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낙태와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의 관계(하)
[칼럼] 낙태와 몸을 바라보는 시각과의 관계(하)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2.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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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근대 이전에는 낙태란 생각하기조차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인구는 당시 주축 산업이었던 농업의 주요 자원이었고, 세금의 중요 기준이었으며, 군사력의 지표였기 때문이다. 또한 신생아의 사망률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이러한 상황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근대 이후와 근대 이전을 구분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는 바로 종교에 기반한 사고가 그 영향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생명에 관련된 종교 기반 사고의 주요한 내용은 “인간은 신을 닮은 모습으로 신이 창조한 것”이라는 생각이며, 이러한 생각은 유럽과 미국 등 기독교를 종교적 배경으로 하는 국가에서 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근대 이전에서 근대로 바뀌는 시대에 낙태에 대한 찬반논쟁은 서양을 중심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말해 낙태가 서양 의학의 기술이기 때문에 동양에서 낙태에 대한 시각이나 그 대립이 근대 이후, 서양보다 늦게 논쟁이 진행되었다는 의미이다.

종교에 기반한 사고가 그 힘을 잃는 것은 과학기술의 발달의 영향이 컸다. 가톨릭의 내부 부패, 십자군 전쟁의 실패 등으로 세속 권력에 비해 가톨릭의 힘이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모습은 교황과 황제 사이의 권력 투쟁이라는 직접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지만, 가톨릭의 영향력은 근대 직전까지 상당부분 유지되고 있었다. 특히 절대왕정이나 귀족과의 연계를 통해 기득권의 일부로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종교의 힘은 세계관과 인간에 대한 시각에서 동시에 힘을 잃기 시작하는 계기를 맞이했다. 그것은 지면을 통해 수차례 언급한 코페르니쿠스에 의한 지동설의 주창,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에 의한 해부학의 발전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기존의 신이 우주를 창조했고, 신이 살고 있는 지구를 중심으로 신이 창조한 태양과 달이 움직인다는 천동설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또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해부학은 신이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인간을 창조했다는 기존의 사고를 무너뜨리고, 인간이 치밀하게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는 생각을 심기 시작했다.

특히, 해부학의 발전은 인간의 몸과 생명에 대한 사고를 변화시킨 시발점이었다. 기존까지 인간의 몸과 생명은 신이 창조하고, 신이 부여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고, 생명을 함부로 죽이거나, 또 다른 생명체를 함부로 만들 수 없었다. 이로 인해 의학이 발달하면서 낙태에 관한 기술도 발달했지만, 낙태는 상당 기간 동안 금지되었다. 낙태가 허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와 같이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종교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은 상대적으로 인간의 위상을 신과 동등하거나 신보다 위에 놓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신의 피조물이라는 것이 부정되면서 인간은 신과 분리되었고, 스스로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은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 그리고 신에 대한 의심은 신“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생명과 관련된 영역의 침범으로까지 이어졌다. 이러한 모습은 과학과 상호 영향을 끼쳤고, 과학의 발달은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을 낳았으며, 신의 영역에 대한 도전은 과학의 발달을 가속화시켰다. 그리고 이전에 언급했던 태아의 생명 여부에 대한 논쟁, 낙태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다.

물론 종교의 영향력이 저하된 것만 낙태 허용에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태아의 생명 여부, 여성의 인권과 성적 자기결정권, 그리고 최근에는 아이 기르기 좋지 않은 사회적 환경, 갈수록 높아지는 결혼과 출산 연령 등 많은 변수들이 있다. 이러한 여러 조건들 속에서 하필 필자가 종교의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것은 단순히 종교의 힘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한 것이거나, 그것이 긍정적인지 아니면 부정적인지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인권, 사회적 환경 등이 개선되는 것은 종교가 지향하는 이상향과 다르지 않다.

단, 일전에 언급했던 성형시술이나 낙태에 관한 논란 속에서 인간이 가진 배금(拜金)의 모습이나 세속적 출세만을 지향하는 모습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이러한 모습은 종교들이 비판받던 모습과 다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가 설파했던 이상향은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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