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다. 크고 무성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열매 맺는 것을 억제하거나 손상하지 않을 뿐이다. 빨리 열매를 맺게 하고 많이 열리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종원(柳宗元, 773-819)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 중>

“너를 믿어봐. 잘 될 거니까.”

잊을 수 없는 학생이 있다. 신입생일 때부터 알던 사이인데 복학을 해서 내 강의를 수강했다. 남자이고, 졸업반이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강의를 마치고 나한테 와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언제 어느 날에 면접을 가야 하는데, 강의 시간과 겹치거든요. 죄송한데 출석으로 인정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 그래서 표정이 어두웠구나.’ 초조한 얼굴빛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일어났지만, 별말은 하지 않고 ‘걱정 말고 잘 다녀오라’고 했다. 그 이후에도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아마 결과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이 학생을 위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중간고사를 앞두고 수강생 전원을 학교 근처에 있는 사찰에 데리고 갔다.

“여러분들이나 저나 늘 하는 게 많습니다. 늘 핸드폰을 들고 있거나, 아니면 공부를 하죠. 45분 드릴 테니 핸드폰 놔두고 혼자 마음대로 쉬세요. 다만 옆 사람과 말을 하지 말구요. 거창하게 명상을 하라는 거 아닙니다. 부담 갖지 말고 쉬세요.”

이래 놓고선 이 친구한테는 일부러 말을 걸었다.

“요즘 많이 힘들지?”

“네.”

“그러게. 졸업 앞두고 있으니 걱정되기도 할 거고….”

“저는 남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하고 얼굴도 벌개 지고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하하, 나도 그런데….”

“안 그러실 거 같은데요?”

“안 그런 척 하는 거지. 늘 떨리고 그래. 그런데 안 그런 척 하려고 하니까 더 힘이 들더라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인정하면 되는 것 같아. 사람마다 자기만의 강점이나 취약점이 있는 거잖아. 그런데 모든 걸 다 강점으로 만들려 하고, 취약점을 감추려 하니까 오히려 더 드러나는 거 같아. 네 강점은 남들한테 믿음직하게 보이는 면 같아. 나는 너 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너 보면 듬직하고, ‘쟤는 뭘 맡겨도 잘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일부러 너 힘내라고 하는 소리 아니다.”

“감사합니다.”

“세상에 외향적인 사람만 있는 건 아니잖아. 다 그렇진 않겠지만, 내성적인 사람은 오히려 남들보다 생각을 많이 하고,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경우가 많잖아. 이런 게 네 강점이지. 남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본 적 있어? 내성적인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고?”

“그런 말은 한 적이 없어요. 생각조차 못해봤고….”

“내가 보기에 너는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을 해서 그 쪽으로 어필을 하려고 했을 거야 아마. 그건 너하고 안 맞잖아. 너보다 성적이 좋은 사람들이 잘 됐겠지만, 너하고 안 맞는 걸 보여주려고 해서 잘 안 됐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거기까진 생각을 안 해 봤네요.”

“결과가 어찌 될 진 모르겠지만, 같은 방식으로 해서 안 됐으니 이번엔 좀 바꿔봐. 나는 내성적이지만, 차분하다. 그래서 실수가 적을 거라고 말해 보는 건 어때?”

“한 번 해 볼게요.”

“남들도 너 보면 듬직해 하고 그럴 걸 아마?”

“제 단점 때문에 걱정이었는데 선생님 덕분에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요.”

“하하, 단점이 될 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 마음 편해졌다니 다행이네. 너를 믿어봐. 잘 될 거니까.”

나에겐 특별한 방법이 없다

그저 그 친구가 자신의 성정을 굳이 바꾸지 않고 그 성정대로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이 생각이, 생각에 따른 말이 감히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바꾸는 것 보다는 자연스럽게 놔두는 것이 좀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할 뿐이다. 이렇게 생각하도록 해 준 글이 한 편 있다. 중국 당나라의 문장가 유종원(柳宗元, 773-819)의「종수곽탁타전(種樹郭槖駝傳)」이라는 글이다.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에 ‘곽탁타’라는 특이한 이름을 지닌 사람이 있었다. 탁타(槖駝)는 ‘낙타’인데 곱사병을 앓아서 등이 낙타의 봉처럼 튀어 나와 있었기에 붙은 이름이다. 곽탁타는 나무를 잘 심었다. 이 사람이 심거나 옮겨 심은 나무는 잘 사는 건 물론이고, 열매도 많이 달렸다. 이래서 장안의 부자나 과일 장수들까지 너도나도 곽탁타에게 나무를 심어 달라고 부탁했다. 누군가가 곽탁타에게 나무를 잘 가꾸는 법을 물었다. 곽탁타가 대답했다.

“나한테 나무가 오래 살고 무성하게 하는 능력이 있지는 않다. 나무의 천성에 따라 그 성질을 다하게 했을 뿐이다. 나무의 성질은, 뿌리는 펴지기를 바라고, 북돋음은 평평해지기를 바라며, 옛날에 있던 곳의 흙을 바라고, 빈틈없이 흙을 다져주기를 주기를 바란다. 이렇게 심은 뒤에는 나무를 움직이거나 걱정하지 말고 뒤 돌아보지 말고 떠나야 한다. 심을 때는 자식처럼 대하되, 심은 뒤에는 버린 것처럼 내버려 둬야 한다.”

“이렇게 하면 나무의 천성이 온전히 유지된다. 그러므로 나는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을 뿐이다. 크고 무성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열매 맺는 것을 억제하거나 손상하지 않을 뿐이다. 빨리 열매를 맺게 하고 많이 열리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말한 뒤에 곽탁타는 나무를 사랑한답시고 아침저녁으로 살피면서 나무를 흔들거나 껍질을 긁어 생사를 확인하는 사람들을 꾸짖는다. 이처럼 하면 나무는 천성을 유지하지 못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이 글을 쓴 유종원은 곽탁타의 입을 빌어 시도 때도 없이 마을에 나타나 일을 하라고 독촉하는 관리를 꾸짖었다. 사실 이 글은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글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글을 사람을 가르치는 일,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적용했다. 학생의 성향을 알고 이에 따라 가르치며, 자신의 성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이 외에도 이 글엔 성과를 내기 위해 억지로 서두르거나 닦달해선 안 되며, 학생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기도 하다.  

다행히도 해피엔딩

그 학기 강의가 끝나고, 방학을 지나 새 학기 개강을 한 어느 날, 그 친구를 만났다. 표정이 밝아 보였다. 내가 말했다.

“취업했구나? 하하.”

“하하, 그렇지 않아도 인사드리려 찾아뵈려고 했어요. 그 때 절에서 해 주신 말씀에 힘을 얻었어요. 선생님 덕분에 합격했습니다.”

“아이고, 그건 내 덕분이 아냐. 네가 준비를 잘 해서 된 거지.”

“아니에요. 그 때 이후 힘이 났고, 일도 잘 풀리더라고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워. 그래도 네 덕분이야.”

“제가 될지 어떻게 아셨어요?”

▲ 김재욱 칼럼니스트▷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한시에 마음을 베이다왜곡된 기억 외 6권
▲ 김재욱 칼럼니스트
▷저서 <군웅할거 대한민국 삼국지>
<한시에 마음을 베이다>
<왜곡된 기억> 외 6권

“뭘 어떻게 알아.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네 모습을 싫어해서 자신감을 잃었는데 어떻게 잘 될 수가 있겠어. 그걸 회복하면 될 것 같았어. 결과는 그 다음 문제고.”

냉정하게 말해 그 친구가 취업 경쟁에서 살아남은 건 열심히 노력했고, 운도 따라줬기 때문이다. 다행히 해피엔딩으로 마무리가 됐을 뿐, 내 말이 무슨 대단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같은 조건에서 경쟁할 때는 정신력이나 마음가짐이 성패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실력을 갖추지 않고, 준비도 소홀히 하면서 정신력만 갖고 덤비면 실패하지만, 강한 정신력 없이 무언가를 성취하기는 어렵다. 그 정신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내 성정, 내가 처해있는 이 상황까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데에서 나온다. 반드시 외향적인 성격을 지니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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