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행정규칙 있으나 지자체 보호소만 적용돼
동물복지증진 위해 사설보호소 자격·기능 논의돼야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동물권단체 케어 박소연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서초구의 한 빌딩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한 동물보호단체가 구조한 동물 수백마리를 안락사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현행 행정규칙인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에는 안락사에 대한 규정이 마련돼 있으나 이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에만 적용될 뿐 사설 동물보호소에는 적용되지 않아 안락사 사각지대에 놓인 유기동물의 생명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설 동물보호소에 대한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유기동물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우선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설 동물보호소에 대한 기준과 운영 목적 등 관련 규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설보호소가 수용능력 등을 이유로 유기동물을 안락사했으나 관련 규정 미비로 이를 막을 수 없는 상황에 동물보호단체는 물론 시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케어’ 박소연 대표, 무분별한 안락사로 논란

지난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기견 ‘토리’를 입양한 곳으로 알려진 동물권단체 ‘케어’의 박소연 대표가 보호하던 동물 수백마리를 몰래 안락사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탐사보도전문매체 <셜록>과 <한겨레> 등에 따르면, 케어의 동물관리국장 A씨는 “박 대표가 보호할 공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구조한 동물들을 안락사했다”고 폭로했다.

A씨는 지난 2015년부터 2018년까지 박 대표의 지시로 최소 230마리 이상의 개와 고양이를 안락사시켰다. 같은 기간 케어가 구조한 동물은 1100여마리이며, 케어는 이 중 745마리를 입양시켰다고 했다. 그러나 케어는 안락사한 동물들도 입양동물 수에 포함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어는 ‘안락사 없는 보호소’를 주장해왔다. 이 때문에 다른 동물보호단체가 아닌 케어에 후원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 후원자들은 후원을 끊기 시작했고 시민들도 함께 분노했다.

논란이 일자 케어는 입장문을 통해 “2015년경부터 2018년까지 소수의 안락사가 불가피했다”고 밝혔다.

이어 “케어의 안락사 기준은 심한 공격성으로 사람이나 동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치는 경우, 전염병이나 고통·상해·회복 불능의 상태, 고통 지연, 보호소 적응이 불가한 신체적 상태 및 반복적인 심한 질병 발병 등”이라며 “엄청난 병원 치료비를 모두 감당한 후에도 결국 폐사되거나 안락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이제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도 지난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안락사 사실을 알릴 경우 쏟아질 비난과 논란이 두려워 수년간 내부 소수 임원들의 합의로만 안락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락사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박 대표는 “케어의 안락사는 대량 살처분이 아닌 인도적 차원의 안락사였다”며 “정부지원 없이 후원으로 운영되는 민간 보호소에서는 제반 조건의 한계 등으로 법적 근거와 기준을 갖고 안락사 여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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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 보호소만 적용되는 유기동물 안락사 기준

전국 지자체 동물보호센터의 실시간 유기동물 통계정보를 제공하는 ‘포인핸드’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월 1일부터 지난 29일까지 총 22만8260마리의 동물이 유기됐으며 이 중 20.1%인 4만5846마리가 안락사 됐다.

위임행정규칙인 동물보호센터 운영지침은 안락사(인도적인 처리) 대상 동물을 명시하고 있다.

이 지침 제20조는 ▲1순위. 홍역, 파보, 장염 등 전염성과 치사율이 높은 질환에 감염되거나 상해로 인해 건강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개체 ▲2순위. 치료비용, 치료기간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보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개체 ▲3순위. 건강상태가 쇠약하거나 심장질환, 백내장, 호르몬 질환 등에 감염돼 분양 후에도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한 개체 ▲4순위. 사람 및 동물을 공격하거나, 교정이 어려운 행동 장애 등으로 인해 분양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개체 ▲5순위. 그 밖에 센터 수용능력, 분양가능성 등을 고려하여 보호·관리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는 개체로 안락사 대상을 정하고 있다.

유기동물이 보호센터에 입소하게 되면 시·도지사와 시장·군수·구청장은 이 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공고 이후 10일이 지나도록 유기동물의 소유자를 알 수 없거나 소유자가 소유권을 포기한 경우 또는 소유자가 보호비용의 납부기한 종료 이후 10일이 지나도록 납부하지 않은 경우에는 지자체가 소유권을 취득한다.

지자체가 소유권을 취득한 유기동물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 처리가 가능하다. 안락사는 수의사가 시행해야 하며 그 외 1명 이상이 입회해야 한다. 안락사를 시행할 때도 다른 동물이 볼 수 없는 별도의 장소에서 신속히 해야 하고 안락사에 사용되는 약제는 책임자를 지정해 관리해야 하며, 사용기록 등을 작성·보관해야 한다.

그러나 이 지침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동물보호센터에 한해 적용된다.

다만 민간보호소가 안락사를 시행하지 못한다는 규정은 없으며 이를 제지할 수 있는 제도 또한 없다.

박 대표는 전문가의 진료소견 없이 자신의 임의대로 안락사 대상 동물을 정했다. 박 대표는 ‘동물사랑실천협회(현 케어)’ 대표로 있던 지난 2013년 돈을 받고 위탁 보호하던 반려견을 안락사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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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동물 안락사 0%대 독일

유기동물 보호센터가 가장 모범적으로 운영되는 대표적인 국가로는 독일이 있다. 독일의 연방 동물보호법(Bundestierschutzgesetz) 제1조는 ‘동물과 인간은 이 세상의 동등한 창조물이다. 인간에게는 합리적 이유 없이 동물을 해할 권리가 없다’고 정하고 있다.

반려동물 매매가 법적으로 금지된 독일은 유기동물 입양을 담당하는 보호소 ‘티어하임(Tierheim)’을 전국 500여개 이상 운영하고 있다. ‘동물의 집’이라는 뜻의 티어하임은 대부분 민간단체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티어하임은 입양을 원칙으로 유기동물을 보호한다. 독일은 0%에 가까운 유기동물 안락사율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곳에서도 안락사는 이뤄진다. 다만 안락사를 결정할 때는 동물보호 관련 전문가 의견을 바탕으로 정당한 근거를 제시해야 하며, 이를 근거로 티어하임의 수의사가 최종 결정한다.

하지만 안락사 대신 입양이 기본 방침이며, 티어하임에 보호되는 유기동물은 입양되지 않더라도 기한 없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지낼 수 있다. 지자체 보호소의 수용능력 때문에 유기동물이 안락사되는 한국의 현실과는 다른 모습이다.

지난 2012년 8월 강원 춘천시 춘천유기동물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유기묘.(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지난 2012년 8월 강원 춘천시 춘천유기동물보호소에서 보호 중인 유기묘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사설보호소 정의조차 없어…“보호소 기준 마련 우선돼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0년 동물보호법 개정안에 유기동물에게 질병 등 규정된 사유가 있을 경우 ‘수의사에 의해’ 안락사를 시행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시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벌칙조항을 도입했다.

이에 케어(당시 동물사랑실천협회)는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한국동물보호연합 등과 함께 ‘수의사 이외에 동물단체 직원에 의한 안락사를 법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A씨의 폭로 이후 박 대표가 ‘개·고양이 도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지자체 보호소에서도 안락사를 시행하고 있고, 동물들이 도살될 바에는 보호소에서 안락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물보호단체들은 사설보호소의 안락사 기준 논의에 앞서 동물 유기 방지와 보호를 위한 포괄적인 논의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동물보호단체 ‘동물권행동 카라’의 전진경 이사는 “현재 사설보호소는 그 정의조차 돼 있지 않다”며 “애니멀 호더(능력 범위를 넘어 지나치게 많은 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스스로 사설보호소라고 칭할 수 있는 상황에서 사설보호소의 안락사 기준부터 논의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느낌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선 반려동물복지 증진을 위해 현황과 당면과제를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 포괄적으로 논의돼야 한다”면서 “이 과정에서 사설보호소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안락사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지가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림부는 지난해 말부터 사설 유기동물보호소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다. 농림부는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농림부의 조사로 사설보호소에 대한 보호체계나 사회적 기능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박 대표의 유기동물 안락사 논란으로 유기동물을 보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지자체가 수용능력 한계로 사설보호소의 역할이 더욱 커져가는 상황에서 사설보호소의 기준을 정립하기 위한 제도 마련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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