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재고기록 및 개인 진료기록까지 열람
거래 끝나도 3년 동안 각종 기록 열람 요구

【투데이신문 홍세기 기자】 국내 반려동물의약품 분야 1위인 한국베링거인겔하임(대표 스테판 월터, Boehringer Ingelheim)이 동물병원과 수의약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어 수의사들이 ‘갑질’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시수의사회(회장 최영민)는 지난 14일 ‘수의사 기망하지 말고, 초법적 갑질계약 즉각 철회하라!’ 제목의 성명서를 내고 독소조항 삭제와 거래약정서 수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는 베링거인겔하임과 메리알의 합병에 따른 것으로 지난해 말부터 동물병원별로 거래약정을 새롭게 체결하고 있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수의사회는 “15페이 분량의 촘촘한 글씨로 작성된 계약서에는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초법적인 내용들이 열거돼 있었고, 이를 통해 베링거에는 소위 ‘슈퍼 갑’의 권리가 부여되고, 일선 동물병원은 현행법 저촉이 우려되는 베링거의 조치까지도 협조해야하는 의무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해당 계약서의 작성이 모바일이나 PC 등 전산을 통해 이뤄져 내용의 확인없이 서명을 하거나 베링거 직원들이 계약서에 대신 서명작업을 진행한 것을 확인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수의사회는 동물병원들을 상대로 법적 구속력을 갖는 거래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전 의견조율 절차 없이 모바일 등을 통해 일방적으로 약정서를 통보하고, 거래를 전제로 해 사실상 약정서에 동의한 것을 강제하는 업무처리 과정에 강한 유감을 표했다.

덧붙여, 거래약정서에 대한 전면 재검토 및 이미 계약을 맺은 동물병원들에 대한 재계약을 요구했다. 

베링거의 약정거래서를 살펴보면, 의약품을 공급하면서 동물병원 계약자 소유의 부동산에 대한 근저당을 설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베링거 측에서 요구하면 언제라도 동물병원에 출입해 재고기록을 열람하는 것은 물론 동물병원 이용객의 개인정보가 담긴 진료기록까지 열람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 

동물병원과 거래약정이 끝난 뒤에도 3년간 각종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해놨다. 

아울러 제품을 취급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수의사가 베링거에 영문으로 연락보고를 하라는 규정도 있다. 

이에 수의사회는 “베링거인겔하임동물약품이 국내 반려동물의약품 분야 시장점유율 1위 회사가 됐다고 해서 수의사에게 초법적인 갑질계약을 강제하는 권리가 부여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비판의 수위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한국베링거인겔하임 관계자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서울시수의사회가 제기한 내용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현재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국제 표준 계약서를 기반으로 각국에 맞춰 계약을 하고 있다”며 불공정한 계약 주장에 대해 해명했다.  

이에 수의사회는 “미국의 경우 거래 당사자와 거래품목, 결제방법 등 거래를 위한 기초정보만 기록하고, 거래 당사자 간 서명할 뿐, 어느 일방의 의무나 권리를 규정하는 내용은 찾아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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