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투데이신문 김소희 기자】 자기 전에 구매했는데 일어나보니 문 앞에 상자가 놓여있다. 요즘 유통업계가 도입하고 있는 새벽배송이다. 장을 보러가지 않아도 손가락 몇 번 움직이면 원하는 제품을 빠른 시간 안에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에 많은 이들이 이용한다.

소비자들의 더 빠른 배송 서비스 요구에 기업들은 새벽‧3시간‧30분 배송 서비스를 내놨다. 소비자는 빠르게 제품을 받아볼 수 있게 됐고 이는 기업의 이익으로 이어졌다. 그럼 기업의 배송을 책임지는 배달종사자의 상황은 어떨까.

대부분의 배달종사자는 1건당으로 계산되는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은 제품을 전달하려 도로위에 질주를 감행한다. 이런 상황에서 배송시간 제한까지 생기다보니 더 큰 위험에 노출됐다.

당일‧새벽배송을 운영하고 있는 이마트, 롯데마트, 마켓컬리, 현대백화점 등은 배송업무를 외주업체에 맡기고 있다. 다시말해 본사는 외주업체에 소속된 배달종사자의 사고에 대해 법적으로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 유일하게 배달종사자를 직고용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던 쿠팡은 일반인을 배송에 참여시키는 플랫폼을 도입하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고 있어 뒷말이 나오고 있다. 

더욱이 롯데마트는 과거 유명 피자브랜드에서 도입해 인명사고를 낸 30분 배송 서비스의 위험성을 알고도 도입한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는 본지 보도를 통해 지적하기도 했다.

앞서 기자는 두 번에 거쳐 유통업계가 운영하고 있는 빠른 배송 서비스 현황과 외주업체에 속한 배달종사자의 현실에 대해 보도했다. 보도 이후 소비자들의 인식에 변화가 감지됐다. 그동안 빠른 배송 서비스에 긍정적인 평가를 해왔던 독자들은 ‘저러다가 사고 나면 회사는 사과하고 없애면 끝이지만 이미 다치고 죽은 사람은 어떡하나’, ‘시대를 역행한다’, ‘배달종사자를 다 죽이겠다는 건가’ 등의 반응을 보이며 배달종사자들의 현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정부도 빠른 배송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제도적 개선 움직임도 보였다. 고용노동부는 30분 내 배달하는 식의 소비자들의 무리한 요구를 지적하면서 산업안전보건법 전부개정법률 시행령에 시간을 구체화해서 명시할지, 배달 재촉을 막는 문구를 넣을지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배달종사자의 안전에 대한 인식과 제도 개선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 들어섰다. 배송 서비스가 시장 성장에 따라 다양화 되면서 제도적 허점이 드러났다. 특히 직고용이 아닌 대행업체 등을 통한 위탁계약 형식의 계약 구조가 만연해지면서 배달종사자가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이게 됐다.

위탁계약 방식의 배달종사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속하지 않아 노동자로서 산업안전보건법 테두리 안에서 보호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 본회를 통과하면서 상황은 조금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020년 1월 16일부터 시행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는 근로자 범주에 배달종사자들을 포함시켰다. 이에 앞으로 사업주는 배달종사자들의 안전 예방을 위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를 위반할 경우 현행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에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28년만에 개정된 법은 배달종사자들을 근로자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직 부족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개정된 법에 따라 업주의 벌금형의 상한선이 높아졌지만, 하한선을 따로 정해두지 않아 실제로 강한 처벌로 이어질지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도 적지 않다. 또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 의미 갖고 있지만 사고를 넘어 과로사, 스트레스 등 질병 예방에 대한 내용은 다뤄지지 않는 점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그동안 배달기사의 외주화 등 고용 구조적 문제와 대해서는 별다른 해법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빠른 배송 서비스 도입으로 소비자의 편의성 높아졌다. 하지만 그 이면에 가려진 배달종사자들의 상황은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 정부에서는 법 개정 등 나름의 개선 의지를 보여주고 있지만 배송 기사의 처우, 사업자 처벌, 외주화 등 근본적인 문제를 해소할 해법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이는 ‘빠른 배송’ 매력 이면에 가려진 배달종사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소비자들이 관심이 가져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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