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성범죄 무방비 노출에 거리서도 내쫓긴 여성 홈리스들…“성(性)인지 정책 필요”
폭력·성범죄 무방비 노출에 거리서도 내쫓긴 여성 홈리스들…“성(性)인지 정책 필요”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1.28 14: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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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여성 홈리스 전체 25~26%
과소포착의 결과, 실제 더 많을 수 있어
범죄 위험에 거리에서도 몸 숨길 수밖에
여성 홈리스 만을 위한 보호체계 미비
젠더 특성 반영 성(性)인지 정책 필요
홈리스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소공녀’ <사진 출처 = 영화 ‘소공녀’ 스틸컷>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여성 홈리스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지하철역이나 공공화장실, 공원 등에만 가더라도 어렵지 않게 그들을 볼 수 있다.

주위에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여성 홈리스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깊숙이 숨어들고 있다. 자신들의 존재조차 알지 못하게 말이다.

여성 홈리스들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거리 생활마저도 녹록지 않다. 대다수의 홈리스 시설이 남녀 공용이긴 하지만 사실상 남성 전용 시설에 가깝고 폭력과 성범죄 등 각종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정부는 음지로 숨어든 여성 홈리스들을 외면한 채 손 놓고 있다. 여성 홈리스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을뿐더러 그들만을 위한 마땅한 전용 시설이나 보호소도 턱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여성 홈리스에게 안전한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매년 여성이라는 특성을 반영한 ‘성인지(Gender sensitive)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대책마련은 여전히 미진한 상황이다. 

ⓒ뉴시스
지난 2015년 9월 29일 추석 연휴 마지막날 경기도 수원시 한 공원에서 자원봉사가 제공한 식사로 끼니를 때우는 어르신들 ⓒ뉴시스

내 집은 어디에도 없다

홈리스(Homelessness)는 정해진 주거지 없이 공원이나 지하철역, 대합실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이다. 흔히 ‘노숙인’, ‘부랑인’과 혼재돼 쓰인다.

UN에서는 홈리스를 ▲집이 없거나 옥외, 단기보호시설, 여인숙 등에서 취침하는 사람 ▲집이 있지만 UN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거주지에서 생활하는 사람 ▲안정된 거주권과 직업교육, 건강관리가 충족되지 않은 사람 등으로 정의한다.

국내에는 홈리스에 대한 법률적인 개념이 없다. 다만 1997년 IMF 경제 위기로 실직자가 급증했고 이 영향으로 집 없이 거리로 나오는 사람이 늘어나 응급보호 사업을 통해 노숙인을 위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다 2011년, 상당 기간 일정한 주거 없이 생활하거나 노숙인 시설을 이용 또는 생활하는 사람, 주거지로써 적절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을 ‘노숙인 등’이라는 개념으로 정의해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지원해왔다.

시민단체에서는 ‘노숙인 등’이라는 불명확한 개념보다는 쪽방이나 고시원처럼 비적정한 주거지에서 생활하는 이들까지도 모두 아우르는 홈리스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게 옳다고 주장한다.

ⓒ뉴시스
지난 2013년 11월 28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서울역 인근의 노숙인 ⓒ뉴시스

여성 홈리스로 산다는 것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6년 노숙인 등의 실태조사 결과 및 향후 대책’에 따르면 그해 10월 기준 홈리스는 1만1340명으로 집계됐다. 이중 거리 홈리스는 1522명, 이용시설 홈리스는 493명, 생활시설 홈리스는 9325명, 쪽방 홈리스는 6192명으로 확인됐다.

주목해야 할 점은 여성 홈리스의 비율이다. 최근 5년간 여성 노숙인 현황을 살펴보면 2013년 3204명(25%), 2014년 2929명(24%), 2015년 2883명(25%), 2016년 2899명(26%), 2017년 2814명(26%)으로 여성 홈리스 비율이 현저히 낮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여성 홈리스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실제 숫자보다 적게 집계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있다.

공원이나 광장, 역 부근 등 공개된 장소에서 머무는 남성 홈리스와는 달리 여성 홈리스는 성적 및 신체적 위협을 피하기 위해 찜질방이나 PC방, 만화방 등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 머무는 경우가 많다.

실제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2010년 발간한 ‘서울시 노숙인 지원 정책 성별 영향 평가’를 살펴보면 여성 홈리스의 주요 노숙 장소는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이 53.3%로 가장 많았으며, ‘거리’ 36.7%, ‘돈을 내지 않고 생활하는 곳 6.7%, 기타 3.3% 순으로 나타났다. 응급 잠자리를 선택한 여성은 단 한명도 없었다.

반면 남성 홈리스는 ‘응급 잠자리’가 41.4%로 가장 많고, ‘돈을 내고 생활하는 곳’ 37.1%, ‘거리’ 14.3%, ‘돈을 내지 않고 생활하는 곳 5.7%, 기타 1.4% 순이었다.

여성 노숙인의 경우 노출을 꺼리는 경향이 많아 조사된 수보다 실제론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같은 특성을 반영하지 않아 정확한 여성 노숙인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게 관련 단체들의 설명이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도 여성 홈리스의 가장 큰 특성을 ‘비가시성’이라고 꼬집었다.

이 활동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거리 홈리스 중에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4~7% 수준이다. 젠더 특성상 남성과 달리 여성은 혼자 거리에서 잠을 자기가 쉽지 않다”며 “여성 홈리스가 없는 게 아니라 거리 노숙을 최대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공공 화장실에서 문을 잠그고 잔다거나 마트 대기실, 패스트푸드점, 찜질방 등에서 은둔해 생활한다”며 “거리나 시설, 상담소가 설치된 쪽방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로는 정확한 현황 파악이 어렵다. 이 경우 여성 홈리스를 과소포착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또 주요 노숙 장소 선택 이유에 대해 ‘다른 지역보다 조용하고 안전해서’라고 응답한 여성은 26.7%인 반면 남성은 12.8%로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남성보다 여성이 안전에 대한 욕구가 크다고 해석된다. 이 같은 결과는 여성 홈리스가 폭력과 성폭행, 금품갈취, 협박 등 각종 위험과 범죄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각종 범죄에 노출되더라도 신고를 하거나 도움을 청하기 어려운 게 여성 홈리스가 놓인 현실이다.

실제 지난 2017년 4월 대전광역시의 한 공터에서 일정한 거주지 없이 역 인근에서 노숙 생활을 하던 홈리스 여성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안면이 있던 남성과 술을 마시는 과정에서 말다툼이 벌어졌고, 격분한 남성에 의해 이 같은 변을 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동현 활동가는 “아침을 먹기 위해 급식소에 갔다가 남성 홈리스에게 시선·언어에 의한 성폭력을 겪은 사례도 있다”며 “마땅한 거처가 없는 여성이 어떤 범죄에 대한 문제를 제기됐을 때 당장 구속될 만큼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면 결과는 뻔하다.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여성 홈리스만을 위한 정책 마련돼야”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와 주정부, 민간, 학계 등 각계각층이 손을 잡고 홈리스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

미국의 노숙인 지원 법률 ‘the McKinney-Vento Homeless Assistance Act(맥키니 벤토법)’에서는 가정폭력으로 주거 유지가 불가피한 사람, 홈리스 청소년, 가족, 아동, 장애인, 퇴역군인 등 노숙인의 범위를 상세히 나누고 있다. 지원정책도 이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데 뉴욕 시의회의 경우 공립학교와 노숙인 쉼터, 교정 시설 등의 여성 홈리스를 위해 생리대를 무료로 제공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은 취약층인 여성 홈리스에 대한 우선적 지원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위한 보호체계가 터무니없이 미비하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바른미래당 간사 최도자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12월 기준 여성 노숙인 전용시설은 전국 15곳에 불과했다.

이들 시설의 정원은 961명으로, 전체 여성 노숙인의 34.2% 정도만 수용 가능한 수준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울에 9곳, 인천에 2곳 등 수도권에만 몰려있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성 홈리스가 처한 특수 상황을 고려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김진미 열린여성센터 국장은 글 <여성노숙인의 존재와 배제>를 통해 홈리스인의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는 정책과 아울러 여성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한 탈노숙과 자립을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여성 홈리스에게 접근하기 위한 전담 아웃리치 활동 정례화와 정신건강상 취약성을 가진 그들과의 신뢰를 다지기 위해 지속적이고 전문적인 활동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또 아동을 동반할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들에게 적합한 친근한 물리적·사회적 환경을 만들고 여성, 장애, 고령 등 다양한 특성을 반영한 일자리 창출과 근무조건의 유연화, 일자리 안정성 확보를 위한 양육지원 체계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봤다.

이동현 활동가는 현재 홈리스를 위한 정책들은 몰성적(gender blind, 성(性)에 대한 인식이 없는)이라고 지적하며, 구체적인 대책 방안으로 여성 홈리스 종합지원센터 구축을 제안했다.

이 활동가는 “쉼터나 노숙인 시설로 연계할 수 있도록 중앙의 역할을 하는 여성 홈리스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 이와 더불어 여성의 특성을 반영한 급식 시설이나 주거 관련 지원, 일자리 등이 부가적으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무엇보다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이 필요하다. 현재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한곳이 있지만 홈리스 수요도 적고 접근성도 떨어진다. 때문에 아주 제한적인 기능밖에 하지 못한다”며 “여성 홈리스가 많이 모인 서울역 근처로 옮기거나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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