기가 부족해서 잃어버린 이 시간들에 대해 나는 뭐라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두려움을 물리치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친구의 말처럼 여행을 가지 말라는 징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친구와 헤어진 후, 어둠이 도시의 횡단보도를 물들이는 것을 지켜보며 멍하니 벤치에 앉았다. 퇴근 시간에 도시인들이 시청 앞 횡단보도를 바삐 지나가는 것을 쳐다보면서 ‘포기’라는 단어가 시소의 한 쪽에 힘을 가하며 머릿속을 눌러 내렸다.

횡단보도에 파란불이 깜박깜박.
내 마음에 빨간불이 깜박깜박.
빨간불이 켜진 걸까?
아니면 파란불이 켜진 걸까?

그 순간 나는 첫 배낭여행을 우연일지 모르는 사소한 사건에 맡겨두고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가보지 못한 미래는 사실 아무도 알지 못한다. 한 치 앞도. 그저 예측할 뿐이지. 그것이 신의 계시인지, 나쁜 징조인지, 우연인지,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직접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파란불이 깜박거리기 시작했다. 나아갈 것인가. 뒤돌아갈 것인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을 시작하기 위해, 나는 무겁게 누르는 ‘포기’라는 단어에 맞서기 위해 ‘용기’라는 단어를 시소 반대편에 장착하고 배낭을 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