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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그들이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떠오르는 사바나의 둥근 해를 배경으로 주술사 라피키가 등장해 ‘Circle Of Life’를 부르기 시작한다. 곧이어 기다란 목과 쭉 뻗은 다리를 자랑하는 기린 두 마리가 유유히 무대 위를 걷자 온갖 동물들이 뛰어나와 축제를 벌인다. 이토록 평화롭고 생명력이 넘치는 곳에서 과연 어떤 이야기가 전개될까.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아프리카 초원을 향해 조금 낯설지만 설레는 걸음을 옮겨 본다.

브로드웨이 초연 20주년을 기념해 최초로 기획된 뮤지컬 <라이온 킹> 인터내셔널 투어가 작년 말 대구 공연을 시작으로 현재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다. 워낙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작품인 데다 폭넓은 연령층을 아우를 수 있어 흥행은 이미 예상됐던 바였다. 내한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많은 뮤지컬 팬들의 예매 대기 행렬이 이어진 가운데, 마지막 목적지인 부산에서도 이에 못지않게 뜨거운 돌풍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무비컬(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을 뜻하는 신조어) 중 하나인 뮤지컬 <라이온 킹>은 원작인 디즈니 최초 창작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의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라간다. 2D로 그려졌던 만화 속 세계가 과연 현실에서는 어떻게 재구성될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말 그대로 ‘창조적 상상의 구체적 발현’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화려한 색채를 더해 실감나게 표현해냈다.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브로드웨이를 서울로 가지고 왔다’고 말한 상주 연출가 오마르 로드리게즈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 확실하게 증명된 순간이었다.

무대라는 한정된 공간을 극복한 배우들의 동물 연기와 동선 활용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정도다. 커다란 마스크를 쓰고 퍼펫을 움직이며 연기하는데도 그 몸짓이 워낙 정교하고 섬세해서, 마치 배우를 곧 동물 그 자체로 보이게 하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공연에서 착용하는 마스크는 연기에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항공기 몸체의 소재 중 하나인 탄소섬유 소재로 만들어져, 그 크기나 화려함에 비해 매우 가볍다고 한다. 실제로 머리 위에 올려진 무파사 가면의 무게가 사과 한 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배우들의 가창력 역시 잘 만들어진 뮤지컬에 힘을 더한다. 아직 조금 더 다듬어져야 할 아역들의 노래는, 성장한 주연들이 그에 대한 아쉬움을 모두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극의 갈등 요소를 제공하는 스카 역과 하이에나 삼총사의 활약도 대단하다. 발성의 힘과 가사의 전달력 모두를 놓치지 않으면서 노래에 유쾌함과 웅장함까지 담아낸 배우들의 역량은 단숨에 우리를 압도한다.

이렇게 몰입해서 공연을 보고 있다 보면 극장 곳곳에서 배우들이 나타나 연기를 하는 부분이 있는데, 언제 어디에서 등장할지 예측할 수 없어 더 재미있다. 그리고 영어로 진행되는 대사 도중 우리나라 관객들을 위한 웃음 포인트도 간간이 숨어있어 이를 하나하나 찾아보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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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의 핵심인 넘버들 역시 반갑다. 원작을 보지 않았더라도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Hakuna Matata’나 ‘The Lion Sleeps Tonight’은 잠시나마 무거워졌던 극의 분위기를 밝혀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무파사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프라이드 랜드를 떠났던 심바가 어린 시절 친구였던 날라를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장면에서 부르는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은 언제 들어도 감미롭다. 잔잔한 선율을 타고 시작된 두 배우의 화음이 뒤섞여 커다란 극장 안을 풋풋한 사랑의 감정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는 그들이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세상을 반드시 되찾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미리 엿보게 된다. 

하지만 이토록 알찬 공연에도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 다름 아닌 관람 매너다. 작품의 특성상 관객 평균 연령대가 다른 공연에 비해 매우 낮을 것이라 예상되었던 만큼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관람했는데도, 내용 설명을 위해 자녀에게 계속 귓속말을 한다거나 공연 도중 가족들끼리 자리를 바꾸는 등의 모습은 다른 관객들의 집중을 크게 저해할 만한 요소였다. 물론 일부 극소수의 관객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지만, 보다 성숙한 관람 매너는 앞으로 남겨진 숙제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인상적인 장면들이 참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위험에 처했던 어린 심바에게 애정 어린 타이름을 하면서 자신의 마스크를 벗어 내려놓던 무파사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구든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동물의 왕이기 전에 아버지였던 그 역시 수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다시 돌아온 프라이드 록. 이제는 심바가 그의 뒤를 잇는다. 그리운 무파사를 닮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바라보던 심바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평범한 매일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무언가를 찾고 있는 당신에게 도착한 반가운 초대장. 지금, 아주 가까운 곳에 아프리카가 있다. 기회는 자주 오지 않는다. 초대장을 펼치는 순간, 끊임없이 생동하는 자연의 힘과 황금빛으로 물든 세상이 곧바로 당신의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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