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리적 문제점 지적하는 학자들
판결 타당성 대한 평가도 공존
“‘앞으로 그럴 것 같다’는 이유로 당 해산”
증거 축적이 판단에 영향 미쳤다는 반론도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정의의 여신상 ⓒ뉴시스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 및 변호인들과 마찬가지로 내란선동사건, 통합진보당 해산, 지위확인소송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판결에 대해 학자들도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반면 해당 판결들에 대해 법리적으로 타당하다고 평가하는 학자들도 있다.

지난 연말 서대문역 인근 한 카페에서 만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희 교수는 해당 판결들의 법리적 문제점에 대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한 교수는 당 해산 심판에 통합진보당 측 참고인으로, 지위확인소송에서 변호인단 증인으로 출석했다.

“‘앞으로 그럴 것 같다’는 이유로 해산”

헌법상 정당 해산의 요건은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경우’다. 그러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사건 당시 헌재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할만한 정당의 행위로 볼 수 있는 행위가 있었는지를 판단한 게 아니라 주도세력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정당의 당수나 당원 총회, 대의원 대회, 또는 소속 의원들의 활동 등을 찾아보지 않고, 특정한 몇몇 사람들을 통합진보당의 주도세력이라 못 박아 놓고, 이들의 행동도 아닌 전력을 보고 정리해버린 것”이라며 그들의 개인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통합진보당이라는 틀에 맞춰 집어넣었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런 식으로 짜 맞춘 뒤에도 부족하니까 진보적 민주주의 등을 얘기하면서 ‘실질적으로는 이런 내용이더라’가 숨겨진 목적이라는 게 헌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특히 이 숨겨진 목적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숨겨진 목적은 1950년대 독일 헌법재판소가 독일공산당을 해산시킬 때 쓰인 개념이다. 당시 독일 헌재는 서독지역에서 당원교육과 체재개선, 노동자 권익 등의 활동만 이어가던 독일 공산당의 활동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는 숨겨진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예비행위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이 같은 숨겨진 목적은 일종의 심정형법(예방형법)의 범주에 속한다고 한 교수는 부연했다. 이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실질적 해악’이 가해질 ‘구체적 가능성과 위험의 존재’로 판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구체적 위험은 현존하지 않더라도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그 연관성이 전무한 상태에서 ‘앞으로 그렇게 할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해산시켜버렸다는 것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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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의원직 박탈 선고, 권한 넘은 결정”

아울러 헌재의 의원직 박탈 선고에 대해서도 한상희 교수는 헌재가 국회의원 지위를 박탈할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헌재가 헌법상 명기된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5가지 권한을 넘어선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또 헌재가 의원들의 지위를 박탈한 기본배경인 ‘정당국가의 개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패전 이후 독일은 연합국 4개국의 분할점령 체제에서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 정당을 설립하고 개입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정당도 국가의 한 기구일 수 있다는 개념에서 의미가 확장된 것이 ‘정당국가’ 개념이다.

하지만 독일연방법원은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이 정당국가 개념을 포기했다. 이후 정당은 국가의 한 부분이 아니라 사적 기관이기 때문에 그 기능을 중요시 바라보는 형태로 바뀌었다는 게 한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변화들을 헌재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당이 해산되면 당연히 그 소속 의원들도 해산돼야 한다는 결정이 나왔다”며 “외국의 경우, 헌법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그런 식으로 당 해산과 소속 의원의 지위박탈을 연관시키는 걸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더불어 “통합진보당이 설령 위헌이라 하더라도 소속 의원들이 어떤 지위를 갖고 어떤 역할을 했으며, 업무 분담은 어떻게 이뤄졌는가 등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를 전혀 따지지 않고 소속 의원이라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했다”며 “이들을 뽑아준 유권자들의 의사는 무엇이고, 대의제 민주주의가 갖고 있는 강제위임금지, 자유위임의 원칙은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내란선동 판결, 선동 지나치게 확대 해석해”

그는 내란선동사건 판결에 대해 선동과 선전을 하나로 보고, 선동의 의미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했다고 지적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현행법에서는 선동과 선전을 ‘선동·선전’으로 하나로 본다. 때문에 선동과 선전의 구분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흥분하고 있는데 ‘저놈 때려죽여라’라는 건 선동이다. 바로 행동으로 나오지 않나. ‘우리 앞으로 이런 것들 한번 해보자’는 건 선전이다. 아울러 선동은 적어도 행위에 버금갈만한 정도의 현실적 위험 발생력을 갖는 발언 등으로 아주 좁게 해석해야 한다. 이와 달리 선전은 단순 주장으로, 다른 사람을 설득시키는 것이다. 어조가 강하든 약하든 그건 관계없다. 이건 표현의 자유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 당연히 표현의 자유로 보호받아야 하는 거다.”

그는 또 “이 전 의원의 강연을 보면 어느 누구도 성냥이나 화염병, 몽둥이조차 들고 있지 않았다. 단순히 ‘뭐 합시다’하는 수준이었다”며 “이걸 선동으로 규정하는 자체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반대집회 당시 ‘헌재에 쳐들어가자’는 얘기가 나온 것을 예로 들며 “법원 판결에 의하면 똑같은 선동이다. 선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면서 “그래서 내란선동사건에 관한 한 그건 위헌적 판결이라 봐야 한다. 선동을 그렇게 넓게 해석해서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것”이라고 거듭 지적했다.

그는 또 “원래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건 급박하고 명백하며 현존한 위험의 법칙이라고 얘기하는데, 우리나라는 구체적이거나 급박성은 인정하고 있다. 그럼 그 발언을 통해 적어도 가시적인 시점에 행동이 촉발될 것이라는 수준의 경우 처벌해야 한다”며 “먼 미래를 향해 ‘우리 이렇게 하자. 저유소 하나 찾아봤다’는 걸 갖고 선동이라고 해선 안 된다. 적어도 선동이라고 얘기하려면 행위에 버금가는 발언이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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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통합진보당 해산, 법리적으로 타당”

이 같은 주장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가 법리적으로 타당하며, 내란선동사건이 헌재의 결정에 미친 영향력도 일부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에 청구인 측 참고인으로 출석했던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장영수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헌법 8조 제4항의 위헌정당 해산에 요건과 기준을 충족시켰느냐에 대한 판단”이라며 “해당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 때’가 정당 해산여부의 가장 중요한 요건이었다”고 설명했다.

“(통합진보당의) 당헌이나 당규에 있어서는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한다는 얘기는 전혀 하지 않고 있지만, 실제 활동 측면에 있어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요소들이 있지 않았느냐가 논란이 됐다. 즉 실질적인 ‘은폐된 목적’을 갖고 있던 게 아니냐, 그렇지 않았으면 이런 활동을 할 리가 없다는 전제로 검토했던 것이다. 거기에 내란음모사건도 일부 적용됐다. 그 외에 통합진보당 간부들이 당원교육용이나 여러 목적으로 썼던 글들, 대외적인 활동 등이 증거자료가 됐다. 또 공개변론에서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북한과의 통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질문과 답변했던 것들도 또 하나의 판단 기준이 됐을 것이다.”

장 교수는 당시 재판과정에서 있었던 헌법재판관과 통합진보당 측 참고인 간의 한 질의응답을 언급했다.

“통합진보당 측 참고인에게 헌법재판관이 ‘통일과 관련해 북한식 사회주의, 북한 체제로 통일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냐’는 식의 질문을 했는데, ‘그렇다’라고 답변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이건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것 아닌가. 이런 식의 요소들이 군데군데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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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런 요소들이 재판과정에서 계속 축적되면서 재판관들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런 것들이 수십개가 쌓였다. 어쩌다 한번은 몰라도 이런 것들이 반복적으로 있다면 그건 정말 위헌적인 목적,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되는 목적과 활동을 한 게 맞지 않느냐는 식으로 헌법재판관들이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재판 초기에는 오히려 ‘정당해산까지 되겠느냐’하던 게 오히려 뒤로 갈수록 ‘해산해야 되겠다’는 재판관들의 수가 늘었다.”

장 교수는 또 당 해산과 함께 국회의원 지위를 박탈한 헌재 선고에 대해서도 법리적 문제가 없다고 봤다. 그는 정당해산제도의 모델이 된 독일의 경우를 주목했다.

“정당해산제도의 모델이 된 게 독일이다. 헌재 제도 등 우리 헌법상 여러 제도들이 독일을 모델로 했다. 독일은 나중에 선거법에 의원직 상실과 관련된 명문 규정을 뒀지만, 초기에는 그런 조항이 없었다. 당시 독일 헌재도 ‘제도의 성격상, 정당만 해산하고 그 의원은 위헌적인 활동을 계속하라는 게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된다’며 ‘그렇기 때문에 의원직 상실해야 된다’는 판결을 내린 적이 있었다. 그 모델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간 거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다거나 말이 안 된다고 얘기할 것은 아니다.”

그는 통합진보당 해산 선고와 내란선동사건과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이 전 의원의 내란선동사건은 개인의 형사재판인 반면, 통합진보당 해산은 정당 해산이라는 훨씬 더 중요한 문제였고, 때문에 당시 헌재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내란음모사건이 먼저 터지고,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가 제기됐다. 재판 초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산까지 가겠느냐고 했던 거다. 그러나 그 외에도 여러 일들이 계속 확인되고 겹쳐지다 보니까, 해산되는 게 필요하겠다고 판단했던 거다. 이석기 전 의원 사건 하나랑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전체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내란음모사건이 어떻게 달라지거나, 달리 평가된다 해서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도 뒤집혀야 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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