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호, 2년의 기다림③] 희생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스텔라데이지호, 2년의 기다림③] 희생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
  • 김태규 기자
  • 승인 2019.03.29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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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31일은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지 2년이 되는 날이다. 그러나 2년이 다 되도록 침몰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실종자들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년간 실종자 가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 활동을 돌아보고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 쉬핑과 정부의 대응을 되짚어봤다. 기사는 실종자 가족 인터뷰와 선사, 정부 부처 취재 등를 통해 쓰여졌다. 3편에서는 정권교체 전후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정리했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2018년 1월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2018년 1월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지 16시간이 지난 2017년 4월 1일 오후 4시경, 스텔라데이지호 승선원 허재용 2등 항해사(이하 2항사)의 어머니는 폴라리스 쉬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아드님이 탄 배가 침수되고 있습니다.”

허 2항사의 누나 허경주씨는 ‘먼 바다를 오가는 배에 이런저런 사고야 당연히 있을 테지만, 선사에서 가족에게 연락을 한다면 심각한 상황일 텐데’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영해상이 아닌 곳에서 선박사고가 난 경우 어느 부처에서 담당하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곳저곳 수소문을 한 끝에 외교부가 주무부처라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사고 연락을 받은 날은 토요일이었다. 외교부는 물론이고 관련 부처인 해수부도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

핑퐁게임

폴라리스 쉬핑은 사고를 인지한 지 12시간 만인 2017년 4월 1일 오전 11시 9분경 해경상황센터에 사고를 알렸다.

오후 3시경, 외교부는 가족들에 사고 사실을 알리기는커녕 ‘주우루과이대사관을 통해 우루과이 해경 당국에 긴급구조 요청했다’는 내용의 언론대응자료를 먼저 배포했다.

폴라리스 쉬핑은 오후 3시 25분이 돼서야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고 사실을 알리기 시작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발생 다음날, 구명벌에 타고 있던 선원 2명이 인근 해역을 지나던 그리스 선박 ‘엘피다호’에 구조됐다. 구조된 이들은 스텔라데이지호에 탑승했던 필리핀 선원 2명이었다. ‘우리 아들도 살아있다’ 가족들은 구조된 필리핀 선원들을 보면서 실종된 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고 확신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폴라리스 쉬핑 부산지사에 마련된 상황실에 머물면서 선사와 정부에 빠른 수색을 요구했다. 언론에서는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도했으나 정작 외교부와 해수부는 ‘자신들은 주무부처가 아니다’라며 책임을 돌리기 바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컨트롤타워’가 돼야 할 황교안 권한대행은 아무런 계획·입장발표도 없었다.

허영주씨는 해수부에 콜센터에 전화를 했다.

“외교부가 주무부처입니다. 외교부에 연락해보세요.”

허씨는 외교부에 수차례 전화를 했으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이에 허씨는 직접 외교부로 찾아갔다. 외교부의 담당 국장은 황당한 답을 내놨다.

“가족들에게 연락하는 건 국민안전처의 일이고, 배 안에 구명정이나 구명벌이 얼마나 있는지 파악하는 건 가족들이 선사에 확인해서 정부에 알려주셔야죠.”

정부는 국민 8명이 사고로 실종됐는데도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핑퐁게임’을 하고 있었다.

결국 사고 발생 3일 만인 4월 3일 오후에야 김영석 해수부 장관이 가족들을 찾아왔다.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은 보이지 않고 관련부처인 해수부 장관만 나타나자 가족들은 항의했다.

“주무부처가 어디입니까? 주무부처인 외교부 장관이 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가족들은 김영석 장관에게 주무부처인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위해 마련했다는 외교부, 해수부 비상대책반은 사건이 발생한 지 일주일이 다 되도록 가족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대면은 물론이고 유선이나 서면 상으로도 가족들에게 상황을 설명하지 않았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가족들은 재차 윤 장관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러나 외교부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 선원 가족들이 지난 2017년 4월 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외교부장관 면담 요청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 선원 가족들이 지난 2017년 4월 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앞에서 외교부장관 면담 요청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태세전환

4월 9일, 정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美) 해군 P8초계기가 1차 수색에서 구명벌로 추정되는 물체를 발견해 안나마리아호가 확인을 위해 이동 중이라고 가족들에게 알렸다. P8초계기는 적의 잠수함을 찾기 위해 만들어진 수색기다. 수면 위의 잠망경을 포착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이런 초계기가 구명벌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가족들은 ‘이제 구조가 되는구나’하고 희망을 품었다.

그러나 이튿날 브리핑에서 정부는 또다시 절망적인 소식을 알려왔다. 구명벌 추정물체를 쫓던 안나마리아호와 더조우호가 추적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우루과이 대사관은 해당 물체가 기름띠일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미군도 우루과이 MRCC측에 “기름띠일 수도 있다. 구명벌로 확정할 수 없으니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가족들은 정부에 P8초계기가 촬영했다는 구명벌 사진을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정부는 11일 오전 P8초계기가 촬영한 사진을 입수해 가족들에게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폴라리스 쉬핑이 “미 P8초계기가 찍은 사진은 구명벌이 아닌 기름띠 사진으로 확인됐다”고 언론에 알렸다. 미군은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고 했으나 언론은 기름띠로 공식 확인된 것처럼 보도하기 시작했다.

외교부는 선사 측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전달했다며 항의했다. 그러나 3일 뒤 돌연 입장을 바꿔 ‘구명벌 추정 물체가 기름띠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앞서 약속한 사진제공도 없이 구명벌이 아닌 기름띠라는 외교부의 발표에 가족들은 기름띠로 확인한 근거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외교부는 “미 국방부에서 구명벌 추정 물체를 촬영한 사진 또는 영상이 없다고 한다”며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해당 사진이 없다면 무엇을 근거로 기름띠라고 분석을 했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러나 외교부는 이를 확인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은 채 가족들에게 “미 국방부에서 사진을 갖고 있지 않아 공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1년이 지난 2018년 3월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년의 기다림,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에서 실종자 가족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1년이 지난 2018년 3월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1년의 기다림, 스텔라데이지호 시민문화제’에서 실종자 가족이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뉴시스

외면

가족들이 그간 수차례 면담을 요청했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사고 발생 12일 만인 4월 11일에야 찾아왔다. 그간 수차례 요청에도 답이 없던 윤 장관은 가족들이 황교안 권한대행과의 면담을 요청하자 일정을 급히 변경하고 부랴부랴 상황실을 찾았다.

“정부가 우리 실종 선원 8명의 수색·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전해드리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현재 투입 중인 미국, 브라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군 자산을 포함해 인근을 지나는 상선 등을 통해 수색·구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윤 장관은 ‘구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가족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윤 장관의 약속 이후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4월 17일, 결국 가족들은 황교안 권한대행과의 면담을 요청하기 위해 실종자 수색 활성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서명지를 들고 총리공관으로 찾아갔다.

“누구시죠?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가족들이에요. 황교안 권한대행님을 꼭 좀 뵙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가족들의 대답에 갑자기 30명 이상의 경찰들이 가족들을 둘러쌌다. 가족들은 황 권한대행을 만나야겠다며 버텼으나 경찰들이 끌어내기 시작하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 황 권한대행은 만날 수 없었다. 국민이 사고로 실종된 상황에 국가는 아무 역할도 하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2018년 1월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최한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사고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와 시민대책위원회가 지난 2018년 1월 2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개최한 '스텔라데이지호 10만인 국민서명 전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사고원인 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수색종료

미 해군 P8초계기가 촬영한 구명벌 추정 물체의 사진을 확인할 수 없게 되자 가족들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공위성을 활용해 사고해역을 촬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이를 요청했다. 외교부, 해수부, 미래부, 항공우주연구원 등 관계부처는 4월 28일 촬영계획을 설명했다.

“왜 진작 사고해역을 위성으로 찍지 않은 겁니까?”

가족들의 물음에 정부는 황당한 대답을 내놨다.

“바다를 촬영할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습니다.”

자국민이 실종된 상황에서 실종자를 찾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한국 정부는 실종된 국민을 찾을 의지가 없어 보였다. 실종자의 가족들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서 정부에 알려주고 있었다.

이 외에도 한국 선박 중 사고해역과 가장 가까운 남극 지역에 정부소유의 쇄빙선 아라온호가 있었다. 그렇지만 정부는 이를 수색에 투입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수색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정부는 결국 5월 9일 “폴라리스 쉬핑 측의 내부 결정으로 집중수색을 중단한다”며 ‘통항수색’으로 전환한다고 전했다. 이마저도 직접 만나서 전달받은 것이 아니다. 외교부는 문자 메시지로 가족들에게 이를 통보했다.

통항수색은 사고해역을 지나는 배들이 수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말이 수색이지 사실상 ’수색종료‘나 다름없었다. 망망대해를 다니는 배가 많지도 않을뿐더러 그 넓은 바다를 지나는 배들이 수색해 구명벌을 찾는 건 수색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지난 2017년 4월 17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역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던 중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2017년 4월 17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서울 용산역에서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던 중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가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뉴시스

정권교체

박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이뤄진 ‘장미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수차례 실종자 가족들을 만났다.

황 권한대행 면담 요청을 위해 찾았던 총리공관에서 쫓겨난 날, 가족들은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인 문재인 대선후보를 찾아갔다.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어떻게 다른 나라 바다에 버릴 수 있습니까. 남의 바다에 버릴 아들이 아니에요. 꼭 좀 살려주세요.”

가족들은 문 후보를 붙잡고 오열했다. 문 후보는 가족들을 감싸 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대선후보 중 가장 당선이 유력했던 문 후보는 5월 2일 대선캠프에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위한 창구를 마련했다. 취임 이후 실종자 수색의 빠른 해결을 위해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5월 10일, 대선에서 승리한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됐다. 실종자 가족들은 청와대에 실종자 수색을 계속해달라며 민원을 냈다. 국민들의 열망이 담긴, 촛불로 탄생한 새 정부의 1호 민원이었다.

열흘 후인 5월 20일, 가족들은 하승창 사회혁신수석과 면담을 가졌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원인 규명과 실종자 수색을 문재인 대통령 취임 1호 민원으로 삼겠습니다.”

청와대의 약속에 가족들은 곧 수색장비가 투입되고 실종자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러나 이후 6월 9일,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실 정무행정관은 가족들에게 “청와대는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하 수석은 “청와대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했다.

문 대통령 취임 후 임명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7월 13일 외교부 회의실에서 가족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해외 재난은 외교부가 분명히 주무부처입니다.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수색에 대한 답을 드리겠습니다.”

그간 외교부와 해수부는 자신들이 주무부처가 아니라며 책임을 돌리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 침몰 100일이 지나고,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외교부 수장이 “우리가 주무부처”라고 인정한 것이다. 강 장관은 가족들이 왜 수색 중단에 반발했는지 수긍하고 브라질과 영국 군함이 사고해역 인근의 섬을 수색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수색은 아무런 소득이 없었고 적극적인 수색은 펼쳐지지 않았다. 가족들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 두 척의 행방을 알아야만 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구명벌은 6인승 1척과 16인승 1척이다. 만일 구명벌이 스텔라데이지호와 함께 침몰했다면 실종자들의 사망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구명벌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실종자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살아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에 가족들은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체 확인을 요구했다. 심해수색장비를 투입해 선체를 확인하고 구명벌의 존재 여부를 확인하자는 것이다. 또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VDR, 항해기록저장장치)을 회수해 사고원인을 밝혀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심해수색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하승창(오른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지난 2017년 5월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뉴시스
하승창(오른쪽) 청와대 사회혁신수석이 지난 2017년 5월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주민센터 인근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고 있다. ⓒ뉴시스

수색비용

“수심 3000m까지는 수색이 가능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는 3400m 지점에 가라앉았을 것이기 때문에 수색이 불가능합니다.”

정부의 설명에 가족들은 더 이상 심해수색을 주장하지 못했다. 하지만 해외 사례를 찾다 보니 더 깊은 바다에서 심해수색을 시도하고 심지어 블랙박스를 회수한 경우도 있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 선적의 컨테이너선 ‘엘 파로(El Faro)’다. 2015년 10월 1일, 엘 파로(El Faro)호가 대서양의 일명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허리케인 ‘호아킨(Joaquin)’을 만나 침몰하는 사고가 있었다. 엘 파로호의 구명정과 구명벌은 사고 직후 모두 수거됐으며 생존자는 없는 것으로 판정됐다. 그러나 미 정부는 사고원인 규명을 위해 엘 파로호의 블랙박스 수거 작업에 나섰다. 결국 사고 10개월 만인 2016년 8월 심해 4570m 지점에서 엘 파로호의 블랙박스를 찾아 회수에 성공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8개월여 전에 스텔라데이지호보다 더 깊은 심해에서 블랙박스를 회수한 사례가 있음에도 정부는 3000m보다 더 깊은 심해에서는 수색이 불가하다고 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되자 가족들은 다시 심해수색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2017년 10월부터 국회의원들을 일일이 찾아 심해수색 예산에 대해 동의를 얻어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예산이 편성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2017년 10월 30일 외교부 국정감사장.

바른미래당 이태규 의원이 강 장관에게 질의했다.

이태규 위원 -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대표의 증언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심해 수색해서 블랙박스를 찾아 사고원인이 규명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수색 과정에서 주변에 무인도나 이런 곳을 다 수색을 해 가지고 마지막까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을 최종적으로 확인해 주기를 바라고 있는데 이것을 장관께서는 그렇게 추진하시겠습니까?
강경화 장관 - 예, 가능한 모든 방법을 써서 가족들의 답답함이나 안타까움을 풀어 드릴 수 있는……
이태규 위원 - 이게 외국의 협조도 중요하고요. 중요한 부분은 또 예산입니다. 이에 대한 정부의 긴급 구난 예산 등을 기재부에 요청할 생각이 있으신 것인지, 이번에 외교부에 이러한 구난 예산이 들어가 있지 않지요?
강경화 장관 - 예, 지금 저희 예산에는 편성이 안 돼 있습니다.
이태규 위원 - 만약에 국회에서 편성을 하면 여기에 반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강경화 장관 - 예.

하지만 그해 12월 6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합의로 통과된 2018년 정부 예산안에는 심해수색 예산 50억원이 전액 누락돼 있었다. 가족들은 왜 예산이 누락됐는지 이유도 알지 못했다. 누구도 그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다.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시민대책위가 지난 2018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해수색장비 투입과 블랙박스(VDR) 회수를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와 시민대책위가 지난 2018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를 열고 심해수색장비 투입과 블랙박스(VDR) 회수를 촉구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심해수색

정부와 가족들은 2018년 2월 심해수색 장비 투입을 위한 TF(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그러나 정부는 심해수색 장비를 투입하더라도 선체 외관만 촬영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가족들은 사고원인 규명과 실종자 행방 추적을 위해 블랙박스 회수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히 주장했다.

결국 심해수색 TF는 그해 6월까지 10차례의 심해수색투입 검토 회의를 거쳐 결국 심해수색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예산이 삭감돼 예비비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는 2018년 10월 2일 조달청을 통해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선원 22명의 생사 여부 확인 및 사고원인 규명을 위한 53억2900만원 규모의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 용역’ 긴급 공고를 냈다.

12월 28일, 외교부는 미국의 심해수색업체 오션인피니티(Ocean Infinity)와 ▲선체 발견 시 무인 잠수정에 부착된 비디오 카메라 등을 통한 미확인 구명벌 위치 확인 ▲선체 3D 모자이크 영상 구현 ▲기술적으로 가능한 경우 항해기록저장장치(VDR) 회수 등을 내용으로 하는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오션인피니티사는 실종된 아르헨티나 해군 잠수함 아라 산 후안(ARA San Juan)호를 발견한 바 있으며, 말레이시아 여객기 MH-370 수색에도 참여한 업체다. 또 심해 6000m까지 탐사 가능한 노르웨이의 원격 조정 탐사선 시베드 콘스트럭터(Seabed Constructor)호를 임차해 스텔라데이지호 심해수색을 위한 장비도 갖추고 있다.

심해수색을 통한 블랙박스 회수로 사고원인이 규명되고 실종자들의 행방이 밝혀지길 간절히 바라는 가족들은 그렇게 심해수색 선박이 출항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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