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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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강동수 작가가 지난해 9월 펴낸 세월호 추모 소설 ‘언더 더 씨’가 최근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언더 더 씨’는 강 작가가 펴낸 동명의 소설집에 수록된,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여학생 ‘단비’의 시점으로 전개되는 작품입니다. 작중 논란이 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쯤 땅위에선 자두가 한창일 텐데. 엄마와 함께 갔던 대형마트 과일 코너의 커다란 소쿠리에 수북이 담겨있던 검붉은 자두를 떠올리자 갑자기 입속에서 침이 괸다. 신 과일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 성화에 엄마는 눈을 흘기면서도 박스째로 자동차 트렁크에 실어오곤 했는데……. 내 젖가슴처럼 단단하고 탱탱한 과육에 앞니를 박아 넣으면 입속으로 흘러들던 새큼하고 달콤한 즙액. 자두가 물러지면 엄마는 잼을 만들곤 했다.”

이 문구는 남성의 시각으로 희생자를 성적 대상화 했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어떤 학생이 과일을 먹으면서 자신의 가슴을 떠올리느냐”, “문학을 가장한 성추행이다”, “어느 여학생이 자신의 가슴을 ‘젖가슴’이라고 표현하느냐”는 등의 비판이 이어진 것이죠.

작가의 젠더감수성이 부족하고, 여학생을 화자로 한 소설을 쓰면서 화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는 겁니다. 이에 더해 세월호 희생자의 입을 빌려 묘사된 성적 대상화가 고인에 대한 모욕이라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사진출처 = 호밀밭출판사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사진출처 = 호밀밭출판사 페이스북 페이지 캡처>

강 작가의 해명에도 계속되는 논란

논란이 일자 강 작가는 자신의 SNS에 “극렬 편향적인 페미니스트 카페 회원들이 문제를 삼았던 모양”이라면서 “졸지에 내게 ‘개저씨 작가’란 딱지를 붙였다”며 해명에 나섰습니다.

그는 “‘언더 더 씨’는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일종의 문학적 진혼굿”이라며 “희생당했으나 시신이 건져지지 못한 여학생의 관점에서 ‘사자(死者)의 고백’이라는 형식으로 우리 사회의 무책임, 비겁, 야만을 고발한 소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무언가를 먹는 기억은 살아있음을 환기시키는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장치”라며 “무구하고 생기발랄한 젊디젊은 여학생의 생을 상징하는 문학적 장치로서, 단단하고 탱탱한 자두의 이미지를 차용했다”고 해당 문장을 쓴 이유를 밝혔습니다.

또 “‘젖가슴’이란 단어를 썼다고 야단들인데, 여성의 해당 신체부위를 그 단어 말고 무엇으로 표현하나”라면서 “‘젖가슴’이란 단어 자체가 소설에서 결코 쓸 수 없는 금기어라도 된다는 건가”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면서 “소설 전체의 의도와 맥락은 깡그리 무시하고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막무가내적이고 천박한 문학 텍스트 읽기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라며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을 비난했습니다.

‘언더 더 씨’를 펴낸 호밀밭출판사“문해력의 차이에 따라 수용의 수준이 달라질 수는 있겠지만 네티즌의 집단행동은 그런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강 작가와 출판사의 해명이 더욱더 불을 지폈습니다.

‘문학적 비유를 이해하지 못한 이들의 섣부른 판단’이라며 논란의 책임을 독자들에게 돌렸다는 지적이 이어진 거죠. 강 작가와 출판사의 입장문에는 이들을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이에 강 작가는 “(자신의 입장문에)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감정적이었던 데다 적절하지 못한 내용이 포함됐다”며 입장문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면서 “독자와 네티즌 여러분의 말씀을 들으면서 젠더 감수성 부족의 소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향후 젠더 감수성과 성평등 의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성찰하겠다”고 사과했습니다.

출판사 측도 “작품의 표현에 대한 논란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만 이에 대해 출판사가 취해야 할 태도로는 적절치 않았다”는 입장문을 새로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번 논란과 관련해 자신들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고 여전히 독자와 네티즌에게 돌리고 있다며 비판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외수 작가(왼쪽), 김훈 작가 ⓒ뉴시스
이외수 작가(왼쪽), 김훈 작가 ⓒ뉴시스

남성 작가들의 작품 속 여성혐오

이 같은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소설가 이외수 작가는 지난해 10월 10일 자신의 SNS에 ‘단풍’이라는 글을 올려 여론의 뭇매를 맞았습니다.

저 년이 아무리 예쁘게 단장을 하고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화냥기를 드러내 보여도 절대로 거들떠보지 말아라. 저 년은 지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명심해라. 저 년이 떠난 뒤에는 이내 겨울이 닥칠 것이고 날이면 날마다 너만 외로움에 절어서 술독에 빠져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비유하며 여성에 대한 멸칭을 사용한데 문제가 제기된 것이죠.

이 작가는 “‘화냥기’라는 표현은 단풍의 비극적이면서도 해학적이면서 단풍의 처절한 아픔까지를 함유한 단어를 선택하려는 의도에 근거를 두고 있다”며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다는 둥 여성을 비하했다는 둥 하는 비난은 제 표현력이 부족한 결과로 받아들이겠으나 여성을 비하할 의도나 남성우월을 표출할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 작가의 해명에도 문제제기가 계속되자 그는 자신의 작품을 비판하는 이들이 댓글을 달 수 없도록 차단했습니다.

또 지난 2017년 5월, 김훈 작가의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에서 여성의 생리를 비현실적으로 묘사한 장면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제5회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한 이 작품에서는 자매가 차를 타고 가던 중 갑자기 언니의 생리가 시작되는 장면을 묘사했습니다.

– 얘, 어떡하지. 갑자기 왜 이러지……
– 왜 그래, 언니?
– 뜨거워. 몸속에서 밀려나와.

작중에서 동생은 언니의 팬티를 잘라낸 뒤 생리대로 생리혈을 닦아내고는 처리를 끝냅니다. 마치 사정 후 정액을 닦아내는 것처럼 묘사한 것이죠.

폐경의 나이에 이른 성인 여성이 스스로 생리혈을 처리하지 못하고 동생의 도움을 받는 묘사도 김 작가가 여성의 생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김 작가의 이 같은 묘사에 독자들은 ‘생리가 몽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생리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 없는 것 같다는 등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논란이 일자 김 작가는 장편소설 <남한산성> 100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여자를 생명체로 묘사하는 것을 할 수는 있지만 역할과 기능을 가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서투르다. 여자에 대한 악의나 편견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김 작가의 해명은 더욱 큰 논란을 불러왔습니다. SNS에서는 ‘인류 절반을 인격체로 묘사하는 데 서투르다는 것 자체가 악의’,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함을 대놓고 말한다’는 등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과거 김 작가가 “여자들한테는 가부장적인 것이 가장 편안한 것”, “남성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고 압도적으로 유능하다”페미니즘을 비판한 인터뷰 내용까지 다시금 회자되면서 김 작가의 성차별적 태도에 비판이 일기도 했습니다.

강 작가, 부산문화재단 대표 취임…이어지는 사퇴 요구

한편 강동수 작가는 지난 16일 부산문화재단 대표로 선출됐습니다. 이에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는 “사과문을 발표하고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야할 시기에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 선임을 수락한 것은 독자와 시민들을 기만하는 행위”라며 “부산시와 부산문화재단이 젠더감수성이 보편화되는 시대의 요구에 귀를 닫고 있고, 문화예술계의 성평등향상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의 인권보호 문제에 있어 명백하게 후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규탄했습니다.

이들은 “문화예술인과 시민들은 문화예술공공기관을 대표하는 부산문화예술인의 리더로서 투철한 젠더의식을 가지고 문화예술계 성평등 향상, 성폭력문제 해결에 앞장설 인재를 원한다”“부산문화재단 선임을 재고하라”고 부산시에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시는 “이번 논란을 비롯해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적임자라고 판단했다”며 “‘언더 더 씨’를 쓰기 이전부터 여러 칼럼에서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관심을 많이 가지신 분이었고,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 지점 등을 보면 성평등 의식이 없거나 여성을 비하하는 분은 전혀 아니었다고 본다”며 강 작가의 자질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지난 2016년 6월 6일 여성운동 시민단체 회원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열린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집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6년 6월 6일 여성운동 시민단체 회원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나루수산 앞 광장에서 열린 '여성혐오에 저항하는 모두의 1차 공동행동' 집회에서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여성혐오 이해 선행돼야”

한국여성문학학회 연구이사인 경남대학교 한국어문학부 이선미 교수는 이외수 작가나 김훈 작가의 문제와 강 작가의 문제는 다르게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남성 작가들이 남성성을 정체성으로 구성하는 방식으로 여성을 비하하거나 이를 은유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작가의 표현 방식 문제예요. 작가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비판도 얼마든지 가능하죠.

그러나 세월호참사를 묘사한 강 작가의 경우는 다릅니다. 세월호참사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고 이와 관련해 누군가 발언을 하는 건데, 희생이 안타깝다는 걸 성적 대상화를 통해 표현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되는 혐오적 발언이에요. 이런 표현을 아름답다고 사고하는 자체가 혐오와 관련된 사고방식에서 근원하는 겁니다.

허구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는 작가의 방식의 문제이니 표현과 비판이 자유로울 수 있지만, 실제 사고를 묘사하면서 여성혐오적 표현을 쓰는 것을 같은 선상에서 논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김희영 활동가는 강 작가가 세월호 희생자를 성적 대상화한 것이 문제가 된 마당에 부산문화재단 대표로 취임한 것은 큰 문제라고 말합니다.

“세월호 희생자인 여성을 성적 대상화한 강 작가가 부산문화재단의 대표로 취임한 것은 큰 문제예요. 부산문화재단은 문화예술계를 지원하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문화사업을 하는 곳인데, 영향력을 갖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적 활동을 하게 되는 거잖아요.

부산시는 강 작가가 관련 칼럼을 쓰는 등 세월호참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며 대표이사 취임에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문제는 세월호 희생자 비하가 아닌 여성의 신체를 묘사한 방식이거든요. 시민들이 성평등의 후퇴 등을 우려하며 강 작가의 대표직 사퇴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봅니다.”

김 활동가는 또 여성혐오에 대한 이해 부족이 이 같은 논란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여성혐오가 뭔지 알아야 여성혐오적인 표현을 쓰지 않는데, 잘 모르기 때문에 문제가 돼요. ‘언더 더 씨’는 희생자 여성이 자신의 가슴을 과일에 비유한 것이 문제가 됐어요. 그런데 어떤 여성도 자신의 신체를 그렇게 묘사하지 않거든요. 화자인 여성을 대상화했기 때문에 나오는 표현인 거죠.

작가의 표현은 규제할 수 없어요. 하지만 작가의 글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이 하는 것이죠. 문제가 제기된다면 이에 대한 토론이 이뤄지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왜 문제가 되는지 파악하고 공부할 필요가 있죠. 이는 소설가 한 명의 문제가 아니라 남성들이 전반적으로 여성의 몸을 묘사하거나 보는 관점의 전형적인 증거일 뿐이에요. 많은 여성들이 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비판하고 있어요.

이 같은 논란이 생기면 보통 ‘나는 여성혐오자가 아니다’, ‘성차별주의자가 아니다’라고 해명하는데, 여성혐오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으려면 여성혐오가 뭔지를 먼저 알아야 해요. 그러나 대부분 이를 모르는 상태에서 해명을 하기에 문제가 더 커집니다. 여성혐오는 성적 대상화를 기반으로 이뤄지는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독자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들죠.”

이 교수의 말처럼 작가는 자유롭게 표현할 할 수 있습니다. 작가의 표현을 규제할 수는 없고,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합니다.

다만 성차별적, 여성혐오적 묘사를 하는 작가들에 대한 비판 여론은 계속해서 높아질 겁니다. 여성혐오, 성적 대상화, 성차별을 이해하지 못하는 작가들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되고 결국 도태되겠죠.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한 인물이 공적 영역에서 대표성을 갖게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문화예술인 지원, 문화사업 등의 영역에서 성평등이 후퇴한다는 여성계·문화예술계의 지적은 일리가 있는 지적인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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