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택시운전사의 눈물] 욕설·폭행·성추행 등에 무방비 노출…예방책은 없어
[여성 택시운전사의 눈물] 욕설·폭행·성추행 등에 무방비 노출…예방책은 없어
  • 전소영 기자
  • 승인 2019.02.27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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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성 택시운전사 점차 늘어나
그럼에도 전체 택시운전사 1% 불과
욕설·폭행 등 각종 범죄 표적 우려 커
범죄 예방은 스스로 조심하는 방법뿐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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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한국에서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 중 하나인 ‘택시’.

과거 택시는 남성 중심의 직업군 중 하나였다. 그러나 점차 운전하는 여성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여성 택시운전사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취업할 곳이 마땅치 않고, 주로 여성들이 많이 찾는 식당 일이나 청소보다는 운전을 배워 택시운전사가 되길 희망하는 중년 여성도 늘어나는 추세다.

택시에서 벌어지는 각종 여성 대상 범죄가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며 남성 택시운전사보다는 여성 택시운전사를 선호하는 여성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더 이상 여성 택시운전사는 낯선 존재가 아닌, 우리 사회가 원하고 꼭 필요로 하는 존재다.

그러나 여전히 여성 택시운전사의 공급은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전체 택시기사의 약 1% 수준. 여성이라는 이유로 욕설이나 폭행, 성추행. 성폭행 등 각종 범죄에 노출되기 쉽다 보니 택시업계에 발 내딛기가 쉽지 않다.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여성 택시운전사들은 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하며 남모를 눈물을 훔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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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성 택시운전사 ‘이정옥씨’

한국 여성 택시운전사의 역사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내 최초 여성 택시운전사로 알려진 이정옥씨는 1928년 동양자동차 교습소에서 처음 운전을 배웠다. 3개월에 걸친 교습 과정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한 이씨는 ‘동양 최초의 여성 운전사’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씨는 여성 택시운전사라는 타이틀에 호기심을 느낀 많은 승객들이 자신이 운전하는 택시를 타려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고, 이씨는 보통의 남성 택시운전사보다 많은 손님을 태웠다고 한다.

꼬박 10년 가까이 운전대를 잡은 이씨는 단 한건의 사고도 내지 않아 총독의 표창까지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최초의 여성 택시운전사로서의 이씨의 삶은 화려할 것 같았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았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여성 택시운전사를 불러내라는 탓에 취객을 태우는 게 부지기수였고 추근거리는 남자 승객도 많았다.

모두 이씨가 여성이기 때문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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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설은 물론 성추행도 ‘비일비재’

서울도시교통본부 택시물류과에 따르면 2018년 12월 말 기준 서울시 개인·법인 택시운전자 수는 총 8만476명이다. 이중 여성 택시운전자 수는 754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택시운전사 수의 약 0.9%에 해당되는 수치다.

서울시의 여성 택시운전자 수는 대체로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그러나 그 수가 10명 내외이기 때문에 전체의 약 1% 비율에는 크게 변화가 없다.

그 원인으로는 여성 택시운전사가 상대적으로 욕설이나 폭행, 성폭력 등 각종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김정이(52)씨는 올해로 18년 차의 베테랑 택시운전사다. 한 소규모 택시업체에서 근무하는 김씨는 단둘뿐인 여성 택시운전사 중 한 명이다. 과거 그가 대규모 택시업체에서 일할 당시에도 여성 택시운전사는 3~4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김씨가 처음 택시운전을 시작한 것은 생계 때문이었다. 이혼 후 홀로 돈을 벌고 자식 둘도 길러야 하는 처지에 놓인 김씨는 비교적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일을 해야만 했다. 고민 끝에 당시 여성치곤 비교적 면허를 빨리 땄던 김씨는 시간 활용이 용이한 택시운전사의 길을 걷게 됐다.

김씨가 처음 일에 뛰어들었을 때는 지금보다도 훨씬 여성 택시운전사가 드물었다. 손님들에게는 물론 함께 일하는 남성 동료들에게도 김씨는 택시운전사가 아닌 여자였다.

“2000년대 초반부터 택시 일을 시작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같이 일하던 남성 택시운전사들이 성추행 발언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남편 없이 혼자 산다는 말을 지금까지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심지어 같이 어울려 밥 한 끼도 먹지 않았어요. 철저히 일만 하고 나머지는 제 시간으로 사용했던 거 같아요.

손님들 중에는 ‘술 한잔하자’, ‘밥 한 끼 먹자’고 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처음엔 못 들은 척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되풀이해서 물으면 그제야 ‘죄송한데 술 못 마셔요’, ‘집에 있는 밥도 못 먹고 있어요’라고 피했죠. 처음에는 운전대를 잡는 게 너무 두려웠죠, 그래도 애들이랑 먹고살려니까 어쩔 수 없었죠 뭐.”

남양주 여성 택시운전사 폭행 피의자 김모(40)씨 ⓒ뉴시스
남양주 여성 택시운전사 폭행 피의자 김모(40)씨 ⓒ뉴시스

손님의 욕설은 놀랍지도 않을 만큼 많이 들었다. 성추행에 거침없는 손님도 더러 있었다.

“쌍욕이라고 하죠. 손님들한테 입에 담기 험한 욕은 쉽게 들었어요. 아무래도 만취 상태의 손님이 많은 저녁 시간대에 그런 일이 많죠. 하루는 ‘다른 여자들은 예뻐서 일찍 들어갔는데 너는 안 예뻐서 지금까지도 사납금을 채우지 못해서 일을 하고 있냐’는 모욕적인 말도 들었죠. 그것도 젊은 친구한테요. 결국 경찰서까지 갔어요. 사실 정말 큰일이 아니면 되도록 경찰서에 가지 않으려 하는 편이거든요. 아무래도 일에 지장도 있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냥 참는 편이에요.

‘입금해줄 테니까 술 마시자’, ‘놀러 가자’는 분들은 종종 있어요. 또 예전에는 택시가 다 스틱(수동)이었거든요. 그럼 변속 때문에 기어에 계속 손을 얹고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은근히 그 위에 손을 올려요. 그러지 말라고 하면 죄송하다고 하고 또 올리고. 언젠가는 운전하고 있는데 슬며시 어깨에 머리를 기대는 경우도 있었죠. 다른 여성 동료들 중에는 다리 위를 만지거나 노골적으로 성적인 얘기를 꺼낸 경우도 있다더라고요.”

김씨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맞닥뜨릴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해 항상 스스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 편에 속해요. 171cm 정도 되거든요. 그것만으로도 다른 키가 작고 왜소한 여성 택시운전기사들보다는 덜 위험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손님이 타면 인사하곤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이상 제가 말을 건네진 않아요. 손님 중에는 화난 일 있냐고 물어보시는 경우도 있어요. 강하게 보이기 위해 스스로 노력했던 거 같아요.”

김씨의 이 같은 고충은 다수의 여성 택시운전사들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실제 지난 10일 경기도 남양주시에서는 만취한 40대 남성 승객이 여성 택시운전사를 무분별하게 폭행하고 달아나는 사건이 발생했다. 새벽 시간 택시가 좀처럼 잘 잡히지 않자 승객은 택시운전사에게 짜증을 냈고, 다른 차를 타라는 택시운전사의 말에 화가 난 승객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5월에는 술에 취해 조수석에 탑승한 승객이 여성 택시운전사의 신체부위를 만지는 등 성추행한 사건도 있었다.

여성 택시운전사의 역사 시작된 지 100년이 흐른 지금,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욕설이나 각종 범죄 위험 노출돼야 하는 한국 여성 택시운전사들의 고충은 아직도 현재진행 중이다.

여성전용 택시 ‘웨이고 레이디’ ⓒ뉴시스
여성전용 택시 ‘웨이고 레이디’ ⓒ뉴시스

사후 처리라도 국가가 적극 나서주길

서울 개인·법인 택시를 관할하는 서울도시교통본부의 경우 여성 택시운전사들의 고충을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고민하는 단계라고 했다.

서울도시교통본부 택시물류과 관계자는 “여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전체 택시운수종사자의 처우개선에 주안점을 두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며 “이때 여성 택시운전사들은 상대적으로 약자이다 보니 안전에 대한 우려가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거 안전 격벽 등을 설치하기도 했지만 원치 않는 택시운전사분들도 있었다”며 “여성이나 고령 택시운전사 등 약자에 초점을 맞춰 안전 등 고충에 대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검토 중이긴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그려진 바는 없다”고 덧붙였다.

김정이씨는 여성 택시운전사들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게 현재로서는 범죄 예방을 위한 최선책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불가피하게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이후 국가나 사회차원에서 정당한 처벌이 이뤄지도록 나설 필요가 있다고 했다.

“범죄 예방은 단순해요. 손님하고 길게 대화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도 요즘에는 택시 안에 촬영하고 녹음할 수 있도록 블랙박스가 설치돼 있잖아요. 또 매스컴에서 여성 택시운전사에 대한 각종 범죄에 대해 많이 조명하고 있고 여성들 스스로 목소리도 커졌고요. 그래서인지 이제 손님들도 조심스러워 한다는 게 느껴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 택시운전사를 상대로 한 범죄가 일어난다면 그때는 국가가 나서서 적절한 처벌 등의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