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꿔서 가르쳤네. 부자간에는 선(善)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법이니, 선하라고 요구하면 정이 떨어지게 되지.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네.”<『맹자(孟子)』, 「이루(離婁)ㆍ상(上)」 >

충돌

아이 키우면서 한 번 쯤 겪어 봤을 법한 일일 것이라 짐작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충돌 없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그게 어디 사람마음대로 되는 일인가. 아이들 공부, 성적을 두고 아내와 싸운 적이 있다. 아내는 가끔 아이들이 숙제하는 것을  돕는다. 문제집 채점을 하면서 가르쳐주기도 한다. 어느 날 초등학교에 다니는 막내딸 시진이의 수학 숙제를 돕다가 사달이 났다.

아내가 틀린 답을 고쳐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하는데 시진이가 잘 알아듣지 못했다. 처음엔 조곤조곤 말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시진아, 여기에선 이거하고 저거하고 나눠야 되잖아.”

“...”

“거기에선 이거에서 저걸 빼야지. 알겠니?”

“...”

평소엔 맞추던 문제라서 실수만 바로잡아주면 될 줄 알았는데 얘가 긴장을 했는지 아예 백지상태가 되어버렸다. 이 상황에선 더 가르쳐선 안 된다. 시진이는 기가 죽었고, 아내는 화가 났기 때문이다. 아내도 이런 사실 정도는 안다. 시진이를 방으로 들여보내고 나서 한숨을 쉰다.

“평소에 잘 맞추던 걸 틀릴 수도 있지. 틀린 이유를 모른다는 거에 화가 나네.”

내가 말했다.

“틀려서 주눅이 든 상태인데, 당신이 크게 나무라니까 더 정신을 못 차리는 거잖아. 우선 달래 놓고 천천히 말해 줘야지.”

“내가 그걸 몰라? 내가 소리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 줄 알아? 당신이 한 번 가르쳐봐. 당신은 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그래? 못하면 혼도 내야 되는 거야.”

“나는 애당초 가르치면 안 될 것 같아서 안 가르친 거야. 나도 사람이니까 답답하면 화도 내고 하겠지. 그런데 그럼 안 되는 거잖아. 나한테나 애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애 혼자 못하니까 누구라도 도와야 하는 거잖아. 당신 그렇게 쉽게 말하면 안 돼. 그거 무책임한 거야.”

“아니, 그게 왜 무책임한 거야? 그렇게 화를 낼 거면 뭐 하러 손을 대? 틀렸으면 지적하고 어떤 경우엔 혼을 낼 수도 있겠지. 수학 문제 틀린 게 혼날 일이야? 이런 거 때문에 화를 낼 거면 손을 떼 그냥.”

“그럼 틀리게 그냥 놔둬?”

“그냥 놔두래? 그 문제는 학교나 학원에 맡겨야지. 우리는 수학 선생이 아니잖아.”

아이의 공부에 부모가 개입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만약 옳다면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 것일까?

부모 자식 사이에 책선(責善)하지 않는다

아내와 다투는 내내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하나 있었다. “책선(責善)”이다. ‘책(責)’은 ‘요구한다’는 뜻이고, ‘선(善)’은 ‘선하다’, ‘좋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선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책선”이다. 이 말은 『맹자(孟子)』에 나오는데, 맹자는 “부모와 자식 지간에는 책선하지 않는다.”고 했다.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맹자』의 말을 들어보자.  

맹자의 제자인 공손추가 물었다. “군자가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않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형편상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지.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 도리로써 가르치려고 하는데, 그렇게 가르쳤는데도 자식이 바른 도리를 행하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되고,  화를 내게 되면 도리어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하네. 동시에 자식도 부모를 두고 ‘아버지는 나를 바른 도리로 가르치시지만, 자신의 행실도 반드시 바른 도리에서 나오지 않는구나.’고 생각할 거야. 이렇게 되면 이것은 부자간에 서로 의가 상하는 것이니, 부자간에 서로 의가 상하는 것은 나쁜 일이지. 이래서 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꿔서 가르쳤네. 부자간에는 선(善)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법이니, 선하라고 요구하면 정이 떨어지게 되지. 이보다 더 나쁜 것은 없네.”<『맹자(孟子)』, 「이루(離婁)ㆍ상(上)」 >

이 글은 부모가 자식에게 행동을 가르칠 때 ‘선하라고 요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스마트 폰을 자주 보는 아이에게 “너무 자주 보지 마라. 건강에 해롭다.”는 말을 하면 아이는 “엄마, 아빠는 더 자주 보면서 왜 나한테는 하지 마라 해?”하면서 반발을 한다.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겠지만, 아이한테 ‘책선’을 하려면 부모의 자세가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반드시 아이는 반발을 하게 되고, 부모가 힘으로 누르게 되면 그 때부터 부모와 자식 사이에 틈이 생기고, 끝내 정이 떨어지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맹자의 말을 반드시 ‘행동’에 제한할 필요는 없으며, 현재 부모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 받아들여야 할 점이 있다고 봤다. 부모는 자식이 좋은 학교에 가기를 바라고, 경쟁사회에서 이기거나 살아남기를 바란다. 모두 그렇진 않더라도 많은 부모가 그렇게 생각한다. 그 마음이 잘못되었다고 보지 않는다. 지극히 현실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생각이 지나치면 반드시 탈이 난다. 자식이 생각만큼 하지 못하면 화를 내면서 닦달을 한다. 남의 자식과 비교를 한다. 심지어 자식을 욕하거나 때리기도 한다. 대회 입상을 위해 코치가 선수를 때려도 문제 제기조차 하지 않는 부모도 있다. 모양과 정도가 다를 뿐 이 모두 책선이다. 이렇듯 책선을 하면서 한 결 같이 말한다.

“이게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이것을 과연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렇게 해서 잘 되기라고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잘 되지 않았을 땐 어떻게 할 것인가. 더욱이 자식이 받을 상처는 무슨 방법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부모를 원망하며 마음을 닫아 서로 간에 ‘정이 떨어지는 일’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시간이 흘러 자식이 부모 나이가 되면 다 알게 된다. 부모를 이해하게 될 거다. 잘 되고 나면 다 보상받는다. 세월이 약이다.”

이래 왔고, 이러고 있다.

부모 자식의 정만큼 귀한 것은 없다

아이가 어려워하는 걸 보면서 안타까웠고, 아내가 속상해 하는 걸 보면 답답하면서 화도 났다. 무책임한 아빠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버럭 하면서도 속으론 인정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내 입장에선 고생은 자신이 다 하면서 아이들에게 나쁜 엄마가 되는 사이 아빠인 나는 고작 맹자의 말이나 외면서 좋은 아빠 흉내를 내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언젠가 아내한테 위에 써 놓은 맹자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아내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면서도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맞는 말이기는 해. 그럼 부모는 자식한테 잘하라는 말조차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건 아니잖아. 그리고 학교하고 학원에서 다 해결하지도 못해. 내가 좀 더 조심해야 한다는 건 알겠어. 그러니 당신도 도와줬으면 좋겠어.”

“당신한테 다 미뤄 놓은 것 같아서 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아. 그래도 되도록 당신이 손을 대지 않았으면 하고, 그 시간을 최소화했으면 좋겠어. 나까지 당신하고 같이 하면 아이가 더 힘들어할 수도 있잖아. 대신 다른 방식으로 돕고 싶네.”

조금 풀이 죽어서 책상에 앉아 있는 시진이한테 다가갔다.

“시진아, 수학 어렵지?”

“응.”

 “엄마가 잘하라고 해도 잘 안 되니까 속상하지?”

이 말을 듣자 시진이의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시진아, 어쨌든 이건 너만 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도 다 하는 거잖아. 모르면 선생님한테 물어 보고, 엄마한테 물어봐. 알았지?”

“응.”

“너 속상한 거 잘 알겠어. 근데 엄마도 너 속상한 거 알아. 엄마가 일부러 너 미워서 잘하라고 한 거 아니라는 건 알아?”

“응. 알아. 그래도 속상해.”

“그래. 속상하지. 엄마가 미워서 그래?”

▲ 김재욱 칼럼니스트▷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삼국지인물전 외 5권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삼국지인물전> 외 5권

“아니. 엄마 안 미워. 안 되니까 속상해.”

“그래. 엄마도 시진이도 서로 안 미워해. 그럼 된 거야. 수학 문제는 천천히 해 봐. 엄마하고 아빠하고 너 백점 받는 거 안 바라. 조금씩 알아가기를 바라는 거지.”

“응. 알았어.”

아내와 시진이 사이에 정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 책선을 하되 지나치지 않았으므로 그렇다고 여긴다. 그래도 부모자식 사이에선 책선을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정만큼 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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