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선동·당 해산 거치며 종북 낙인찍힌 통합진보당
박근혜 정권 탄압 정황 드러나며 재평가 목소리 커져

ⓒ투데이신문 이은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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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2014년 12월 19일 통합진보당은 멈춰 섰다.

헌정 사상 초유의 위헌정당해산 심판에서 이날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의 해산을 결정했다. 헌재는 통합진보당 내 주도세력이 북한을 추종하고 회합에서 대한민국의 존립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판단했다. 또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구체적 위험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게 통합진보당의 앞에는 ‘전(前)’자가 붙었다.

이 당시 통합진보당은 1년 전인 2013년 이석기 의원 내란선동사건으로 ‘종북 낙인’이 찍힌 상태였다. 내란선동사건 직후 국가정보원이 언론에 쏟아낸 녹취록 등 관련 정보들은 ‘국가기간시설 타격·인명살상 모의’, ‘통신-철도-가스시설 파괴 모의’, ‘북 남침 때 국가시설 파괴 준비’ 등 자극적인 제목으로 다시 태어났다.

내란선동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을 거치며 한국 사회의 레드 콤플렉스는 더욱 공고화됐고, 통합진보당에 찍힌 종북 낙인은 탄압의 도구로 활용됐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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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은 이념을 나누는 잣대가 됐다.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에게는 ‘옛 통합진보당 잔존세력’이라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당시 야권, 진보세력도 이들과 거리를 뒀다. 통합진보당은 한국 사회에서 배제의 대상이 됐다.

이런 경향은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지 4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최근 자유한국당 전당대회 출마를 공식화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지역 표심을 다지면서 “통합진보당을 해산한 사람이 누구인가”,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킨 결기로 난세를 헤쳐나가겠다”는 등 당시 경력을 부각시키며 지지층 결집을 노리고 있다.

또 해산 심판에서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냈던 김이수 전 헌법재판관은 헌재소장 인사청문회에서 보수야당의 맹공을 받았고, 결국 임명동의안은 부결됐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서 변호인단 단장을 맡았던 김선수 대법관도 인사청문회에서 난항을 겪었다. ‘이념의 편향성’이 이유였다.

낙인찍힌 그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박근혜 정권 불법개입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진상규명하라!”, “이석기 전 의원을 즉각 석방하라!”, “통합진보당 당원, 국회의원, 지방의원에 대한 명예회복과 원상 회복조치를 실시하라!”

지난해 12월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 4년, 통합진보당 명예회복과 이석기 의원 석방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보다 앞선 8일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2만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이석기 전 의원의 석방을 촉구했으며, 지난 2월 10일에는 청와대 앞에 주최 측 추산 2000여명이 모여 이석기 전 의원의 삼일절 특별사면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들은 현재 2월 중으로 내란선동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 계획도 밝힌 상태다. 이처럼 이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한 것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농단 의혹이 드러나면서다.

사법농단 의혹사건 수사를 통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지위확인소송에 개입한 정황들이 드러났다. 또 해당 소송 2심 재판부 배당에도 관여한 의혹도 나왔다. 아울러 당시 논란이 됐던 법관 비리사건에 대한 관심을 돌리기 위해 내란선동 사건 3심 선고 시기를 조정한 정황도 나왔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에는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과 관련된 사전 교감 정황도 담겨있었다.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박근혜 정부와 사법부에 의한 전방위적인 탄압 피해를 주장하는 이유다.

지난 10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사법농단 피해자 이석기 3.1절 특사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지난 10일 청와대 분수대 광장에서 열린 ‘사법농단 피해자 이석기 3.1절 특사 촉구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무엇이 문제인가

내란선동사건이 발생한 지 5년 반,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이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통합진보당과 관련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대부분 사건 초반 제기된 혐의에 머물러있다.

내란음모혐의, 지하혁명조직 RO의 존재, 북한과의 연관성 등은 이미 대법원에서 부정됐다. 내란선동사건에서 국정원이 핵심 증거로 내세운 일명 ‘회합 녹취록’도 이미 1심에서 450여곳이 수정됐다. 그러나 사건 초기 국정원이 발표했던 내용들이 지금까지도 사실인 양 인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KT아현지사 화재에 온통 관심이 쏠려있던 상황에서도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이석기 의원과 지하조직 RO의 이름을 소환하며 정치적으로 활용했다.

통합진보당 해산 사유로 헌재가 밝혔던 ‘주도세력’과 ‘숨겨진 목적’에 대한 법리적 논쟁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다시 돌아본다

이처럼 통합진보당을 향했던 박근혜 정권의 탄압에 대한 정황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만,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말하는 그들의 외침은 박근혜 정권 아래 공고해진 낙인 속에서 여전히 의심을 받고 있다. 또 황 전 총리 등 박근혜 정부 당시 주요 인사들은 통합진보당 해산 이후 요긴하게 활용했던 레드 콤플렉스를 다시 소환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함께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권의 탄압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지금,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치적·법리적 재평가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이를 위해 <투데이신문>은 당시 통합진보당 의원들과 내란선동사건에서 이석기 의원과 함께 구속됐던 관계자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변호인단, 재판에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교수 등을 만나 당시 통합진보당을 둘러싼 사건들을 되짚어봤다. 아울러 당시 수사 및 재판의 문제점과 최근 드러나고 있는 사법농단 수사에 대한 이들의 입장을 조명하면서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 또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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