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낙태와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의 관계(상)
[칼럼] 낙태와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의 관계(상)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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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미투(me too) 운동을 계기로 페미니즘(feminism)이 사회적 공론의 장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안전하게 살 권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있었던 규범이나 관습 가운데 불평등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반면 여기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응은 다양하다. 기존의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에서 기인해서 논리 없이 이들의 말을 무시하고 억압하는 사람도 있고, 일정 부분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만, 이들의 표현 방식이나 과도하다고 판단되는 주장들에 대해서만 선별적이고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 특히, 페미니스들의 주장 가운데 소위 ‘잠재적 성폭력 가해자’로 간주되는 것에 관하여 반발하면서 능동적으로 자신들을 보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람들의 입장이 이렇게 다양하게 드러나다 보니, 논의의 소재 역시 많은 여성들이  불안해하는 (성)폭력을 비롯하여 직장 내에서의 유리천장, 육아 문제, 그리고 동성애에 관한 입장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 가운데 몸과 관련해서 비중 있게 논의되는 것이 바로 낙태에 관한 문제다. 낙태는 여성의 뱃속에 있는 태아를 없애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몸의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생명이 끊어진 몸을 말할 때 “몸”이라고 말하지 않고, “시체”, “주검”, “시신”이라는 별도의 명칭을 붙인다. “체(體)”라는 글자나 신(身)이라는 글자가 모두 몸을 뜻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몸에 대한 넓은 범위의 정의에서 죽은 몸 역시 모두 몸에 관한 논의 소재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별도의 명칭을 쓴다는 것은 몸에 대한 좁은 범위의 정의에서는 몸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 가운데에서 여성의 뱃속에 있는 태아는 애매한 존재이다. 뱃속에서 아이가 나올 때 흔히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눈, 코, 귀, 입 다 있어?’라고 물어본다. 태아는 이러한 것들이 한참 만들어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애매하다. 또한 “생명”의 문제와 이어진다. 태아가 생명을 가진 존재인지 여부는 그동안 윤리학, 철학, 종교 등에서 많은 논쟁이 있어왔다. 어떻게 보면 태아는 보통의 몸과 죽은 몸 사이의 중간적 존재인 것이다. 결국 태아를 죽이는 문제에서 사람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근대 이전에는 낙태에 대한 논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 역시 “과학기술의 발달” 문제와 직결된다. 서양 의학조차도 발달하지 못했고, 전통적인 한의학과 민간요법에 의존했던 근대 이전에 인구의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영아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백신, 초음파 진단, 유전자 치료 등 지금과 같은 의학 기술이 없었던 시대에 영아는 노인과 함께 가장 죽음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렇다보니 근대 이전 사람들은 많이 낳고, 많이 낳은 그 영아들이 성체가 될 때까지 버티길 바랄 수밖에 없었으며, 여기에 한의학과 민간요법이 조금 도움이 되었을 뿐이다.

또한 근대 이전 영아의 생존은 현실적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산업은 농업이었다. 그리고 농업의 가장 중요한 생산 수단은 인간의 노동력이었다. 그렇다보니 인구의 유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또한 사람 한 명 한 명이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었고(물론 신분 제도가 있는 상황에서 천인은 납세의 의무가 없었다.), 나라를 지키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양상은 남아선호사상과 연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뱃속의 아이에 대하여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단순히 노동력이자 군인, 혹은 세금을 낼 존재로만 생각했을까? 그렇진 않았다. 아이의 탄생은 현실적 문제인 동시에 구성원의 경사로 인식되었다. 그래서 많은 부부와 가족 구성원들이 아이의 탄생을 기원했다. 심지어 전쟁의 과정에서 있었던 성폭행으로 인해 임신을 한 사람들도 “공식적”으로는 “더럽혀진” 존재가 아닌 보호의 대상으로 삼았다.(이 말은 비공식적으로는 정절 이데올로기와 관련해서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의 탄생이 경사로 인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바로 “삼신할머니에 대한 신앙”이었다. 아이는 하늘의 별과 연관된 신적 존재인 삼신할머니가 점지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우리의 전통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이와 유사한 존재들이 세계 각국에서 발견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삼신할머니에게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손이 닳도록 빌어 왔고, 심지어 지금도 이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근대 이전 과학이 상대적으로 발달하지 못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임신과 출산을 기원할 정도로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근대 이전 낙태의 문제는 논의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리고 낙태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근대 이후 앞에서 언급한 종교, 과학, 생명의 존재를 어디까지로 간주할 수 있느냐의 문제 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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