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선동사건 구속자들이 본 그날
국정원과 검찰은 어떤 수사를 했나
핵심 증거인 녹취록과 구속자들
국정원 제보자 이모씨는 누구

ⓒ투데이신문 이은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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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내란선동사건으로 인해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구속된 인물들이 있다. 국정원이 지하조직 RO의 지역책임자, 또는 합정동 강연에서 내란 관련 발언을 했다고 지목한 인물들이었다. 종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근래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과 수원의 사무실에서 만난 한동근 전 수원새날의료생협 이사장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각자 기억하고 있는 2013년 8월 28일, 그날부터 시작된 이야기를 꺼냈다.

“김ㅇㅇ 학생 집 맞습니까? 송파경찰서에서 왔습니다.”

2013년 8월 28일, 수요일 새벽 6시경. 국정원은 내란선동사건 피고인들에 대한 일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김근래 전 부위원장의 자택에도 초인종이 울렸다. 그의 아내가 누구인지 묻자, 이들은 김 전 부위원장의 둘째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며 위와 같이 말했다.

당시 김 전 부위원장의 아들은 한 사건에 연루돼 법원의 보호감찰 처분을 받은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이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자, 깜짝 놀라 문을 열었다. 그러자 20여명의 국정원 수사관 등이 영장을 제시하며 들어왔다.

당시 국정원은 문을 열어주지 않을 것을 대비해 빠루 등의 장비와 기술자를 준비했다. 또 지역 경찰관 등 입회인들도 미리 준비해 강제수사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날 국정원 출두요구서를 받은 김 전 부위원장은 한 달 후인 9월 30일 연행돼, 10월 1일 구속됐다.

압수수색 당일 연행된 3명 중 1명인 한동근 전 이사장의 자택에도 이날 새벽 초인종이 울렸다.

“국정원에서 나왔습니다. 바로 문을 열지 않으면 저희가 들어갑니다.”

문밖에서는 들려온 말과 함께 장비로 문을 뜯는 소리가 났다. 놀란 아내는 바로 문을 열었고, 14명가량의 국정원 수사관들이 들이닥쳤다. 한 전 이사장 쪽 역시 강제수사를 위한 입회인들로 관할 경찰서 경찰과 공무원들이 자리했다고 한다. 이날 압수수색과 함께 한 전 이사장은 구속됐다. 집 밖에는 방송사 차량이 대기 중이었다.

한 전 이사장이 당시 운영하던 새날의료생협의 한방병원에도 국정원 수사관들이 나타났다. 국정원은 이날 이석기 의원의 의원회관 사무실과 자택을 비롯해 관련자들의 주거지 11곳과 사무실 7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수원진보연대 지도위원, 한 전 이사장 등 3명은 당일 연행됐다. 내란음모사건의 시작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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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과 검찰 수사

당시 압수수색과 함께 연행된 한 전 이사장은 다음 날부터 국정원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재판에서 국정원이 주장한 한 전 이사장의 혐의에 대한 조사는 아니었다. 당시 한 전 이사장에 대한 국정원의 조사는 다음과 같았다.

(국정원 수사관이) 두꺼운 북한의 문건을 가져와 한 30분을 혼자 읽었다. 그러고 나서 ‘이것에 대한 생각은 어떠냐’라고 질문했다. 물론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러면 또 다른 문건을 한 30분 읽는다. 그리곤 그에 대한 생각을 또 물었다. 이런 방식의 조사가 대부분이었다.”

당시 국정원은 간간이 압수된 한 전 이사장의 다이어리를 보고 ‘이거 본인 것이 맞느냐’, ‘이 일정과 관해 특별한 것이 있느냐’ 등 기본적인 확인을 하긴 했다. 그러나 그 외에 검찰 공소장 내용과 관련된 조사는 거의 없었다고 한 전 이사장은 기억했다.

그렇게 약 2주간의 국정원 조사가 이어졌다. 그 사이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 전 이사장이 자신의 혐의를 인지한 건 검찰 공소장을 받아들고 나서였다.

한 전 이사장의 혐의 중 하나는 한국인터넷진흥원을 조사해 인터넷망을 교란시키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국정원에 압수된 자신의 다이어리에 있던 한국인터넷진흥원이라는 단어와 전화번호 한줄을 가지고 벌인 국정원의 공작이라고 주장한다.

“핸드폰 위치추적 결과, 그해 6월 4일 인터넷진흥원 반경 500m 내의 기지국에서 제가 잡힌 적이 있었다. 인터넷진흥원이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재판에서 을지로에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걸 메모했던 계기는 당시 기관 홈페이지를 업그레이드하는데, 진흥원에서 장애인들이 홈페이지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걸 듣고 문의하기 위해 적었지만, 전화하진 않았다.”

그러나 진흥원 반경 500m 내 기지국에서 핸드폰 사용이력이 잡힌 것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한 전 이사장은 계속해서 당시를 복기한 끝에 기억해냈다.

“당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명동에 가 남산 케이블카를 탔다. 그리고 6월 말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캐리어가 없어 롯데백화점에 들러 여행용 가방을 샀다. 그때 화장실에 가 있던 아내하고 통화한 게 잡힌 거다. 구두로 얘기했으면 믿지 않았을 테지만, 캐리어를 산 영수증이 있었다. 그 영수증을 제출했고, 그 혐의는 사라졌다.”

한 전 이사장은 당시 국정원과 검찰이 제기한 피고인들의 혐의 대부분이 이런 내용이었다고 말했다. 언론 등을 통해 폭탄제조공으로 알려진 김홍열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의 경우도 건강사이트에서 파일을 받았는데 거기에 글리세린 등의 물질이 있었다는 이유로 폭탄전문가가 됐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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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취록의 무서움

한 전 이사장은 내란선동사건의 주된 증거가 된 강연 녹취록을 제공한 국정원 제보자 이모씨와 20여년간 친구 사이였다. 당연히 한 전 이사장은 이씨의 주된 녹취 대상이 됐다. 한 전 이사장은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된 인물 가운데 5.12 합정동 강연에서 이상호 전 경기진보연대 고문과 함께 분반장을 맡지 않은 인물 중 하나다. 그날 강연은 이석기 전 의원의 강연 이후에 각 분반으로 나눠 주제 토론을 진행했고, 다시 모여 분반 토론 내용을 각 분반장들이 발표하는 방식이었다. 때문에 각 분반장들은 이날 발언했다는 이유로 RO의 지역책임자로 낙인찍혔다.

그럼에도 분반장이 아닌 한 전 이사장과 이 전 고문이 구속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이 이씨와 같은 분반에 속했기 때문이다.

한 전 이사장은 “당시 같은 분반에 속했던 이씨가 녹취한 발언들이 언론 등에서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으로 과장되고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한 전 이사장이 포함된 녹취는 재판에 제출된 것만 70시간 분량이었다. 녹취는 대부분 카페나 식당에서 이뤄졌으며, 일상적 대화가 80%에 달했다. 한 전 이사장과 이씨의 선배였던 홍순석 전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과의 녹취도 많았다. 이들의 사적인 대화는 공개법정에서 여과 없이 틀어졌다. 한 전 이사장은 재판 당시 느낀 녹취록의 무서움을 토로했다.

“우리가 편하게 얘기할 때, ‘그놈은 너무 나쁜 놈이야. 아주 죽여야 해’ 이런 얘기도 할 수 있지 않나. 이게 녹취록으로 재판부에 제출되면 ‘그 친구는 죽여 버려야 해’라는 살해 의지가 담겨있는 거다. 물론 그 의지를 확인하기 위해 녹취록을 듣지만, 비밀녹취를 했기 때문에 식당에서 옆 테이블의 잡음 등으로 잘 들리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그 부분들은 녹취록을 제출하는 당사자인 국정원에서 임의대로 채워 넣는 거다.

물론 한 전 이사장은 국정원과 검찰이 내란음모사건의 결정적 증거로 제출한 강연 녹취록을 수사과정에서 듣지 못했다.

“녹취록과 관련해 저한테 확인한 건 없었다. 재판과정에서 봤듯이 이건 철저하게 국정원과 공안기관에서 준비했지만, 대단히 허술했고, 파장에 비해 가진 게 없었기 때문에 공소 사실이나 지금까지 수집된 내용들을 변호인에게조차도 거의 공개하지 않았다.

그가 해당 녹취를 들은 것은 검찰 조사 도중 담당 검사가 조사 시작 전 들려준 그와 이씨, 홍순석 전 경기도당 부위원장 등 3명의 30여초 분량의 녹취가 전부였다. 그는 “그 정도 녹취를 틀어준 것은 ‘너에 대한 증거가 다 있다. 그러니 협조해라’라고 압박·위축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을 뿐”이라고 떠올렸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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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제보자 이모씨

내란음모사건과 관련해 국정원과 검찰이 제시한 주요 증거는 국정원 제보자라고 불리는 이씨가 제출한 지난 3년간의 녹취록과 증언뿐이다. 국정원은 이씨가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RO의 맹목적인 북한 추종에 실망해 자발적으로 제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은 그가 국정원에 매수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내란선동사건이 터지자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원이 도박 빚을 지고 있는 당원을 매수했다”고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한 전 이사장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내란선동사건이 발생하기 6개월여전 무렵, 당구장을 운영하고 있던 이씨가 지역 도박장에서 하루 500만원씩 배팅한다는 얘기를 지인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지인이) 그 친구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렇게 도박을 계속하는지, 이러다 큰 문제 나는 것 아니냐고 저한테 상의하려 전화했다. 그 말을 듣고 며칠 후 이씨한테 전화했는데 안 받았다. 그리고 사건이 터졌고, 변호인단이 와서 이씨가 어떤 친구냐, 왜 거기(국정원)에 갔겠느냐 물었을 때 그 생각이 났다.”

한 전 이사장은 ‘천안함 사태를 보면서 회의를 느껴 국정원에 제보하게 됐다’는 이씨의 주장을 믿지 않았다. 그는 이씨가 국정원에 뭔가 빌미를 잡혀 협조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2010년 이씨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당뇨가 심해 1년 동안 휴직도 했고, 경제적으로는 고급 아파트를 분양받아 부채도 걱정될 때였다. 또 성격이 불같아서 폭력사건으로 집행유예 기간이기도 했다. 그래서 우리가 추측한 것은 뭔가 국정원에 빌미가 잡혀 일정 정도 협조하려 하지 않았겠는가. 그러다 수년째 계속 활동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법정에서 재회한 20년 지기

국정원과 검찰은 재판과정에서 핵심 증거인 강연 녹취록을 제출한 이씨를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씨와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재회했다. 그러나 서로 얼굴은 볼 수 없었다. 이씨의 신변보호를 위해 재판장 내 칸막이가 설치됐기 때문이다. 증언에 나선 이씨는 검찰과 국정원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20년 지기인 한 전 이사장은 증인으로 나온 이씨에게 직접 질문을 했다. 그러자 이씨는 재판장에게 ‘왜 피고인이 질문을 하느냐. 질문하지 않게 해달라’고 소리쳤다. 그럼에도 한 전 이사장은 몇 번의 질문을 더 이어갔다. 그중 한 질문에서 이씨는 감정 변화를 일으켰다.

“나를 20여년간 지켜보면서 지금까지 단 한번이라도 내란을 음모한다든지, 폭력을 준비한다는 말이나 행동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느냐.”

이씨는 잠시 답하지 못했다. 앞서처럼 재판장에게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한 전 이사장의 질문에 ‘없다’라고 짧게 답하고 다시 침묵했다.

김근태 전 부위원장도 이씨가 자신을 RO의 경기 동부지역 책임자라고 지목한 이유에 대해 질문했지만, 이씨는 기존 주장만 되풀이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본인은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와서 그런지, 또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것도 아니니까 자기 얘기만 계속 읊조리고 들어갔다”고 떠올렸다. 이 모습이 그들이 이씨를 본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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