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보·공주보 수문 개방 후 많은 생태계 변화 나타나
지난해 여름 녹조 사라지고 모래·자갈 유입량 많아져
수문 열리지 않은 백제보는 녹조·저질토 여전히 문제
보 해체·수문 전면 개방하면 금강 빠르게 회복 가능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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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예년보다 무더위가 일찍 찾아왔던 2017년 6월에 마주한 금강의 모습은 참담했다. 자갈과 금빛 모래로 반짝이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녹조가 창궐하고 악취가 진동하는 저질토(하천이나 호소를 준설할 때 나오는 침전 퇴적물)가 들끓었다. 삽으로 퍼 올린 저질토에는 4급수의 물에서 서식하는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하천 인근에 넓게 펼쳐진 수변공원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지 꽤 오래 지난 듯 풀만 무성하게 자라 음산한 기운만 가득했다.

녹조와 저질토로 얼룩진 금강은 멀리서 볼 때만 아름답다 해 ‘100m 미인’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비극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국형 녹색 뉴딜 사업의 일환으로 ‘4대강유역종합개발사업(이하 4대강 사업)’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가뭄과 홍수 예방, 생태계 복원, 원활한 농업용수 공급에 따른 식량 증진 및 영농의 안정화 등을 목표로 한강, 낙동강, 금강, 영산강과 섬진강 및 지류에 16개의 보(洑)와 댐 5개, 저수지 96개를 설치했다. 사업에 투자된 비용은 22조원에 달했다.

그런데 2013년 감사원의 <4대강 사업 주요 시설물 품질과 수질 관리 실태> 조사 결과 부실한 설계로 인한 보의 내구성 부족, 수질 악화, 보강 공사 부실 등 허점이 확인됐고, 4대강 사업은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으로 판명됐다.

그러나 4대강은 이미 녹조와 저질토에 점령돼 본래 모습을 완전히 잃어버린 뒤였고,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죽어가는 4대강에 새 숨을 불어넣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4대강 생태계 변화를 정밀 조사한 뒤 보 수문 개방과 보 철거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밝히며 4대강 살리기 사업의 첫 삽을 떴다.

그리고 지난해 금강 상류에 설치된 세종보와 중류에 설치된 공주보의 수문이 완전히 개방됐다. 이후 금강에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그해 여름 금강 상·중류에서는 녹조가 피지 않았고, 저질토가 씻겨나간 자리엔 모래와 자갈이 쌓이기 시작했다. 한층 맑아진 물에서는 수달이 헤엄치고 모래톱 위에는 물새들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구만리다. 금강의 백제보를 포함한 몇몇의 보 수문이 굳게 닫혀있고, 보 존치 여부에 대한 논쟁과 갈등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년 새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금강을 다시 찾았다. 이날 취재에도 <오마이뉴스>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금강의 실태를 널리 알리고 있는 ‘금강요정’ 김종술(53)씨가 함께했다.

세종보 수문 개방의 영향으로 뻘이 가득했던 창벽에 많은 양의 모래가 유입됐다. 곳곳에서 야생동물 서식의 흔적들도 발견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세종보 수문 개방의 영향으로 펄이 가득했던 창벽에 많은 양의 모래가 유입되고 새롭게 물길이 나고 있다. 곳곳에서 야야생동물 서식의 흔적들도 발견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세종보 수문 개방 1년, 희망이 보인다 

강의 흐름에 따라 상류, 중류, 하류 순으로 둘러보기로 하고 가장 먼저 상류 세종보로 향했다. 잠시 차를 세운 김씨는 보여줄 것이 있다며 기자를 ‘창벽(倉碧)’으로 안내했다.

창벽은 충남 공주시 반포면 마암리에 소재한 금강변의 절벽이다. 바위 절벽과 그 밑으로 흐르는 금강이 어우러진 절경을 자랑하는 창벽에 대해 조선시대 대문장가인 서거정은 중국의 적벽과 창벽을 동일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창벽도 한때 저질토와 녹조 등 4대강 사업의 악영향으로 몸살을 앓았다. 처음 수문을 개방했을 땐 강변이 온통 저질토가 섞인 시커먼 펄로 뒤덮여있었다. 이제는 유속에 펄이 휩쓸려 나갔고 그 자리엔 자갈과 모래가 겹겹이 쌓였다. 천연기념물 수달이 수영도 하고 물고기를 잡아먹을 수 있을 만큼 수질도 좋아졌다. 김씨는 강의 상태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과도기 단계에 있다고 했다.

“모래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요. 수문 개방만으로도 이렇게 큰 효과가 나타나요. 그렇다고 아직 완벽하게 펄이 씻겨나간 건 아니에요.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 보이죠? 저기는 아직 펄층이에요. 모래에선 풀이 자랄 수가 없거든요. 모래층 아래도 펄이 남아있을 수 있어요. 펄이 완전히 씻겨나간 후 모래와 자갈이 쌓이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기도 하니까요. 아직은 강이 살아났다고 보기는 어렵고 과도기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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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보는 현재 완전 개방된 상태다. 내려간 수문의 작동 여부는 알 수가 없다. 일부에서는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투데이신문

수문 개방 전과 후의 차이는 세종보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차츰차츰 수위를 낮춰가던 세종보는 현재 완전히 개방됐다. 김씨는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데 가봅시다. 여기 올라온 사람 몇 명 안 돼요”라며 앞장서서 세종보 위에 올랐다. 보 위에 서서 바라본 금강은 평화로웠다.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기도 하고 모래톱에서는 물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간간이 물어뜯긴 물고기와 조류의 사체가 눈에 띄었다. 기자가 소스라치게 놀라자 김씨는 “사람이 보기엔 징그러울 수 있지만 당연한 생태계 이치잖아요. 우리는 더 잔인하게 잡아먹는데요 뭐”라는 우스갯소리로 수질오염으로 인한 폐사가 아니기 때문에 괜찮다는 말을 대신했다.

물론 아직 수문 개방의 효과가 닿지 않은 곳도 있었다. 물이 빠진 후 드러난 저질토를 한 움큼 퍼 올리자 가느다란 4급수 지표종 실지렁이가 발견됐다. 수면 위로는 뽀글뽀글 공기방울이 계속해서 올라왔다. 펄이 쌓이며 썩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김씨는 “세종보 수문을 처음 열었을 때는 일대가 전부 이랬었다”며 “결국 보를 해체하고 나면 아직 회복되지 않는 곳들도 제 모습을 곧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대강 사업에서 사용된 공사자재들 ⓒ투데이신문
4대강 사업에서 사용된 공사자재들 ⓒ투데이신문

최근 세종보에서는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물길이 새로 난 곳에서 톱마대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처음에는 몇개가 물에 떠내려왔다고 생각했지만 갈수록 그 수가 늘어났다고 한다. 김씨는 세종보를 공사하면서 물길을 막기 위해 쌓아뒀던 톱마대와 천막 등 공사자재를 제대로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시공사인 대우건설 담당자도 시간 부족으로 미처 처리하지 못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단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아닌 예견된 문제였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대우건설이 철거 작업을 시행한 후였다. 이 작업에서 수거된 공사자재만 해도 약 37톤에 달했다. 하지만 아직 곳곳에는 수거되지 않은 자재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김씨는 아직 철거되지 않았을 자재와 다른 보에 묻혀있을 자재들까지 따지면 훨씬 더 많을 거라며 혀를 내둘렀다. 또 마대자루와 천막의 소재는 화학섬유이기 때문에 삭아서 잘게 부서지면 미세플라스틱이 되는데 사람이나 물고기가 먹게 되면 몸속에 축적돼 질병의 원인이 될까 우려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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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방문 당시 약 20cm 열려있던 공주보(상)와 이번 취재에서 촬영한 수문이 완전 개방된 공주보(하) 비교 사진 ⓒ투데이신문

“공주보 철거를 반대한다”

공주보로 이동하기 전 금강 중류 인근에 위치한 국가지정문화제 명승 제21호 고마나루(곰나루)에 들르기로 했다. 고마나루는 지난 취재에서 기자가 붉은깔따구와 실지렁이가 우글우글했던 저질토를 퍼냈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하곤 많이 달라졌어요”라는 김씨의 말에 설렘을 안고 도착한 고마나루는 정말 많이 변해있었다.

물에서 올라오던 시궁창 냄새도 사라지고 상류에서부터 쓸려 내려온 모래가 밭을 이뤘다.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자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이 비단결같이 흘러내렸다. 고마나루 모래도 펄 위에 쌓이긴 했지만 상류보다는 질이 좋은 편이라고 한다. 김씨는 상류에서 모래만 흘러내려온다고 하면 사람 키만큼이나 높게 쌓일 것 같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수문을 연다고 할지라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 했다. 4대강의 수문을 모두 열어도 회복하기까지는 10~20년은 족히 걸릴 거라고 봤다. 김씨도 다른 사례가 없으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문을 연지 1년, 금강은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김씨는 모든 수문을 열고 보까지 해체한다면 2~3년 안에 예전과 비슷한 모습을 찾을 거라고 기대했다.

공주보로 자리를 옮겼다. 김씨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수문이 모두 열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주보 인근에는 보 해체를 반대하는 농민들의 메시지가 남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투데이신문
공주보 인근에는 보 해체를 반대하는 농민들의 메시지가 남긴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있다. ⓒ투데이신문

산 넘어 산이라고 했던가. 수문 개방은 금강 회복 중 넘어야 할 큰 산 중 하나에 불과했다.

김씨는 최근 공주보를 두고 인근에 사는 주민들과 갈등 때문에 시끌시끌하다고 했다. 이달 중순경 정부의 4대강 보 처리방안 관련 발표가 예정돼 있는데 벌써부터 공주보가 해제될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돌아 주민들이 강력 반대하며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실제 공주보 근처에는 “주요 교통로 공주보 철거를 반대한다”, “공주보 철거를 반대한다. 철거비로 유지보수 하라”등 보 해체 반대를 주장하는 현수막들이 설치돼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강의 회복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유지비용 부담과 여러 갈등을 유발하는 보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인근의 주민들은 주요 교통로인 공주보 공도교를 절대 해체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김씨는 아직 보 해체 여부가 확실하게 결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누군가 농민들에게 얘기를 흘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다고 했다. 금강 생태계 회복을 위해서는 보가 반드시 해체돼야 맞지만, 주민과의 충분한 소통 후에 모든 게 결정돼야 한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금강 하류에 설치된 백제보 ⓒ투데이신문
금강 하류에 설치된 백제보 ⓒ투데이신문

백제보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발길이 닿은 곳은 금강 하류에 위치한 백제보. 백제보는 앞선 세종보, 공주보와는 달리 수문 개방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겨울이라 기온이 낮아 녹조가 필 수 있는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백제보 인근의 수면에는 녹조 띠가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김씨는 “지난해 백제보는 최악의 여름을 보냈다”며 사진 몇 장을 꺼내 보였다. 도저히 강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녹조가 피어있었다. 그 강물에 담갔다 꺼낸 김씨의 손에는 끈적한 녹조가 엉겨있었다. 녹색 페인트 통에 빠졌다고 해도 속을 정도다.

충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충남 부여군 ‘백마강교’도 예외 없이 녹조에 점령됐다. 그런데 그 물 위에서 전국카누대회가 열렸다는 것. 김씨가 부여군과 대한카누연맹에 문제를 제기했지만 양측 모두 대회를 취소할 의사는 없었다. 김씨는 “자기 자식이어도 이런 물에서 레저를 즐기라고 하겠느냐”며 성을 냈다.

양수장 주변도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 물을 가져다 농업용수로 사용한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녹조에 들어있는 남조류 독성물질인 ‘마이크로시스티스’가 재배작물을 통해 고스란히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갈게 뻔했다.

지난해 여름 백제보에는 많은 양의 녹조가 피었다. 녹조가 엉겨있는 김종술씨의 손과 백제보 상류의 청양양수장 전경 ⓒ투데이신문
지난해 여름 백제보에는 많은 양의 녹조가 피었다. 녹조가 엉겨있는 김종술씨의 손과 백제보 상류의 청양양수장 전경 <사진 제공 = 김종술씨>

마이크로시스티스는 녹조에서 발견된 물질 가운데서도 매우 강한 독소다. 특히 간에 매우 치명적이며 열을 만나도 쉽게 파괴되지 않아, 조리를 하더라도 마이크로시스티스의 위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김씨는 아직까지 국내 작물 중 남조류 독성물질이 발견된 사례는 없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이네요”라는 기자의 말에 김씨의 대답은 경악스러웠다.

“당연히 발견될 수가 없죠. 조사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요.”

지난해 9월 인근 농민과 부여군 등 관계기관이 ‘백제보 개방 추진 업무협약’을 맺고 수위를 단계적으로 낮춘 뒤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미루고 미루다 지난해 10월 17일 전면 개방됐지만 15일 만에 굳게 닫혀 버렸다. 언제 또다시 백제보의 수문이 열릴 수 있을지, 이대로 올해 여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닌지 김씨의 마음 한 편이 무겁다.

고마나루 명승지 건너편에서 바라본 금강 <사진 제공 = 김종술씨>

강 한가운데 세워진 인간의 욕심이 몰고 온 파문은 너무나 컸다.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자연의 산물을 완전히 파멸시켰고, 인간의 건강과 먹고사는 일마저도 위협했다. 망가질 대로 망가진 강의 회생은 기적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기적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인간은 강을 무참히 버렸지만, 강은 손을 내밀었다. 인간의 욕심을 하나둘씩 거둬낼 때마다 더디지만 조금씩 잃어버린 옛 모습을 회복 중이다.

고요한 금강 물결에 비친 붉은 해넘이 속에서 뜨거운 희망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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