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아이들도 찾는 음식점에 선정적 이름이라니, 꼭 이렇게 지어야 하나요?
[김태규 기자의 젠더 프리즘] 아이들도 찾는 음식점에 선정적 이름이라니, 꼭 이렇게 지어야 하나요?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01.16 17: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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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이 사회 이슈로 대두된 지도 수년이 지났습니다. 특히 2018년에는 미투(#Metoo)운동 등 사회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이 밖에도 전국 각지에서 성소수자들이 퀴어문화축제를 열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차별에 저항했습니다.

성차별에 저항하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이에 반발하는 ‘백래시(Backlash. 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한 반발)’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성차별에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옛날 같으면 별일도 아닐 걸 왜 문제 삼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는 거죠. 그만큼 우리사회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진 거겠죠.

전 사회적으로 성차별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일상에는 여성,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이 녹아있습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일상 속 성차별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페미니즘·퀴어 이슈를 짚어보기 위해 [젠더 프리즘]을 기획했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길을 걷다보면 화려한 간판들이 많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떤 가게들은 센스 넘치는 이름으로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죠.

그러나 불쾌한 느낌을 주는 가게 이름들도 종종 눈에 띕니다. 순간 ‘피식’ 웃음을 지었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언짢은 기분이 드는 상호도 있고요. 친한 사람들끼리 할 수 있는 ‘성적인 농담’에서나 나올 법한 말들이 간판에 떡하니 쓰여 있으면 민망할 때도 있습니다.

여성혐오적·성적 코드가 담긴 가게 이름이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나 찾는 음식점이라면 더욱 더 민망해집니다. 청소년이나 아동과 함께 그런 이름의 가게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다른 가게로 갈까’하는 망설임도 생길 겁니다.

<사진출처 = 유튜버 A씨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출처 = 유튜버 A씨 인스타그램 캡처>

구독자 28만명을 보유한 인기 유튜버 A씨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떡볶이, 치킨 배달 전문점 ‘떡치고(떡볶이 치킨 고고)’를 오픈한다고 밝혔습니다. ‘떡치다’라는 말은 성행위를 뜻하는 은어로 사용되기도 하죠.

이를 본 누리꾼들은 “개웃겨”, “이름이 맘에 든다”는 등 대체로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이름 왜 저래”라거나 “가게 이름을 생각하고 지었다면 이 짓거린 안 나왔겠지”라는 반응을 보인 이들도 있었습니다.

박씨의 가게 오픈 소식을 접한 30대 직장인 A씨는 “‘누나홀닭’을 처음 봤을 때도 ‘치킨집 이름을 저렇게 지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이들도 즐겨 찾는 치킨, 떡볶이 배달전문점 이름이 성행위를 뜻하는 은어라는 건 불편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출처 = 제주소주 홈페이지
<사진출처 = 제주소주 홈페이지>

광고나 상호, 제품명에 여성혐오적·성적 표현을 사용해 논란이 된 사례는 많이 있습니다. 2017년 9월 신세계그룹 제주소주에서 출시한 소주 ‘푸른밤’성매매 은어를 사용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제주소주는 알코올도수 16.8%의 저도주에는 ‘짧은 밤’, 20.1%의 고도주에는 ‘긴 밤’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푸른밤 소주가 출시된 후 온라인상에서는 성매매 현장에서 짧은 성관계를 의미하는 ‘짧은 밤’과 성매매 여성과 아침까지 시간을 보낸다는 뜻의 ‘긴 밤’을 제품명에 사용했다는 지적이 이어졌습니다.

이에 신세계 측은 “성매매 은어를 연상한다는 게 이해가 안된다”며 “전혀 그런 의도가 아닌데 왜 이런 논란이 이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죠.

<사진출처 = 누나홀닭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누나홀닭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지난 2017년 3월 20일, 한국여성민우회는 서울 마포구 망원동·홍대입구 일대에서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상 속 발언에 대응하는 ‘포스트잇 거리 액션’을 벌였습니다.

성차별을 조장하거나 여성혐오 문구가 적힌 광고판·상호 등에 ‘왜_때문이죠?’, ‘안 웃겨요’ 등 경고 문구가 적힌 붙임쪽지(포스트잇)을 붙이는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거죠.

이날 민우회는 많은 여성혐오적 모델 기용, 여성혐오 문구 등이 사용된 광고 등에 붙임쪽지를 붙였습니다. 그 중에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상호도 있었습니다.

민우회는 주식회사 티앤비코리아의 치킨 프랜차이즈 ‘누나홀닭(누구나 홀딱 반한 닭)’의 간판과 함께 ‘왜_때문이죠?’라는 문구가 담긴 피켓을 함께 촬영하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여성을 대상화한 상호를 비판한 것이죠.

그러나 티앤비코리아 측은 상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입니다. ‘누나홀닭’이라는 이름이 이전에도 몇 차례 논란이 된 바 있지만 큰일 없이 넘어갔고, ‘누구나 홀딱 반할 만큼 맛있는 치킨’이라는 의미가 있어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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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단체연합 김수희 활동가는 이 같은 여성혐오적·성적 코드를 담은 상호나 제품명은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노출될 수 있는 만큼 문제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상호나 브랜드 이름, 광고 등에는 쉽사리 인지하지 못할 만큼 성적 코드가 교묘하게 숨어있어요. 돈이 된다는 이유로 여성·소수자 혐오, 성적 대상화가 무분별하게 사용되는 거죠.

‘떡치고’ 같은 경우는 성행위를 뜻하는 은어를 사용한, 굉장히 선정적인 이름이네요. 떡볶이, 치킨 배달전문점이라면 청소년이나 아동들에게도 쉽게 노출될 수 있는데 청소년·아동들이 은연중에 이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큰 문제예요.

이와 같은 상호나 제품명이 계속 사용되는 건 관련 규제나 심의할 수 있는 제도가 없기 때문인데, ‘표현의 자유’ 등 논란이 되는 부분이 많아 논의가 많이 필요해요. 다만 규제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진다면 결국 업계에서도 자정 노력을 할 수밖에 없겠죠.”

여성혐오적·성적인 코드를 담은 상호나 제품명은 ‘센스 있는 네이밍’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고 ‘떡치고’의 경우처럼 재미있다는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같은 상호들이 사회에 자연스럽게 녹아내려 성차별을 고착화하기도 합니다. 더구나 어린아이들도 쉽게 볼 수 있는 치킨이나 떡볶이 가게 같은 경우 아이들은 거부감 없이 이를 받아들이게 되겠죠.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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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전략 컨설팅 전문업체 브랜드앤컴퍼니 이상민 대표는 여성혐오적·성적인 코드를 프랜차이즈 이름에 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전문가 입장에서 보자면, 여성혐오적·성적 코드를 담는 등 논란이 예상되는 브랜드 이름은 일차적으로 배제해야하는 대상이에요. 브랜드를 개발할 때 가장 중요시하는 게 ‘네거티브 이미지’인데,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는지 사전에 검토하는 게 ‘제1원칙’입니다. ‘누나홀닭’이나 ‘떡치고’ 같은 경우는 흥미·일시적인 관심 끌기 정도의 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시장과의 적합성을 고려해야 하는데 ‘치킨집 이름이 뭐 저래’ 같은 반응이 나올 수 있어요.

너무 호기심을 유발하거나 관심을 끄는 이름은 브랜드 네이밍 과정에서도 정도(正道)가 아닌 ‘꼼수’를 쓰는 거예요. 여성폄하적이고 성적인 수치심을 자극할 수 있는 이름의 프랜차이즈에 사업의 성패를 맡기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요.”

현실적으로 상호나 제품명을 규제하기는 어렵습니다. 표현의 자유도 있고, 이를 규제하는 게 적절한지도 논란거리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가게 이름에 여성혐오적·성적인 코드를 담는 것은 아쉬운 대목입니다. 성별, 연령을 막론하고 누구나 편하게 찾을 수 있는 이름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성차별을 고착화하거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이름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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