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저자 임상철
선택은 각자의 몫…생각에 따라 행복한 삶 결정돼
빅판으로서 신뢰감 쌓기 위해 엽서에 그림 그려
과거와 삶의 태도 달라져…예술가로서 욕심 생겨
독자들에게 하는 일 덤덤하게 살라고 말하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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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철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이은지 인턴기자】 “사람들은 길거나 짧은 인생의 여정에서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면서 살아갑니다. 저도 저만의 이야기를 갖고 있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임상철(52)씨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에서 홈리스 자활을 돕는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는 ‘빅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씨에게 빅이슈를 구매하면 특별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바로 그가 직접 그린 그림이 담긴 엽서다.

임씨는 이 엽서에 본인의 삶을 고스란히 담았다. 그는 어린 시절 사고로 한쪽 눈을 실명해 장애를 얻고, 외환 위기를 겪으며 길거리로 내몰리는 아픈 과거를 겪었으나 끝까지 삶의 의지를 놓지 않았다.  

6년 전부터 빅판으로 활동하며 홈리스 생활을 청산한 그는 현재 한 임대 주택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동안 독자들에게 썼던 52통의 편지를 모아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제목의 아주 특별한 책을 지난 1월 출간했다. 지금은 예술가라는 마지막 꿈을 향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홈리스, 장애인, 빅이슈 판매원, 작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그를 홍대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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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철 작가 ⓒ투데이신문

작가, 임상철

많은 이들은 자신의 삶을 불행한 듯 여기며 지낸다. 현재 나는 내 삶을 별 관심 없이 바라보지만 불행이나 행복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나는 지쳐가고 있다. 나는 단지 하나의 문제, 먹고 자는 것만 생각하며 살고 있는, 이런 생활의 끝이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남들이 ‘노숙자‘고 부르는 사람이다. 이른 나이인 삼십대 초반부터 이 길을 가고 있어 운명처럼 느껴지지만 그런 운명이라고 해도 크게 불만은 없고(마음이야 아프지만) 운명은 항상 바뀔 수 있다고 믿고 있기도 하다.  -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122쪽

Q.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라는 책의 제목이 인상 깊습니다.

삶이 불우하게 흘러갈 수도 있고 혹은 희망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라고 생각해서 이 같은 제목을 짓게 됐어요. 두 가지 삶의 길이 있는데 선택하는 건 각자 다르니 스스로가 선택을 하라는 뜻이죠. 저도 마찬가지고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 선택에 따라, 생각에 따라 달라진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Q. 책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6년 전, 3000원이던 빅이슈를 판매할 때 사람들은 빅이슈라는 잡지를 잘 몰랐습니다. 무료로 나눠 주는 잡지라고 생각했는지 그냥 갖고 가려는 사람들도 있었죠. 또 ‘홈리스들이 파는 잡지’라는 것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제가 왜 홈리스가 됐는지, 내가 왜 빅이슈를 팔게 됐는지, 나에 대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또 잡지를 사는 분들도 궁금할 것도 같았고요. 그래서 빅이슈에 직접 쓴 엽서를 끼워 넣어 판매했습니다. 처음엔 간단하게 제 이름 정도랑 제가 몇 년생이고, 판매원이 되기 전엔 어떤 삶이었는지 같은 내용으로 몇 줄 정도만 적었습니다. 그러다 제가 판매하는 빅이슈를 자주 구매하시던 출판사 직원분의 제안으로 책을 출판하게 됐어요. 

Q. 엽서를 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처음엔 빅이슈를 안 보고 버린 사람들이 많았어요. 잡지를 보고 싶어서 사는 게 아닌 적선 개념으로 사고 버리는 사람들도 많았고요. 또 잡지 뒤에 넣은 엽서를 ‘불쌍하니까 도와주세요’ 같은 글인 줄 지레 짐작하고 안보는 사람도 많았어요.

제일 처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었어요. 건축일 때문에 한국으로 출장 온 호주 사람이었는데 옆에 있던 통역가가 엽서를 통역해줬는지 계속 엽서를 보더라고요. 그 사람은 잡지보다 엽서에 관심이 있어서 빅이슈를 계속 샀는데 호주로 떠나기 전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 사람이 ‘나는 건축가인데 같은 예술가끼리 만나서 반가워요’라고 했어요. 또 ‘당신에 대해 알려줘서 고맙다’고 제게 인사를 했죠. 그때 엽서를 계속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엽서를 보려고 잡지를 사려는 사람도 많아요. 그리고 엽서를 모아 책으로 내라는 사람도 많아서 결론적으로 책이 나왔죠.

ⓒ본인 제공
임상철 작가가 직접 그린 그림 ⓒ본인 제공

Q. 엽서 속 삽화를 보니 그림솜씨가 굉장히 훌륭합니다.

그림을 따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나이브 아티스트(naive artist :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일부 작가들이 그린 작품 경향)’ 또는 ‘소박파(素朴派)’라고 해요. 혼자 공부해서 그림을 배웠는데 저만의 그림체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좋은 것 같아요.

Q. 지금도 엽서를 끼워서 판매하는지요.

네. 지금은 2019년을 맞아 신년인사 겸 작년에 미술협회 회원으로 가입한 일, 내년 안으로 (개인)전시회를 하고 갤러리서울(gallerySEOUL: 전시 기획, 전시 소개, 미술계 인터뷰, 아트 투어 기획 등을 진행하는 미술전문웹진)하고 전시회를 하겠다는 등의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또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도요.

Q. 언제까지 엽서를 쓰고 싶나요.

일단은 책이 나왔으니까 책 홍보를 위해 계속 써야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엽서를 억지로 쓸 필요는 없다고 느껴서 앞으로는 그림을 하나씩 넣으면서 간단하게 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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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철 작가 ⓒ투데이신문

홈리스, 임상철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새벽 다섯 시 정도다. 그러나 매일 살아나지는 않으며 정신이 온전해지는 날만 일어난다. 오늘을 꼭 살아나야만 하기에 이불이자 하룻밤 집인 종이박스를 거두어버리고선 인력 사무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초봄이지만 바람이 많이 불어 한겨울 같은 추위가 옷 안으로 속속 파고들면서 빠져나갈 생각을 않는다. 지난 사흘 정도를 제대로 자지도 먹지도 못해 오늘 나의 몸 상태는 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몇 푼의 돈이라도 있다면 당장 24시 사우나로 달려가서 모든 걸 잊고 죽은 듯이 드러누워 있고 싶다. 하지만 현실은 담배 몇 개비와 버스비로 써야 하는 천 원짜리 지폐 몇 장이 전부인지라 인력 사무소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165쪽

Q. 보육원에서 잠시 살았었는데 그때의 삶은 어땠는지요.

그때는 다른 선택이 없었으니 거기에 있었던 거지, 원해서 간 곳이 아니었습니다. 제 의지보단 타인의 선택에 의해, 가난해서 간 거였죠. 추억으로 남는 공간도 아니고 추억으로 남아야 될 이유도 없는 것 같아요. 행복한 추억은 아니니까요.

Q. 홈리스가 되기 전엔 무슨 일을 했었나요.

바로 전엔 노동일을 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전 미술회사에 있었는데 외환위기가 지난 후엔 일자리가 없었어요. 그러다 호텔 야간 주방청소도 하고 노동일도 했죠. 사업이 망하거나 그런 건 아니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외환위기가 지나고 자연스럽게 홈리스가 됐어요.

Q. 책에서 가족들에 대한 잔잔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지금은 가족들과 교류가 없나요.

가족들이랑은 지금도 못 만나고 있어요. 여동생이랑은 외환위기 전에 마지막으로 봤어요. 지금은 제가 빅이슈 판매원이라고 하니까 여동생은 좀 멀리하려는 게 느껴지고 아예 연락이 안돼요. 굳이 멀리한다는데 부담스럽게 가까이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연락을 안 하고 있습니다. 형이랑은 외환위기 전부터 연락이 안됐고요.

Q. 과거 이야기를 들어보니 매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삶을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극복했는지.

저는 ‘포기’란 단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왜냐면 그런 말 자체를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노숙 생활했던 것도 하나의 과정이지 삶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한 적이 없어요. 흘러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고 힘들어서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고 포기할 일도 없었어요. 어차피 저는 시각예술가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여유가 되면 다시 작품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Q. 힘들었던 과거의 원인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가난해서 그런 것 같아요. 가난하니까 집안도 틀어지고 생존이 힘들었죠. 우선 먹고 살아야 꿈을 갖잖아요. 경제적인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아요.

Q. 지금의 삶에 대해서는 만족하나요. 

불우하거나 행복하거나 이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나한테는 왜 이렇게 고통을 부여하지’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없고 덤덤하게 생각했어요. 다만 돈을 못 벌고 작업을 못하니까 내 작품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게 안타깝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데 미술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니까 그게 많이 안타까워요.

Q. 홈리스일 적 삶의 태도와 지금의 삶의 태도 중 변화한 모습이 있을까요.

지금은 일단 임대주택이 있으니까 여유가 있죠. 홈리스일땐 완전히 생존만 위해서 사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으니까 그게 많이 달라졌어요. 쉴 수 있는 게 좋아요. 심리적으로도 안정되고 미술적으로도 더 급해지고 욕심도 많이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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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철 작가 ⓒ투데이신문

빅판, 임상철

나는 <빅이슈> 잡지를 판매하는 사람이며 이 일을 한 지는 한 달도 안 된 초보자다. 이 잡지는 일반 잡지가 아니다. 자신이 홈리스란 사실을 인정하면서 팔아야 하는, 부끄럽게 느껴지는 잡지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하게 된 것은 낯이 두꺼워서도, 자존심이 없어 창피를 몰라서도 아니다. 홈리스 삶이 점점 더 힘겨워지면서 희망이란 단어를 찾고 싶기 때문이다. -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132쪽

Q. 홈리스 생활을 하다가 갑자기 빅이슈 판매원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겨울에 고시원에 있었는데 일거리를 찾다가 사회적 기업 빅이슈를 알게 됐어요. 그래서 연락해 찾아가 일하게 됐고요. 수입구조는 몰랐는데 직접 가서 들어보니까 잡지 판매금의 절반을 수익으로 가져갈 수 있다더라고요. 또 외환위기 때 생활비 대출을 받다가 신용불량이 됐었는데 사회적 기업이면 신용불량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죠. 빅이슈 판매원이 되고 나선 신용불량을 벗어났어요.

Q. 처음 빅이슈를 판매하던 날이 기억나는지요.

네. 많이 창피했어요. 빅이슈 잡지를 팔면 내가 홈리스라는 걸 밝히는 거잖아요. 솔직히 저는 그동안 홈리스라고 생각을 안 했었거든요. 단지 일거리가 없고 가난한 자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빅이슈를 팔면서도 ‘내가 홈리스인가’하는 의문도 많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이 볼 땐 홈리스인데 스스로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죠. 그래서 많이 창피했는데 나중에 판매를 하면서 (내가 홈리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어요. 처음엔 사람들이 동정적으로 ‘힘내십시오’라고 말하는 게 거부감도 있고 싫기도 했는데 지금은 면역이 돼서 ‘힘내십시오’라고 인사하시면 속으로 같이 인사를 하곤 합니다.

Q. 빅이슈를 판매하며 기억에 남는 구매자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갤러리서울이 기억납니다. 그 친구들이 빅이슈를 사다가 제가 그림을 그리는 걸 인상 깊게 봤어요. 잡지를 깔아놓고 그림 그리는 걸 보고 강렬하게, 저 사람이 꼭 그림을 그려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고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저에게 호기심을 가졌고 연결이 돼서 전시회를 하게 됐어요. 구매자와의 인연으로 미술가로서 한 발 더 내딛은 거죠. 전시회는 공동전시였어요. 다른 작가님들과 그동안 그렸던 그림으로 전시회를 했습니다.

ⓒ본인 제공
임상철 작가 작품 ⓒ본인 제공

Q. 첫 전시회는 어땠나요.

첫 전시회는 가톨릭 청년회관 다리에서 했어요. 그 전시회는 한 수녀님이 제가 그림 그리는 걸 보시고 하게 됐었죠. 판매하던 곳 바로 옆에 회관이 있어서 간혹 구매도 하시다가 인연이 돼 전시회를 하게 된 거죠. 결국 다 빅이슈가 만들어준 인연이네요.

Q. 전시회까지 열었는데 소감이 어떠신지요. 

첫 전시회를 했을 때 기쁘거나 그런 건 없었어요. 보여주기식의 전시라는 느낌도 들었고 스스로는 심혈을 들인 전시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큰 감흥은 없었던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아주 만족스럽진 않은 전시회였던 거죠. 더 보여줄 게 많은데 아직 다 못 보여줬다고 생각해서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Q. 앞으로 전시 계획이 또 있는지요.

개인전시회를 하고 싶은데 앞으로 몇 년 동안은 안할 생각이에요. 지금 현재 작업할 환경이 안 돼서 작업할 환경이 만들어지면 하고 싶어요. 몇 년이 될지 몰라도 작업 환경만 되면 곧바로 개인전을 열고 싶어요. 책이 잘 팔리면 수입으로 작업장을 마련할 생각이에요. 책이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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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철 작가 ⓒ투데이신문

나, 임상철

나도 내 이야기를 했다. 내가 하고자 했던 일은 조형물 제작자이자 화가이며 조각가였지만 현실은 세월만 흘러 지금이라도 늦게나마 잡지 판매와 병행하며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력도 배경도 없고 어린 날 잃어버린 한쪽 눈으로 인해 작업 시 눈에 금세 피로감이 쌓이는 약점이 있어 내가 꿈꾸는 삶을 살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울 수도 있다 말했다. 한편으론 평범하지 않은 삶의 단점을 미술적인 장점으로 바꿔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나는 예술가도 작가도 아닌 작업자다. 점토 한 덩어리 속에서 무언가를 잡아내기 위해 덜어내고 붙이고 하며 손과 머리와 가슴으로 일하고 싶은 작업자다. 손튼 다니얼, 클레멘타인 헌터, 빌 트레일러, 바스키아, 존 돌란 같은 거리의 작업가로 살아가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 225쪽

Q.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요. 

사실 조각가였습니다. 중학교 때 학교에서 흉상을 만든 적이 있어요. ‘고선지 장군’ 흉상을 만들었는데 그걸 보신 선생님이 사실적으로 만들었다고 좋아하더라고요. 그때 ‘화가보다는 조각에 더 재능이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화가랑 조각가 두 가지를 다 꿈꿨는데 이왕이면 조각을 더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Q. 앞으로 어떤 수식어가 붙은 사람이고 싶나요.

작가라고 불리기보단 나이브 아티스트, (조각)작업가 임씨라고 불리고 싶어요. 예술가라는 말은 엄청 어려운 단어라서 감히 붙이지 못할 것 같아요.

Q. 세상의 모든 빅이슈 판매자들과 홈리스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각자 하는 일에 위안을 갖고 살라고 하고 싶어요. 솔직히 희망을 가지라는 이야기는 못해요. 희망을 갖는 건 로또 당첨되라는 거나 비슷해요. 삶에 대해 덤덤하게 살았으면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 제가 다른 사람들한테 뭐라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좀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럴만한 위치가 아니거든요. 또 사람들마다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남들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수 없기도 하고요.

Q.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을 읽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삶은, 희망 없는 삶으로도 흘러갈 수 있고 희망 있는 삶으로도 흘러갈 수 있습니다. 이는 본인들이 선택할 문제라는 걸 다시금 강조하고 싶어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면 희망차게 사는 거고요. 각자 자신의 인생들이 있잖아요. 오늘, 내일, 모레 정도의 삶이 두 가지 길에서 결정할 게 있으면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세요. 삶이 생각만으로도 평범하게만 흘러갈 수도 있고 희망적이게 흘러갈 수도 있거든요. 이미 제목에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담았어요. 그리고 이제 독자들이 한 작업가의 일기장 값어치에 대해 평론하면 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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