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없는 사회로의 이행, 동전부터 없앤다
동전 재사용 감추세, 회수율은 월평균 0.1%
핀테크‧간편결제 부상하며 제반 기술 확보
스웨덴 2030년까지 현금없는 사회 구현 계획
통신망 안전, 기술낙오자 교육 등 대비해야 

모든 것이 디지털로 수렴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계산기, 달력, 시계 등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속으로 들어갔다. 좀 더 시간이 지난다면 기본이 되는 기계 또한 소형화를 거쳐 물리적 실체가 필요하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이 같은 흐름의 첫 번째 대상으로 지목되는 것이 ‘현금’이다. 이미 젊은 계층을 중심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한 온오프라인 결제에 익숙하다. 정부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는 현금제도의 폐지를 고려하는 것이 당연한 판단일 수도 있다. 실제로 1661년 유럽에서 처음으로 지폐를 발행한 스웨덴은 2030년 현금없는 사회의 구현을 목표 삼아 빠르게 다음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수백년을 지탱해온 화폐본위의 흐름이 저물어 가는 것이다. 다만 디지털 금융 소외 계층, 개인정보 해킹 및 도용, 통신망 마비에 따른 디지털 블랙아웃 등의 우려는 남아있다. 현금없는 사회는 이 같은 문제들에 대한 선제적 해결 없이는 무의미한 논의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 최초의 근대 지폐인 호조태환권의 인쇄 원판. 고종 30년인 1893년, 조선은 처음이로 지폐를 발행했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뉴시스
한국 최초 근대 지폐인 호조태환권의 인쇄 원판. 고종 30년인 1893년, 조선은 처음으로 지폐를 발행했지만 공식적으로 사용되지는 못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한국은행은 동전없는 사회 시범사업을 진행 중이다. 우선은 가용성이 축소된 동전부터 줄이려는 계획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현금없는 사회로 이행하기 위한 선행 작업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국은행이 2016년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46.9%의 응답자가 현금으로 거래할 때 발생한 동전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62.7%는 동전 소지의 불편함을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2018년 동전 발행액은 2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425억9000만원의 동전을 발행했다. 이는 전년 대비 69억6000만원이 줄어든 액수다. 특히 500원 발행액이 250억7000만원으로 전년대비 63억5000만원 줄어 전체 감소액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동전의 사용이 줄어드는 이유는 사용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지고 대체결제 수단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동전의 경우 과거 공중전화, 대중교통, 소액결제 등에서 활용도가 높았지만 이제는 사실상 신용카드와 휴대폰으로 대체되고 있다. 

사용하지 않는 동전의 발행은 정부 재정에 부담이다. 한국은행은 재사용되지 않는 동전으로 인해 매년 500억원 가량의 예산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또 동전의 관리, 지급, 회수 등에도 많은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는 실정이다. 거스름돈은 발생하지만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적어 회수율이 월평균 0.1%에 그치고 있다. 

결국에는 지폐 역시 비슷한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동전없는 사회는 인프라 측면에서 현금없는 사회와 유사하다”라며 “한국은행의 시범사업과 연계해 보다 체계적인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내다봤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필요한 제반 기술은 이미 도입 및 시행 중
지갑에 있던 현금, 카드 등 디지털로 편입 

핀테크(fintech)와 간편결제의 확산도 현금없는 사회가 기술적으로 가능하도록 하는 주요한 요인들이다. 동전, 지폐, 카드 등 지갑에 들어있던 결제 도구가 디지털로 편입되는 한편, 비대면 거래가 강화되면서 물리적으로도 현금을 주고받아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핀테크는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금융산업에 모바일 인터넷과 인공지능(AI),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의 정보통신기술(ICT)을 도입해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통칭한다.  

핀테크 개념이 부상한 시기는 보통 2014년경으로 보지만 시장 확대의 가능성은 인터넷전문은행의 출범을 전후로 가시화됐다. 이 시기를 즈음으로 시중은행들의 비대면 거래 비중과 투자도 확대 기조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세계금융시장의 핀테크 총 거래 금액이 2017년 9508억달러(한화 약 1072조4000억원)에서 오는 2020년이면 1조5700만달러(한화 약 1127조86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 같은 기대감에 따라 국내에서의 투자규모도 크게 늘어나는 모습이다. 국내 핀테크 기업의 투자규모는 2014년 기준 87억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 들어서면서 1554억원을 기록하며 18배가 늘어났다. 

핀테크의 주요 서비스는 챗봇(chatbot)과 로봇어드바이저(robotadvisor)로 요약할 수 있다. 챗봇은 말 그대로 채팅하는 로봇이다. 이용자는 금융거래를 비롯한 상담, 민원, 안내 서비스를 로봇과의 대화를 통해 해결할 수 있게 된다. 

로봇어드바이저는 자산 및 투자관리 등 보다 전문적인 영역에서 도움을 준다. 고객의 재무상황, 투자현황을 분석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조언하는 이 서비스는 금융 소외 현상을 채워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챗봇인 ‘위비봇’‧‘쏠메이트’를 출시했고 로보어드바이저 부문에서는 자산관리 서비스 ‘우리로보알파’와 ‘엠폴리오’를 선보이며 관련 산업을 이끌고 있다. 

미국 온라인 거래사이트 이베이가 내놓은 결제대행 서비스, 페이팔로부터 촉발된 간편결제도 현금결제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간편결제 서비스는 공인인증서나 OTP없이 결제가 가능하다. 주로 사전에 등록한 비밀번호나 지문인식 등을 통해 전자결제와 상품 구매를 할 수 있다. 

국내 간편결제는 삼성페이와 네이버페이가 주도하고 있다. 2015년 출시한 삼성페이는 오프라인 간편결제를 선점했고 네이버페이는 포털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온라인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여기에 카카오페이, 페이코, SSG PAY, L PAY, LG페이, 뱅크월렛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출시돼 있다. 

암호화폐도 이 같은 흐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암호화폐는 투기성 자본이 몰리면서 그 의미가 퇴색됐지만 기술적 가치마저 폐기된 것은 아니다. 

실제로 서울시 노원구에서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지역화폐를 만들어 통용, 주민들의 호응과 함께 정착에 성공했다. 지역 내 280여개 가맹점에서 사용가능한 이 가상화폐는 외부의 요건에 의해 흔들리지 않는, 즉 변동성으로부터 안전한 화폐로 지역경제를 보완하고 있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신선식품 전문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장을 보는 중국인들 ⓒ뉴시스
알리바바그룹이 운영하는 신선식품 전문매장에서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찍어 장을 보는 중국인들 ⓒ뉴시스

거래의 투명성 극대화, 범죄율 감소도 기대돼
스웨덴·중국
등 현금없는 사회로 빠르게 변화

기술적 요인을 제외하고도, 현금없는 사회가 도입되면 거래의 투명성‧효율성‧안전성‧간편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전자결제는 가치가 교환된 기록이 남기 때문에 거래의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이에 따른 지하경제 양성화와 세입 증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셈이 된다.  

대면 현금거래가 사라지면 강도 등의 위협도 줄어들 전망이다. 현금을 따로 보유하지 않게 된다면 범법자가 굳이 개인과 주택 등을 타깃으로 강도행위를 저지를 이유가 사라진다. 이미 현금을 들고 은행을 오가는 사람이 드물어진 것도 사실.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지간한 서비스는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가능한 세상이 됐다.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현재 현금없는 사회의 최전선에서 정책을 추진 중인 곳은 스웨덴이다. 뉴욕타임스는 가장 먼저 현금이 없어질 나라로 스웨덴을 꼽기도 했다. 

스웨덴은 지난 2012년 송금서비스 앱 ‘스위시(Swish)’를 도입하며 현금없는 사회로의 이행을 본격화했다. 스위시는 휴대전화번호와 은행ID만으로 돈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서비스다. 스위시 이용의 확대로 스웨덴에서는 사실상 현금 없는 생활이 가능해졌다. 현지에서는 구걸도 스위시로 한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그럴법한 것이 스웨덴은 소매점들이 종이돈과 동전 같은 현금을 합법적으로 거부할 수 있는 법안까지 통과시켰다. 스웨덴은 2030년까지 현금없는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중앙정부의 추진 아래, 새로운 지폐와 동전의 발행을 중단하고 유통 중인 현금을 점차 회수할 계획이다. 

이 분야에 있어서는 중국도 상당히 앞서가는 모습이다. 중국은 핀테크 확산에 있어 후발주자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정부가 핀테크에 주목하는 이유는 넓은 땅과 많은 인구도 한몫하고 있다. 국민 1인당 ATM 수나 신용카드 발급수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에서 금융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핀테크가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의 변화는 먼저 결제시스템의 혁신에서 시작 중이다. 중국 시민 대다수는 앱의 QR코드를 이용해 현금결제를 대신하고 있다. 이 방식은 대형 쇼핑센터뿐만 아니라 길거리의 노점상에까지 적용돼 있어 확산 범위가 남다르다. 중국은 글로벌 컨설팅 회사 ‘언스트 앤 영(Ernst&Young)’이 2017년 발표한 ‘핀테크 도입 지수’에서 69%로 가장 높은 도입률을 기록한 바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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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제시스템 오류, 도용 및 유출사고 등 과제 산적
통신망 고장에 따른 디지털 블랙아웃도 우려 대상

하지만 현금없는 사회로의 이행이 반드시 좋은 것이냐는 질문에 마냥 긍정적으로 대답하기는 어렵다. 디지털화에 따른 결제시스템의 오류, 개인정보 유출 및 도용 등의 문제는 현재도 종종 발생하고 있으며 자연재해나 외부공격에 의한 통신망 마비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의 경우만 해도 이른바 ‘OO페이’라고 불리는 간편결제 서비스에서 도용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티몬페이를 비롯한 ‘OO페이’는 고객이 소유한 각종 카드를 한데 모아 등록한 후 간편한 결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OO페이’는 현금뿐만 아니라 카드까지 디지털 결제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티몬페이가 해킹당해 금전적 피해가 발생했다는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티몬은 해킹은 아니라는 취지의 답변을 내놨지만 피해 사례 제보가 이어지며 사용자들의 불신은 깊어져 갔다. 

이밖에도 비슷한 시기 신세계 SSG PAY, 위메프 원더페이, 카카오머니 등 다양한 모바일 간편 결제 서비스에서 도용으로 의심되는 부정결제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외부 요인으로 인한 통신망 고장도 두려운 문제다. 모든 전자결제는 통신망을 기반으로 운용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약 화재·지진·홍수 등 자연재해는 물론 테러 같은 상황으로 국가 통신 단절 현상이 발생한다면 금융을 비롯한 다양한 부문에서 대규모 혼란이 예상된다. 

실제로 2018년 말 한국신용카드 결제주식회사의 서버오류로 일부 병원과 상점의 카드결제가 먹통이 되기도 했다. 오전에 발생한 서버오류는 그날 오후 5시가 돼서야 정상화됐다. 이외에 국군 감청부대 회선 먹통이나 KT아현지사 화재들도 디지털 블랙아웃의 두려움에 대한 기폭제가 됐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지난해 말 발간한 ‘ICT Brief’에서 “통신·데이터가 단절될 경우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광범위한 영역에서 엄청난 혼란과 위험을 초래할 것으로 예측된다”라며 “11월 경 발생한 디지털 블랙아웃 사태는 일상의 불편함을 넘어 기본적인 사회 인프라와 국가 기반시설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이어 “퍼블릭, 프라이빗 서비스를 병행해 운용하는 등 단일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방안을 다각적으로 고민해야한다”라며 “통신 백업 시스템 구축, 통신망 이원화 등 재방 방지책뿐 아니라 재난 시 행동요령 매뉴얼, 화재 방지시설 설치 확대, 투명한 피해 보상안 등 철저한 대책 수립과 이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령대별 금융이해력 수준 ⓒ한국은행 ‘2018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
연령대별 금융이해력 수준 ⓒ한국은행 ‘2018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

현금없는 경제로의 이행은 불가피한 변화
기술낙오자 등 부작용 최소화 노력 필요

기술 혁신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는 때로 사회의 제어를 벗어난다. 한 IT업계 종사자는 “냉장고나 자동차, 휴대폰처럼 획기적인 기술이 대중화되면 그것을 벗어나서 살기는 쉽지 않다”며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보편화 된다면 마찬가지로 현금을 고집할 수 있는 방법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김성훈 부연구위원 역시 현금없는 사회를 비껴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 연구위원은 “핀테크 산업이 더욱 성숙해지면 현금없는 경제로의 이행은 전기자동차처럼 거의 모든 나라들이 경험하게 될 공통의 변화들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1855년부터 지금까지 160년간 지폐 없는 경제성장을 생각할 수 없었듯, 앞으로는 지폐 있는 경제 성장을 점점 더 생각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아직은 한국사회에서 현금결제 배제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특히 디지털 기기 활용이 어려운 노인계층 문제처럼 앞서서 해결해야할 사안들이 있다. 

한국은행이 내놓은 ‘2018 전 국민 금융이해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노년층, 60대와 70대의 금융지식은 각각 61.6점, 50.2점으로 전체 평균 65.7점보다 크게 떨어졌다. 금융행위 부문 역시 각각 56.0점, 52.3점으로 전체 평균 59.9점을 밑돌았다. 

급변하는 경제환경의 변화로 금융문맹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디지털 기기 소외계층에 대한 대안 없이 진행하는 현금없는 사회는 장점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이승훈 책임연구원은 “스웨덴에서도 새로운 기술에 적응하지 못하는 노인과 시골지역에서 겪는 어려움 등을 줄일 수 있는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라며 “2016년 스웨덴 중앙은행은 은행의 현금지급 기능 의무화를 의회에 제안하는 등 급격한 현금 없는 사회로 이행을 경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해외의 현금 없는 사회 전환 사례를 벤치마킹해 기술 낙오자 등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단계적인 추진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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