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단이 말하는 재판에서의 의구심
‘편향적이고 불리’했던 지위확인소송
일순 분위기 뒤바뀐 내란선동사건 1심
숨겨진 목적 강조한 헌재의 해산 선고

ⓒ투데이신문 이은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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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지난 연말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천낙붕 변호사는 두툼한 재판자료를 뒤적이며 당시 재판에서 느꼈던 의구심을 하나씩 꺼냈다. 뒤이어 만난 조지훈 변호사도 당시 느낀 의문점들을 되짚었다. 이들은 내란선동사건, 당 해산, 지위확인소송까지 통합진보당 관련 재판에서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통합진보당 사건들과 관련된 청와대와 헌재, 법원행정처 간의 교감과 개입 의혹이 실제 재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편향적이고 불리했던 지위확인소송”

5명의 전 통합진보당 의원들은 ‘헌재가 헌법상 의원직을 박탈할 권한이 없다’며 이듬해 1월 7일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에 대한 재심을 청구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판은 쉽지 않았다. 해당 소송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천낙붕 변호사는 당시 재판에 대해 “편향적이고 불리한 재판이었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1심 첫 재판에서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 지위확인소송이 처음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볼 필요가 있다며 전문가 증인을 신청했다. 그러나 재판장은 이를 기각했다. 변호인단은 ‘재판부 합의로 결정해야 하지 않느냐’라며 이의를 제기했고, 재판기피신청까지 언급하며 반발한 끝에 겨우 받아들여졌다.

당시 변호인단 증인으로 출석했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 그는 재판부의 다양한 질문을 예상하고 만반의 준비를 해갔다. 그러나 재판부는 핵심에서 벗어난 질문 몇 가지만 던지고 재판을 마무리했다. 한 교수는 “이 부분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 특히 대의제 민주주의의 기본적인 틀과 관련된 아주 논쟁적인 부분이다. 거기에 재판부가 자기 의제를 만들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결국 1심 재판은 결심 선고를 포함해 총 3번의 재판으로 끝났다. 결과는 재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각하’. 헌재 결정에 대해 법원이 판단할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행정처가 재판부에 전달한 판단 방향에 배치되는 판결이었다. 이어진 항소심은 결심까지 2번의 재판으로 마무리됐다. 이번엔 행정처의 의견대로 ‘기각’이었다. 행정소송법상 국회의원직을 상실했는지 확인하는 소송의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어 재판은 성립되지만, 헌재의 해산 결정 효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판결이었다. 이후 대법으로 넘어간 소송은 2년 10여개월째 계류 중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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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뒤바뀐 내란선동사건

“(재판부가) 상당히 합리적인 재판을 진행한다고 느꼈다. 내란선동사건 재판이라고 하기엔 약간 화기애애할 정도로 분위기가 상당히 열려있었다. 판사가 농담도 하면서 분위기를 딱딱하지 않게 운영했다. 저희들한테 유리한 판결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할 정도로 나쁘지 않게 분위기가 흘러갔던 거로 기억한다.” -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1980년 신군부에 의한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사건 이후 33년 만에 다시 제기된 내란음모사건. 그러나 당시 여론에 쏟아지는 서슬 퍼런 혐의와 의혹과는 다르게 재판은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진행됐다고 내란선동사건 피고인이었던 김근래 전 부위원장은 기억했다.

재판에 참여했던 변호인단도 김 부위원장의 설명에 동의했다. 변호인단에 따르면 재판부는 40여차례의 재판까지 내란음모사건의 핵심 증거인 녹취록을 제공한 국정원 제보자 이모씨가 3년간 모은 녹취록에 대해 조작될 가능성이 많고 증거로서 가치가 없다며 반 이상을 폐기하는 등 변호인단의 주장에 일정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해당 사건의 주요 증거로 국정원이 제시한 강연 녹취록 중 450여곳을 수정하는 등 관련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1심 재판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혔다.

“재판부가 법리적 판단을 절차에 맞게 하고 있었다. 그러면 1심 판결 법리가 적어도 항소심 판결(내란음모혐의 무죄)대로는 나와야 했는데, (재판이) 40여회를 넘어가면서부터 갑자기 재판장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 - 천낙붕 변호사

“1심 공판준비기일 때, 아예 RO는 기본적인 공소사유가 아니기 때문에 (변론) 준비를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말했던 재판장인데, 갑자기 1심 판결이 맞지도 않는 논리로 RO까지 다 인정했다. 그런 부분이 의구심이 들었다.” - 조지훈 변호사

이후 재판은 빠르게 피고인 측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1심 재판부는 검찰 공소장 내용의 대부분을 인정한 채 재판을 마무리했다. 변호인단은 기존 공안재판에서 벌어졌던 일방적인 재판 풍경이 고스란히 재연됐다고 부연했다.

1심 판결은 피고인 측에게 큰 타격이었다. 변호인단은 1심에서 내란음모혐의가 무죄가 나오면 2심에서는 내란선동혐의 무죄 입증에 집중하려는 계획이었지만, 이들의 전략은 시작부터 어긋나버렸다.

이어진 항소심에서는 내란음모혐의 무죄와 RO의 실체가 없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그러나 내란선동혐의와 관련해 형량이 대폭 늘어났다. 당시 검찰은 RO의 실체와 북한과의 연결고리를 밝혀내지 못했다. 그러자 검찰은 북한과 연결돼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논리를 들었다.

“(북한과) 연결이 안됐으니까 더 창의적으로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소설이 또 어디 있나. 항소심의 전체적인 취지는 ‘내란음모가 아니다’, ‘반국가단체 RO의 실체가 없다’다. 그러면 ‘통합진보당의 해산이 안 된다’가 논리적인 것이다.” - 천낙붕 변호사

항소심 판결에서 이 전 의원은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이, 나머지 6명에게는 각각 징역 2~4년과 자격정지 2~7년이 선고됐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뒤 진행된 내란음모사건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원심의 판결이 확정됐다.

“형량만 빼고 보면 누구한테 보여줘도 ‘판결문 잘 썼다’는 말을 들을 거다. 법리적으로는 이씨의 증언과 관련해 추측성인 것, 남의 말을 전달한 것 등 다 증거능력이 없다고 빼버렸다. 2심에서는 그런 증거들을 다 받아줬다. 그래서 내란음모혐의는 무죄 나왔지만, 내란선동 하나로 형량을 올려버렸다.” - 천낙붕 변호사

내란선동사건 1심과 2심 판결 내용 ⓒ투데이신문
내란선동사건 1심과 2심 판결 내용 ⓒ투데이신문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대한 이의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 심판을 청구한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은 “통합진보당은 강령 등 그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는 것이고, 통합진보당 핵심세력인 RO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위헌정당해산 심판 청구 이유를 밝혔다.

이어진 총 18차례에 걸친 공개변론. 법무부는 내란음모혐의와 RO의 실체를 인정한 내란선동사건 1심 결과를 바탕으로 논리를 펼쳤다.

당시 변호인단은 내란선동사건이 무죄가 될 경우,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는 당연히 기각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내란선동사건에 역량을 집중했다. 그러나 50차례에 걸친 재판 끝에 얻은 1심 결론은 내란음모 유죄와 RO 실체 인정. 변호인단의 대전략은 시작부터 어긋났다.

이어진 내란선동사건 2심에서 내란음모혐의와 RO의 실체가 부정됐다. 그러자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정부 측 논리에도 변화가 생겼다. 해당 재판에 변호인단으로 참여한 조지훈 변호사는 당시 재판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내란선동사건 2심 판결) 이전에는 내란음모를 가장 중요한 정당해산 고리로 삼았다. 내란을 음모한 세력들이 통합진보당의 중심세력이고, 조직적으로 당원들이 모여 내란을 음모했으니 통합진보당은 당연히 해산돼야 한다는 논리였다. 그게 무죄가 나오니 그들을 민족민주혁명정당(민혁당) 잔존세력으로 논리를 틀어 증인 신청을 새로 했다.”

지난 2015년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내란선동사건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5년 1월 23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내란선동사건 대법원 판결과 관련해 한 시민이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재판에 새로이 정부 측 증인으로 출석한 건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이었다. 주사파의 대부로 불리다가 북한인권운동가로 전향한 김 위원은 당시 재판에서 통합진보당을 ‘민혁당 주사파 세력이 유지된 조직이자 폭력혁명을 추구하는 단체’로 규정했다.

김 위원은 민혁당이 해체된 후 이 의원 등이 당시 중앙위원회를 찾아 민혁당 활동을 계속했다고 설득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이들이 중심이 된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가 조직을 한 번도 해체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김이수 헌법재판관이 퇴임한 이후에 한 인터뷰를 보니까 김영환씨의 증인 신문이 영향을 많이 미쳤던 거 같다고 하더라. 진짜 황당한 거다. 내란선동사건에 문제 됐던 사람들과 김영환씨는 그동안 한번도 본적이 없다.” - 조지훈 변호사

그렇게 정부 측 논리는 내란선동사건 2심 재판 이후 바뀌었다. 그리고 헌재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내렸다. 조 변호사는 헌재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한다.

“판결결정문을 보면 통합진보당에서 주요 활동했던 사람들의 예전 국보법 위반사건 경력들을 다 모아 ‘이런 사람들이 했기 때문에 숨은 목적이 있다’고 판단했다. 정당은 해산하려면 요건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을 갖고 활동해야 한다. 그 목적은 통합진보당의 당헌·당규에 전혀 없다. 당헌·당규에는 진보적으로 이 사회를 바꿔나가자는 것 말고는 없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활동을 한 적이 없다. 숨은 목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걸 갖고 내란선동사건이나 민혁당 잔존세력이 남아 북한을 추종하는 숨은 목적을 갖고 활동해온 거라 판단해 강제해산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처럼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사건 재판에서 당시 변호인단은 재판과정에서 여러 의구심을 느꼈다. 그 의구심들은 당시 상황들과 맞물려 의혹이 됐고, 이 의혹은 앞서 언급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청와대와 법원행정처의 관련 문건 등 뒷받침하는 정황과 증거들로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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