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산 구성이씨 미라 ⓒ투데이신문
오산 구성이씨 미라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국내 미라 연구 권위자로 알려진 고려대학교 구로병원(이하 고대구로병원) 김한겸 교수는 오산에서 발견된 ‘儒人駒城李氏之柩(유인구성이씨지구)’와 ‘宜人驪興李氏之柩(의인여흥이씨지구)’를 포함한 총 4구의 미라를 보관 중이다. 수년전, 어두운 땅속을 벗어나 빛을 볼 때 이들은 알지 못했을 거다. 자신들이 차가운 공기만 가득한 병원 부검실에 갇히게 될 줄이야.

구로고대병원의 미라들만의 사정은 아니다. 국내에는 발굴된 미라의 관리나 보존과 관련한 규정이 전혀 마련돼 있지 않다. 문화재보호법이나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을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있지만 ‘인골’인 미라를 ‘문화재’로 보느냐를 두고 논쟁의 여지가 있어 물거품이 됐다.

일부 연구자들은 문화 당국에서 미라의 발굴 및 보존·관리할 수 있는 대책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미라를 발굴 및 연구·보존·관리를 포함한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으나 2년 넘게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김 교수의 정년까지 남은 시간은 2년여, 그가 병원을 떠나기 전까지 이렇다 할 방도를 찾지 못하면 오산 여인 미라들과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파평 윤씨 모자 미라도 진성이낭 미라처럼 한 줌의 재로 변해버릴지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문화재청에서 파악한 미라 출토 및 보관 현황 <자료 제공 = 문화재청>

화장터행 위기의 한국 미라들

문화재청이 제공한 1998년부터 2017년까지 파악된 미라 출토 및 보관 현황에 따르면 국내에서 발견된 총 미라 수는 59구(백골화·반미라 포함)다.

이중 ▲의학적 연구로 활용된 미라가 35구 ▲복식수습 미라 16구 ▲의학·복식수습 모두에 활용된 미라가 8구다.

연구를 마친 56구 중 29구는 의과대학에서, 3구는 박물관에서 보관 중이다. 나머지 24구는 이장되거나 화장 처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국내에서는 인골·미라가 발견되면 3단계 절차를 거치게 된다. 미라가 출토됐을 때 발견자가 연구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면 박물관이나 의과대학, 매장문화재 조사기관 등에 연락해 연구기관을 모색한다. 연구자에게 인계되기까지는 발견자의 임의에 맡겨진다.

연구를 마치고 나면 박물관이나 의과대학에서 전시·보관하게 되는데, 이와 관련한 규정이 국내에는 없다. 화재보호법이나 매장문화재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은 유물에만 해당할 뿐 인골·미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규정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미라를 전시하거나 관리할 마땅한 기관을 찾지 못할 경우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2조(무연고 시체 등의 처리)에 근거해 장사(화장·이장) 처리가 된다. 출토 단계에서 연구가치가 없다고 판단된 미라 역시 마찬가지다.

김한겸 교수 등 일부 연구진은 과거 시대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역사 자체인 미라가 속절없이 방치되거나 화장터로 내몰리는 위기에 놓이자 국가차원의 미라 연구 및 관리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수년째 성토하고 있지만 진전 없이 현재 진행 중이다.

학봉장군 미라 <사진 제공 =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국가 차원의 체계적 관리 필요”

일부 국가에서는 미라 보존·관리가 상당히 체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중국 후난성 창사시 후난성박물관은 ‘마왕두이 미라’를 보존하고 있다. 1971년 마왕퇴 동산에서 발굴된 이 미라는 210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피부가 탄력 있고 머리카락과 속눈썹이 온전히 남아있을 만큼 보존 상태가 좋아 ‘현존하는 미라 중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미라’라는 평을 받는다. 실제 무덤을 축소해 재현한 박물관의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이탈리아 볼차이노에는 1991년 알프스 산맥 빙하에서 발견된 5300여년 된 미라 이른바 ‘아이스맨 외치(Otzi)’를 연구하는 ‘유럽아카데미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가, 미국 일리노이대에서는 미라를 중심으로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간 융합 연구를 진행하는 미라 프로젝트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도 연구자 외에 미라를 보존·관리 중인 박물관이 2곳이 있다. 그중 하나가 충남 공주시에 위치한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인데, 이곳에는 2004년 대전에서 발굴된 일명 ‘학봉장군’ 미라와 그의 손자 미라가 잠들어 있다.

약 600여년 전 조선시대 초기 국내 미라인 학봉장군은 문중묘 이장 과정에서 발견됐다. 남성 미라인 학봉장군의 사망 당시 나이는 40대 초반으로, 폐 질환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된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학봉장군이 과학·역사·문화적으로 중요한 사료가 될 거라고 판단, 학봉장군 후손의 허락을 받고 지금까지 그를 모시고 있다.

미라를 직접 모시고 있는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은 국내에서 발견되는 미라들이 사라져가는 데 안타까워하는 한편 관련 규정이나 지원의 부재로 인한 한계를 지적했다.

계룡산자연사박물관 관계자는 “국내에서 비공식적으로 미라가 발견되면 대부분은 알려지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공식적으로 발견되는 미라도 다르지 않다”며 “과학·문화·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자료인데 문화재 지정 등 이렇다 할 대책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가에서도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이에 필요한 규제를 만들거나 적절한 예산과 인력은 투자하지 않고 있다. 과학·문화·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들이 잘 관리되면 결국 국자의 자산일 텐데, 이에 대한 책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청, 관련법 마련 위해 노력 중

문화당국은 ‘아직까지 미라의 연구 및 관리를 위한 법률이나 규정이 없는 것은 맞지만, 이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2016년 8월 미라 보존·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반영된 매장문화재법 일부개정안이 발의 됐다.

개정안에는 매장문화재 발굴 중 인골이나 미라가 출토되면 문화재청에 신고를 의무화하고 신고를 받은 문화재청장은 이에 대한 연구 및 보관을 결정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같은 개정안은 같은 해 11월 본회의에 상정됐고, 현재는 법안소위에 계류 중이다.

그리고 올해 1월,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할 대상을 무연분묘로 한정하고, 장사법 등 현행법과 충돌하는 부분에 대한 특례규정을 마련하는 내용을 포함한 정부수정안이 마련됐다.

문화재청 발굴제도과는 “미라 연구·관리가 오래도록 사각지대에 있었고 이 부분은 공감을 하고 있다”며 “정부수정안을 마련, 입법을 추진해 현재 법적근거 없이 사각지대에 놓인 인골미라 연구에 대해 발견 신고 절차와 연구 및 활용 기준 등 법률적 근거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내에서는 현대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조선시대 미라가 많이 발견된다. 한국의 유교 사상 때문에 미라를 문화재로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며 “연구진들도 의견이 다양하다. 후손을 위해 미라를 유지하고 연구 자료로 남겨둬야 한다는 분도 있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이유로 연구나 후손에 남기는 것은 최소화하고 자손들에게 빠르게 돌려줘야 한다는 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추진 중인 법안의 공론화를 통해 사각지대에 있는 미라 관리를 합법화하고 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하는 데 의의를 두고 있다”며 “법률이 발의된 지 꽤 오래됐는데 (아직 통과되지 않고 있는 걸 보면) 단순하고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국회 및 관계전문가 협의 등을 통해 조속히 법률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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