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근대(近代)”에 대한 학계의 관심은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를 기준으로 시기 구분을 하는 것이 학계, 특히 역사학계의 특징, 아니 사명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각종 시험에서 시대 구분과 관련된 문제들도 많이 출제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학계에서 근대에 관하여 중요하게 받아들이지만,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그 항목이 많지 않다. 예를 들어서 네이버 백과사전을 검색하면 몇몇 항목이 등장하지만,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발행한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의 항목들이 대부분이고, 백과사전이나 전문적인 사전 항목은 많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들이 “근대”라는 것에 대하여 개념부터 접근하기 힘들다는 것을 의미하며, 반대로 “근대”라는 시기를 사람들이 알기 쉽게 설명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고 어렵다는 것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전적 정의를 정리하면, 근대라는 개념은 주로 서양사에서의 시대 구분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하여 르네상스 이후를 근대라고 일컫는다. 그 변화의 내용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개념의 태동,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시작, 사회와 문화적으로는 인간과 개인의 존중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근대”라는 개념이 서양사에 적용되는 개념이라면, 한국에는 근대가 없었을까? 이 부분에 대한 학계의 논의는 분분하다. 학계에서는 나름의 논거를 가지고 한국 근대의 시작을 제각기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외교 조약이자, 일제 침략의 시작점이 되는 ‘강화도조약’ 이후, 신분제 철폐를 비롯한 각종 근대적 개혁이 시작되었던 ‘갑오개혁’ 이후, 해방 이후인 1945년 이후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성차별 등의 젠더(gender) 문제, 여전히 가부장적인 풍토 등 문화적 사항을 근거로 아직 한국은 근대에 접어들지 못했다는 주장도 보인다. 아무래도 서양의 시대구분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다보니 논쟁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근대에 대한 논의 속에서 “종교”가 조금은 소외(?)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서양사에서 근대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살펴보자. 르네상스, 즉 인문학의 부흥이 일어난 것은 십자군 원정 실패와 관련이 있다. 십자군 원정 실패로 인한 교황권의 약화와 그에 따른 교황청의 반동, 십자군 원정 과정에서 유럽에 전파되고 재조명 된 고대 그리스의 학문과 문화의 결과가 르네상스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유럽 남부에서 르네상스가 일어났다면, 유럽 북부에선 종교개혁이 일어났는 점이 유럽의 근대에서 종교가 차지하는 위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전에도 부패한 가톨릭에 대한 저항은 있었고, 영국의 헨리8세부터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후스 등 성직자까지 그 계층도 다양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종교개혁은 그 범위도 거의 유럽 전역에서 발생했고, 그 시기도 길었으며,농민부터 영주까지 호응하는 계층도 다양했다. 또한 가톨릭의 반동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가톨릭 단일체제가 무너지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유럽에서 공존하는 상황까지 낳았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라는 특정 시기를 근대로 규정지을 수 있는 두 사건에 종교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그 결과 오늘날 백과사전에서 “인간과 개인의 존중”을 근대의 특징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서양의 근대 개념에서 이와 같이 종교가 가진 영향력은 컸다. 그렇다면 한국의 근대와 이에 대한 논의에서 종교는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향후 몇 주 동안 이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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