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는 일본만화가 있다. 원제는 ‘긴다이치 소년의 사건부’인데 김전일이라는 소년이 뛰어난 추리력으로 어려운 사건을 해결하는 내용이다. 만화영화로 제작되어 우리나라에도 방영됐다. 

주인공인 김전일은 난해한 트릭들을 풀어가며 범인을 찾아낸다. 동시에 사람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과 상황이 어떻게 사건으로 비화했는지 밝혀낸다. 이 만화에선 매회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식이 있다. 우선 관련자들을 모두 한 방에 모은다. 그리고선 여러 트릭을 하나씩 설명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소리친다. ‘범인은 이 안에 있어!!’. 약 30초의 광고 시간 후 이어진 장면에서 대개 그의 추리는 확률 100%로 들어맞는데, 범인으로 지목된 사람의 표정이 이미 반쯤 포기상태에 놓인 걸 시작으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난다. 범인의 자백과 함께 관련자들의 대화가 오고 가면 반성과 화해의 장이 펼쳐진다. 소년은 매회 완벽하게 범죄자를 찾아낸다.

소년탐정 김전일에선 재판과정이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회차를 보진 못했지만, 지금껏 봤던 대부분의 사건이 법정에서 다시 어떻게 다뤄지는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범인은 김전일에 의해 확정된다. 사건의 전말에 대한 강력한 논리가 펼쳐졌고, 범인이 자백하는 마당에 범인으로 지목당한 이가 유죄라는 것에 모두 동의한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아이큐 180인 소년의 추리가 매우 합리적으로 범인을 지목하지만, 그의 주장도 결국엔 ‘그러할 것이다’라는 추정을 바탕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어찌됐든 그것은 여전히 심증의 확신 아래에 있다. 논리는 논리로 깨지기 마련이란 점을 생각해 보면 안일하기 그지없다. 물론 그 방에서 김전일이 결정적 물증을 들이밀고는 하지만, 법정에서는 피고인이 다른 논리를 들어 그 물증의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모두는 탐정 김전일이 판사 김전일로 둔갑하는 일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물론 만화영화일 뿐이지만 때때로 저런 일이 현실에 벌어진다면 과연 김전일의 추리가 실제 법정에서도 인정될지 생각해 보곤 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재판부는 그가 닉네임 ’드루킹’으로 불리는 김동원씨와 공모해 여론을 조작하는 위법한 행위를 하였다고 봤다. 애초에 김씨는 김 지사가 자신들의 범행을 알고 있었으며 승인 및 관리했다고 주장했고, 김 지사는 김씨의 범행 사실을 몰랐으며 지시한 바도 없다고 했다. 양측의 주장은 완전히 상반됐다. 판결직후 인터넷에 올라온 판결문 속기록을 보면 재판부는 드루킹 김씨의 주장과 정황들만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며 김 지사가 유죄라고 판단한다. 속기록을 읽으며 나는 마치 소년탐정 김전일을 보는 듯했다.

오해를 막기 위해 굳이 말하자면, 나는 김 지사의 주장을 전혀 믿지 않는다. 그의 주장을 믿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은 말 그대로 주장일 뿐이고, 결정적인 물증이 제시됐다는 보도를 접한 바가 없다. 마찬가지로 드루킹 김씨의 주장도 전혀 믿지 않는다. 그의 주장 또한 주장일 뿐이어서 액면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양측 중 어느 한 쪽이라도 완벽하게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CCTV라든가 녹취파일 또는 서류 정도는 있어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때문에 재판부의 판단과 그 판단이 가능한 논리적 이유가 궁금했었다.

물론 재판부로선 꼭 직접증거가 아니더라도 공판중심주의에 입각하여 심증을 만들어감에 있어 여러 제출 증거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속기록 속에서 재판부는 문제가 된 댓글조작 프로그램의 개발 일정과 목표일 등이 김 지사도 인정하는 경공모 방문일자와 상응관계에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모든 부분에 추정을 확장하고 있다. 프로그램 로그기록과 메신저 내용들을 토대로 하는 그러한 의심은 일면 당연하다. 재판부의 논리는 마치 김전일로부터 사건 설명을 듣는 것처럼 앞뒤가 어느정도 맞는다. 그러나 판사가 탐정은 아니지 않은가. 

김 지사 측의 논리도 드루킹 김씨의 주장을 나름 일관되게 방어하고 있는 상태에서, 추론만 가능할 뿐 어느 한쪽의 확실한 증거가 없는 경우에 법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까.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든가 공판중심주의라든가 하는 것들을 갖다 댈 것 없이,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마치 김전일처럼 일방의 주장에 근거한 추리에 의해 판결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당혹스럽다. 개인적으론 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 재판부의 판단이 이루어진 깊은 내용을 속속들이 모르고서 속단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판결 속기록을 읽으며 자신의 아이큐 180을 믿어보라는 주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던 그 방들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다. 만약 재판부의 판단이 옳았고 이에 대중이 모르는 법리적 근거나 확실한 증거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런 정도의 판단으로 유죄가 가능한 것인지 의아해하는 이들이 많다. 덕분에 1심 판결 후 여기저기에서 소년탐정들이 속출했다. 모두가 진짜 답은 따로 있다고 소리친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는 이번 1심 재판장이 최근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벌인 사법농단과 관련한 인물이어서 정치적으로 편향된 항거를 일으켰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김전일식 추리이긴 마찬가지다. 김 지사를 정황만으로 유죄라 해선 안된다고 주장하려면 재판장에 관해서도 정황만으로 의도를 추정하는 주장을 해선 안 된다. 그럼에도 논리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 여기저기서 김전일 게임이 일어났다. 이는 재판부 또한 수많은 김전일 중의 하나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깨지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왜 소년탐정 김전일에선 법정이 안 나오는지 생각해 봤다. 그저 추리만화이기 때문이다. 추리를 통해 퍼즐을 풀어가는 것은 현실이 아닌 지적유희에 불과하지만, 엄정한 재판과정은 판단이 쉽지 않은 어른들의 현실세계다. 소년탐정과 시청자는 법정에서 정의가 온전히 지켜질 것을 믿고 있기에 추리까지만 하면 된다. 법과 제도가 어련히 알아서 잘해 주겠지. 

법정에서 내려진 재판부의 판단을 상대로 ‘소년탐정 김전일 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건, 그 자체로 지금 우리사회가 맞이한 현실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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