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하 칼럼니스트▷소설가·여행작가·영어강사▷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카와라우 당선▷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 최민하 칼럼니스트
▷소설가·여행작가·영어강사
▷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카와라우> 당선
▷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투데이신문 최민하 칼럼니스트】 베트남 중부지방에 위치한 호이안을 여행할 때였다. 관광책자에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보다가 안방비치 자전거 투어가 눈에 띄었다. 호이안 시내에서 안방비치까지 자전거로 갔다 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어른이 된 후 고작 공원 몇 번 돌아본 정도의 실력이라 오토바이로 북적거리는 베트남 도로상황을 상상하면 자전거를 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까페에서 아이스 커피를 마신 후 관광책자를 두고 거리로 나왔다. 지나가다가 자전거 대여소를 힐끔 쳐다보았는데, 베트남 청년이 어찌 알았는지 뛰쳐나와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호객행위를 했다. 내게만 해준다는 특별 가격에 혹한 건지, 이미 까페에서 낭만 가득한 자전거 투어라는 말에 매료된 건지 알 수 없지만, 나는 어느 새 도로 가장자리에 서서 자전거 핸들을 잡고 있었다.  

자전거에 올라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그런데 자전거가 내 의도와 상관없이 대각선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시끄럽게 울려대는 오토바이 경적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어 자전거를 끌고 도로 가장자리로 되돌아왔다. 심호흡을 하고 다시 한 번 페달을 밟았지만 휘청거리는 자전거는 페달에 있던 발이 겨우 땅을 밟고서야 멈출 수 있었다. 자전거 대여해준 베트남 청년이 달려와 물었다. 

“괜찮아? 탈 수 있겠어?”
“오랜만에 타서 그런가봐.” 베트남 청년이 자전거를 똑바로 세우고 좌석을 내려주며 훨씬 편안할 테니 타 보라고 손짓했다. 서툰 영어로 소통 안 되는 무언가를 말하려는 베트남 청년의 몸짓을 바라보는데 어렸을 때 처음 자전거를 배우며 들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몇 번을 넘어지며 뒤돌아보던 내게 했던 말이었다. 

‘계속 페달을 밟아. 중심을 잡고. 앞을 보고. 계속 움직여야지.’ 
베트남 청년이 몸짓으로 그렇게 말하는 듯 했다. 그는 안방비치까지 가지 못하고 뭔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전화번호를 적어 주었다. 뒤돌아 슬쩍 보니 내가 걱정되는 건지 아니면 베트남에서는 꽤나 비싼 자전거가 걱정되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베트남 청년은 안절부절못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을 뒤로 하고 주문을 외우듯이 중얼거렸다. 
‘중심을 잡고. 앞을 보고. 계속 움직여.’ 

자전거는 한 번 궤도를 찾자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도심지를 벗어난 해안가 도로 위는 오토바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몸에 전해지는 데 마치 얼음 가득한 유리잔에 들어있는 청량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 마신 듯 시원했다. 자전거가 몸에 익숙해지니까 뒤에서 울리는 경적 소리에 더 이상 움찔거리지 않고 나의 속도에 맞게 바다 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달릴 수 있었다. 뒤에서 속력을 내며 내 앞을 스쳐 지나가는 자전거가 있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내게 맞는 속도를 만들어 갔다.
 
내 인생의 속도는 얼마쯤일까? 
중심을 잡고 앞을 바라보며 계속 움직이다 보면, 
내게 가능한 속도를 알게 될 날이 올까? 
가능하지 않은 속도를 욕심내서 허우적거렸던 건 아닐까? 
생각들의 꼬리 속에서 내 눈을 파랗게 물들이는 안방비치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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