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혁갈등으로 치닫는 역사전쟁, 역사는 흐른다
주사파에서 떨어져 나온 뉴라이트, 그 역사관은
이승만 국부로 추앙, 건국절 논란으로 불 지펴
진보진영, 임시정부 건국절로 맞불 전략 구사
3.1운동 100주년 맞아 보혁 갈등으로 내비쳐

지난 2018년 3월 1일 오전 대구 중구 동산동 독립만세 운동길인 청라언덕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만세운동 재현행사 ⓒ뉴시스
지난 2018년 3월 1일 오전 대구 중구 동산동 독립만세 운동길인 청라언덕에서 열린 제99주년 3.1절 만세운동 재현행사 ⓒ뉴시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이 있었기 때문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이 있을 수 있었고, 해방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다.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올해 3.1절을 성대하게 치르겠다는 각오다. 3.1운동 100주년에 대해 보혁(보수와 개혁세력) 모두 이의는 달지 않는다. 하지만 3.1운동 이후 나타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을 두고 건국이냐, 아니냐에 대해 해묵은 갈등이 지속돼 오고 있다. 이 같은 역사 전쟁은 보혁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모습이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도 있다. 역사를 중시하는 것은 어느 민족이나 마찬가지다. 역사적 사실은 하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물컵에 물이 반 채워져 있다는 것은 객관적인 사실이다. 하지만 보는 사람에 따라 ‘물이 반이나 차있네’와 ‘물이 반밖에 차지 않았네’로 시선이 나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하다. 문제는 역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아전인수 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역사는 후대에 왜곡되는 경향이 강하다. 따라서 그 시대상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전두환 정권 시절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광주사태’ 혹은 ‘광주폭동’이라고 규정됐다. 하지만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5공 청문회와 5.18 청문회를 거치면서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게 됐다. 이 점을 비춰볼 때 역사는 그 시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밖에 없다.

역사 잊은 민족에 미래 없다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 3.1운동이 갖는 역사적 의의는 상당하다. 먼저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전 세계에 우리의 독립 의지를 널리 알렸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또한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태동하게 했고, 해방을 맞이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평가는 남다르다. 3.1운동이 없었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태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평가다. 따라서 3.1운동 100주년은 엄청난 의미를 갖는다. 이런 이유로 문재인 정부 역시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겠다는 방침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통령 직속으로 100주년 기념 사업회를 구성했고, 더불어민주당도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날 전국적으로 행사가 곳곳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11시 ‘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을 광화문에서 개최한다. 정부에 따르면 이날 기념식은 각계각층의 국민들이 참여해 새로운 100년을 위한 도약과 화합의 계기를 마련하는 국민축제와 화합의 장으로 꾸려진다.

아울러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소속 7대 종단 지도자들도 낮 12시부터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전국의 교회, 교당, 사찰, 성당, 향교 등 모든 종교시설에서는 일제히 타종 행사를 갖는다. 국가보훈처는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를 개최한다. 독립의 횃불 전국 릴레이는 이날부터 4월 11일까지 42일간 전국 22개 지역의 주자 봉송과 78곳의 차량 봉송 등 총 100곳에서 불을 밝힐 예정이다. 광복회는 민족대표 33인과 3.1운동 희생선열 추념식을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개최한다. 이날 행사에서는 독립선언서 낭독과 합창단 공연, 조총 및 묵념, 3.1절 노래 함께 부르기, 만세삼창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서대문형무소에서는 ‘끝나지 않는 100년의 외침’이라는 주제로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를 개최한다. 이밖에도 전국에서는 각 지자체별로 행사를 개최한다. 이런 다양한 행사는 보수와 개혁 구분 없이 이뤄지면서 3.1운동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있어 보혁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3.1운동이 전개됐던 1919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종반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민족의 운명은 그 민족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걸었다. 하지만 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오스트리아·오스만 투르크가 소유하고 있던 식민지에만 한정됐다. 윌슨 대통령은 이들 패전국 식민지를 영미권의 영향력 하에 두기 위해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운 것이다. 하지만 이 민족자결주의 원칙은 우리 민족에게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고, 우리 스스로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3.1운동을 전개했다. 이런 전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까지 연결된다. 따라서 임시정부 건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이 3.1운동이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 대한 후대 역사의 평가다. 후대 역사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을 ‘건국’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의 첨예한 대립이 이뤄지고 있다. 보혁 갈등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보수 진영은 김영삼 전 대통령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등 개혁 진영의 대통령이 연속적으로 탄생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새로운 보수 가치를 내세워야 한다는 의미로 뉴라이트 운동을 전개하게 됐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역사 전쟁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7월 3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8년 7월 3일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린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출범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뉴라이트의 뿌리는 주사파

사실 뉴라이트의 뿌리는 주체사상파에 있다. 과거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신봉했던 주사파들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념적 신념이 무너지게 됐다. 이들은 운동권 해산과 더불어 정치권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들을 주류 정치권에 편입시키기를 거부했다. 이에 이념적 전향을 하면서 뉴라이트를 태동시키게 된다. 이들은 2000년대 이후 급속도로 세를 불리면서 한나라당과 결탁하게 됐고, 기존의 한나라당 이념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뉴라이트’로 불리게 됐다. 이들의 특징은 ‘신자유주의 신봉’, ‘식민지근대화론’, ‘이승만 전 대통령의 극단적 찬양’이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극단적인 찬양은 건국절 논란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주사파에서 넘어온 뉴라이트 인사들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접목시켜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의 아버지로 포장했다. 그러면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로 인해 건국절 논란이 불거지게 됐다. 건국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건립된 1919년이 아니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만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인 1948년이라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건국절 논란은 2000년대 초반부터 점차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뉴라이트 인사들은 정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에 건국절 논란은 점차 사회적 이슈화가 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2008년 뉴라이트의 자칭 ‘대안교과서’가 출판되면서 보수 언론에서는 건국절 논란을 본격화시켰다. 2013년 한국현대사학회에서 집필한 교과서가 등장하면서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이 점차 불거졌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뉴라이트 역사관은 국정교과서라는 이름으로 논란이 극에 달했다.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등으로 인해 탄핵되면서 건국절 논란은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건국절 논란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건국절 논란의 이론적 바탕은 국가의 3요소인 주권, 영토, 국민이다. 뉴라이트 인사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주권, 영토, 국민 모두 없었기 때문에 건국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임시정부는 임시정부일 뿐이지, 건국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유엔의 관리하에 1948년 5.10 총선거를 치르고 제헌헌법을 만들었으며, 그해 8월 15일 정부 수립이 건국이라고 규정했다. 주권, 영토, 국민이라는 국가 3요소를 갖췄다는 주장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추진한 정부 수립이 건국이기 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것이 이들의 논리다.

이들이 말하는 국가의 3요소는 사실 1933년 몬테비데오 협약에서 만들어진 국제법 규정이다.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독립국가라고 주장하는 나라가 다수 발생하면서 국제사회에서 과연 어떤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할 것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몬테비데오 협약을 통해 ‘주권, 영토. 국민’을 가진 나라를 독립국으로 인정했다. 따라서 현재 국제법상으로 통용되는 국가의 3요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 이후에 탄생한 논리이며, 당시 열강들에 의해 만들어진 논리에 불과하고, 이에 따라 국가의 3요소를 임시정부에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이 진보 진영의 논리다.

또한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규정한다면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 모두 부정하게 되는 것이며, 일제강점기가 불법적으로 한반도를 점령한 것이 아니게 된 셈이다. 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건국의 해로 규정한다면 일제강점기 때 독립운동은 그 정당성을 갖게 되는 것은 물론, 역사적 의의를 갖게 된다. 이런 이유로 진보 진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을 건국으로 바라보고 있다. 무엇보다 오늘날 대통령 중심제의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 수 있었던 밑바탕은 임시정부 건립에 있다. 당시 입헌군주제로 갈 수도 있었지만 임시정부는 대통령 중심제의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하기로 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라고 이름 지었다. 만약 입헌군주제로 갔다면 ‘대한제국 임시정부’가 됐을 것이다. 그런 점을 비춰본다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이 건국이라는 것이 진보 진영의 주장이다.

‘2018 재외동포 중고생, 대학생 모국연수’에 참가한 세계 각국 700여명 재외동포 차세대들이 지난 2018년 7월 29일 서울 종로 인사동 거리에서 3.1 만세 평화운동을 재연하는 평화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뉴시스
‘2018 재외동포 중고생, 대학생 모국연수’에 참가한 세계 각국 700여명 재외동포 차세대들이 지난 2018년 7월 29일 서울 종로 인사동 거리에서 3.1 만세 평화운동을 재연하는 평화 퍼레이드를 진행했다. ⓒ뉴시스

역사 전쟁은 현재진행형

이 같은 역사 전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행사를 준비하는 데 이어 임시정부 건립일인 4월 11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임시정부 건립일을 건국절로 만들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에 보혁 간 역사전쟁은 점차 최고조로 달하는 분위기다.

보수 진영은 문재인 정부가 건국절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차원에서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을 성대하게 치르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 자유한국당이 뉴라이트에 뿌리가 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임시정부 건립일을 건국으로 본다면 자유한국당과도 대비되는 대목이 된다. 이런 역사전쟁은 앞으로도 보혁 갈등, 나아가 정치 지형의 변화와도 연결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려고 하는 이유도 역사전쟁에서 패배하게 되면 보수 진영은 사라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이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자유한국당도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일이 가까워지면서 건국절 논란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또 자유한국당이 우려하는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 기념식을 남북이 공동으로 치를 수 있다는 점이다. 당초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남북이 공동으로 치를 것으로 예상했지만,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사실상 무산됐다. 하지만 2차 북미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남북 경협의 물꼬가 트여진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현실화된다. 이에 일각에서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일 기점으로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다시 말하면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나란히 임시정부 건립 기념식에 참석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이 두 사람이 기념식에 참여한다면 건국절 논란은 또 다른 기점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경계할 수밖에 없다. 단, 북한이 임시정부를 정부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임시정부 기념식에 참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편에서는 정치권의 건국절 논란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건국절을 규정하는 것이 정치세력에 의해 좌우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역사학자들이 건국절 논란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건국의 시점을 어디로 볼 것이냐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역사학자들이 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처럼 정치권에서 건국절 논란을 계속 일으키게 된다면 보혁 갈등은 증폭되는 것은 물론, 국론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역사학계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건립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한 역사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정교과서와 같이 국가가 주도하는 역사관 정립은 이제 더 이상 나오지 말아야 한다는 경고도 있다. 정치권에서 역사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면 결국 피해를 보는 쪽은 국민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정교과서로 인해 피해를 본 것은 학생들이었다는 점에서 역사 전쟁은 역사학계에 맡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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