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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과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법구금과 고문을 당하고 유죄 판결을 받은 뒤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 받은 피해자가 과거사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국보법 위반 혐의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정모씨와 그 가족 등 9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서울고법에 사건을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재심 절차에서 무죄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정씨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운 장애 사유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며 “국가의 소멸시효 완성 주장은 신의칙에 반한 권리남용으로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과거사정리법 진실규명을 신청하지 않았거나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통보받았다고 해도 소멸시효의 주장이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남용에 해당하는지 판단하는데 영향을 주지 않는다”며 “국가의 주장을 받아들인 원심 판단에는 관련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씨는 지난 1981년 9월 15일 버스에서 “이북은 하나라도 공평히 나눠 먹기 때문에 빵 걱정은 없다”는 등 북한 체재를 은연 중 찬양했다는 혐의로 불법 구금돼 수사관들에게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이 때문에 정씨는 시력과 청력 장애를 얻었으며 후유증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등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이듬해 1심은 정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이후 1984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이 확정됐다.

정씨는 1982년 수사관들이 자신을 불법감금하고 고문했다며 고소했으나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혐의없음’ 결론을 내렸다.

2014년 정씨는 자신의 유죄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당시 국보법에서 정한 국가 존립을 위태롭게 하거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위해를 줄 명백한 위험을 초래할 발언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무죄가 확정되자 정씨 등은 수사 및 재판 과정의 위법행위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앞서 1심과 2심은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은 불법행위일로부터 5년 동안 행사되지 않으면 시효로 소멸한다”며 “경찰이 정씨를 불법체포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난 후 소송을 내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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