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3·1운동 100주년 맞아 여성독립운동가 관심 급증
남녀 모두 독립운동 이끈 대한민국 광복의 주역
여성독립운동가 저평가…서훈 기준 재정립돼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투데이신문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우리는 오늘 조선이 독립한 나라이며, 조선인이 이 나라의 주인임을 선언한다. - 3·1독립선언서 중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해다. 이에 발맞춰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백범기념관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3·1운동의 상징인 유관순 열사에 대해 1등급 훈장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한다고 밝혔다.

그간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3등급인 ‘독립장’이 추서된 유관순 열사의 서훈을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서훈 등급을 격상·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은 유관순 열사 대한민국장 추서 소식을 반기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유관순 열사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여성독립운동가 전체에 대한 서훈 방향이 재조명돼야 한다는 것이다.

본지는 3·1절 100주년을 앞둔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대통령 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위원인 심 소장을 만나 여성독립운동가 서훈과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조형물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심옥주 소장이 지난 2월 26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의 3·1운동 100주년 기념 조형물 앞에서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여성독립운동가, 보조적 역할에만 머물지 않아

Q.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에 대한 소개 부탁드린다.

처음 한국여성독립운동연구소 간판을 걸었던 것이 2009년 3월 1일이다. 당시에는 10년 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했다. 올해 3월 1일은 3·1운동 100주년임과 동시에 연구소 10주년을 맞이하는 뜻깊은 날이다.

Q. 3·1운동 100주년에 즈음해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재조명이 뒤늦게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감회를 말한다면.

역사는 단시일에 일궈진 게 아니다. 오랜 시간 축적돼 뼈대가 형성되고 살이 붙은 것이다. 여성독립운동도 그렇게 흘러왔고 이를 알리는 작업들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역사의 맥락을 이어가는 것은 당연하며, 특정한 단체나 기관의 소유물도 아니고 국민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단 현대사회에서는 저마다의 일들로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이 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만 더욱 집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진 못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직·간접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열렸으면 좋겠다.

Q.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국무회의에서 유관순 열사에게 국가유공자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서훈을 의결했다. 심 소장도 유관순 열사 서훈 격상을 주장해온 바 있는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유관순 열사 1등급 서훈은 환영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언론과 국가에 서운한 감이 있다. 지난 2월 15일 국회 토론회에서 나는 분명히 ‘유관순 열사를 통해 본 전체 여성독립운동가의 서훈 방향’에 대해 주제발표를 했었다. 유관순 열사뿐만이 아닌 저평가 된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재조명이 키포인트였다. 그런데 언론과 정부는 유관순 열사에 관심을 집중하면서 가장 중요한 다른 무명의 여성독립운동가들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유관순 열사가 갖는 상징성은 굉장히 강하다. 국가적 차원을 넘어 세계 여성사를 볼 때도 비폭력저항 운동을 했던 인물로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하지만 유관순 열사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수많은 유관순 열사 또래 여성들의 희생, 우리 어머니들의 희생에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그분들의 서훈도 같이 상향되거나 조정된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유관순 열사의 대한민국장 서훈으로 잊혀진 분들, 소리 없이 활동하셨던 분들을 하나하나 재조명하는 일들이 시작돼야 한다.

Q. 현재 서훈 기준과 그 한계는.

10개월, 1년, 3년, 8년 등 수형기간을 기준으로 서훈 등급을 나누고 있는데, 여성들의 경우 8년 이상 복역하신 분들이 거의 없다. 단기간 복역하고 풀려났다 다시 복역한 경우가 많았다. 단적인 예로 도산 안창호 선생의 조카이자 제3대 서울여자경찰서장을 지낸 안맥결 여사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일제의 고문을 견뎠음에도 복역기간 3개월이라는 기준에 충족되지 못해 13년간 서훈을 받지 못하다 지난해에 이르러서야 건국포장이 추서됐다. 안맥결 여사는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 그러면 복역기간을 합산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텐데 단회 복역기간만을 기준으로 삼다보니 자연스럽게 여성독립운동가들은 서훈심사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제도개선을 꾸준히 요구했었지만 3·1운동 100주년에 이르러서야 요건이 완화됐다. 한편으로는 다행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여성독립운동가를 조명하고 기리고 발굴하는 것은 대환영할 일이지만, 발굴 이후에 그분들의 공적을 어떻게 알려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고민을 해봐야 한다. ‘내 할머니의 이름을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가’, ‘내 할머니가 어떤 활동을 했는지 사람들이 알고 있는가’ 하는 정신적인 예우까지도 챙겨야 한다. 경제적 예우를 넘어 정신적 예우까지도 함께 해나가는 것이 우리나라의 정신적 기반, 토대를 다져나가는 길이다.

Q. 실제 독립운동에서 여성독립운동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임시정부 활동 뒷바라지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들도 많이 했다. 여성광복군의 경우 직접 투쟁 일선에 나선 사람들도 있었고, 선전활동, 정보수집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또 서훈을 받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보면 항일운동 전역에서 활동했다. 국내만 보더라도 3·1운동, 학생운동, 문화운동 등 전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일본, 미주, 만주, 러시아, 간도 일대 등 활동영역이 굉장히 컸다. 그들의 비율이 3%가 안 된다고 하더라도 그분들은 다른 사람들이 보든 안 보든 그 곳에서 움직였다.

조국의 말과 글도 못 쓰는 상황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찾아야 했다. 이는 여성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여성은 아마 더했을 것이다. 당시 시대상을 보면 여성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감을 찾기 위해서 그분들은 더 치열하게 움직이지 않았을까.

Q. 여성독립운동가들은 복역 중 어떤 고초를 당했나.

고문의 수위나 방식에서 여성과 남성에 차이가 있다. 여성들에게는 남성들은 겪지 않는 고문이 가해졌다. 바로 성고문이다. 성고문의 수위도 계속 높아져 후유증으로 출소 시 불임에 이른 여성독립운동가들도 많았다. 성고문으로 인한 신체적인 피해뿐만 아니라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평생 겪어야 했다.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지난 26일 대형 태극기가 설치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제100주년 3·1절 중앙기념식이 열리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인근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지난 26일 대형 태극기가 설치되고 있다. ⓒ투데이신문

여성독립운동가 발굴, 국가가 주도적으로 나서야

Q. 연구소를 설립하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있다. 연구소의 활동을 소개한다면.

연구·학술 활동 외에도 중고교생, 대학생을 엮어 ‘대한민국청년도전단’이라는 동아리를 꾸려 활동했다. 이를 통해 섬 지역에 소외된 청소년들을 위해 재능기부 교육을 하기도 하고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쌀 기부가 될 수 있도록 연결하는 활동을 한다. 또 청년들이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할 수 있도록 공모전에 참가하는 활동도 한다.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공모전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고 특허도 출원했다.

아울러 청년연구회를 조직해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이에 참여한 청년들이 직접 청소년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Q.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지.

한국 최초 여성 의병장 윤희순 의사에 대해 관심을 갖게 돼 그분에 대해 박사논문을 준비하면서 윤희순 평전을 먼저 냈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윤희순 연구집을 발간했다.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는 생소한 부분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쪽진 머리의 여성의병장’이라는 캐릭터가 현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신선한 충격이다. 그다음에 여성독립운동가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보니 윤희순 의사 연구만으로는 안 되겠더라. 그래서 도산 안창호의 정치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하나 더 취득했다. 성별을 떠나서 확고한 의지를 갖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이 어떤 국가관, 사회관, 여성관, 의식을 갖고 움직였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결국 독립운동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 품었던 독립의식, 애국정신이 저변에 깔려있었기에 그것까지 생각을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치사상, 정치철학을 연구하면서 여성의 활동을 재조명하는데 보폭을 넓힐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Q. 최근 <나는 여성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를 출간하면서 여성독립운동가를 소개하는 일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이 책은 이전에 발간한 <여성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다>의 청소년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청소년들에게 여성독립운동가를 소개할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재조명했다. 독립운동 당시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독립운동의 중심에서 대한민국의 광복을 이끈 주역들임을 강조했다. 3·1운동 전반에 걸친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전국의 ‘여학생 비밀 결사대’를 소개했다. 또 교육 현장에서 항일운동을 이어간 여성 교사들과 국내외에서 활동한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Q. 독립운동에 대한 청소년들의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운동의 의미를 잘 알고 있다고 본다. SNS가 발달해 독립운동 관련 펀딩이나 독립운동에 관한 내용들을 알리려고 애쓰는 모습들도 보인다. 사실 청소년들의 인식 부족에 대해서는 어른들이 반성해야 한다. 교육적인 부분에서도 많이 부족하고, 경쟁구도 속에서 입시, 성적, 취업 등을 이유로 역사에 대한 교육을 소홀히 한 우리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

Q. 여성독립운동가를 알리기 위해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하반기 중에는 ‘무명여성독립운동가 기념탑’ 건립을 완성하려 한다. 알려지지 않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을 기리기 위한 기념탑을 세워 사람들에게 애국정신을 전하려 한다. 이를 위한 펀딩도 계획 중이다. 광복절 즈음에는 국내외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정리한 여성독립운동 연구집을 낼 생각이다.

3.8 세계 여성의 날에는 광화문광장에서 ‘나는 여성독립운동가의 후예다’를 슬로건으로 한 ‘청소년과 함께하는 100년·100점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한 미술학원에서 재능기부 교육을 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이 답례로 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린 그림 33점을 선물로 줬다. 그 외 다른 국내 청소년들의 그림과 미주 뉴저지 훈민학당 한국학교, LA 미주예총협회, 호주광복회 청소년캠프 등에서 그림을 받아 총 100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 밖에도 청년기업들이 참여해 물품을 판매하고 수익금 일부를 ‘무명여성독립운동가기념탑’ 건립에 기부한다.

이달 중순에는 여성독립운동가 100인을 소개한 <여성독립운동가 인명록>이 나올 계획이고 이번 한 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독립운동가를 100명씩 묶어 계속 발간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지만, 지난 10년간 민간에서 해온 여성독립운동가들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서는 국가가 나서서 ‘여성독립운동 연구센터’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기관 지원도 거의 없이 자비로 활동을 해 왔다. 국가가 나서서 연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다면 다음 100년을 살아갈 세대를 볼 면목이 생길 것 같다. 연구소 이름도 국가를 위해 헌납할 생각을 늘 갖고 있다. 내 것이 아니고 잠시 빌려서 연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꼭 국가에서 연구센터 설립을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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