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하 칼럼니스트▷소설가·여행작가·영어강사▷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카와라우 당선▷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 최민하 칼럼니스트
▷소설가·여행작가·영어강사
▷2018 투데이 신문 소설부문 <카와라우> 당선
▷저서 <못 말리는 일곱살 유럽배낭여행 가다>

【투데이신문 최민하 칼럼니스트】 지우펀 인증샷 퍼레이드가 진행되었다. 사진관에 가서 똑같은 배경에 증명사진을 찍듯이, 하나 둘 셋, 찰칵, 다음! 하나 둘 셋, 찰칵, 다음!

이렇게 사진 찍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다가도, 여기까지 와서 사진 한 장 찍고 가지 않으면 그건 또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는,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 내 차례가 왔다. 남들처럼 인증샷! 하나 둘 셋, 찰칵, 다음!

사진 찍을 때 난간에서 본 아메이 찻집은 부러울 정도로 한산했다. 2층 창문가에 위치한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와 같은 여행객들이 ‘아메이 찻집 가서 차 한잔 마시기’ 와 같은 계획을 했을 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하고 찻집으로 향했다.

“2층에 자리가 없는데, 3층 괜찮겠어요?” 아메이 찻집 직원은 친절했다.

3층으로 안내되면서 곧 2층에 앉아 있는 여행객들처럼 여유롭게 경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그러나 막상 3층에 올라가자 펼쳐진 건 야외 포장마차 같은 분위기의 간이식 인테리어와 다닥다닥 붙어 있는 테이블이었다. 손님들이 파도처럼 출렁거렸고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 쪽 테이블은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건물 안쪽 시멘트벽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야 했다.

“이 쪽으로 앉으세요. 괜찮죠?” 괜찮지 않았다.

사람들과 상술에 지쳐갔다. 지나가다 어느 2층 난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무작정 식당으로 들어갔다. <비정성시> 영화 포스터가 벽에 붙어 있었다. 포스터를 쳐다 보면서 밀크티 한 모금 마시고 느긋해지려고 하니, 가이드가 돌아오라는 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지우펀을 안내해 준 가이드의 말이 떠올랐다. 지우펀에 혼자 앉아 있으면, 특히 비 오는 날은 그리 처량할 수가 없다고. 진과스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일을 마치고 지우펀으로 내려와 하루의 노곤을 풀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삶이 홍등 속에서 몽환적으로 흔들거렸다. 무엇 하나 제대로 경험한 것 없이 떠나는 것 같은 지우펀 여행도 홍등 속에서 같이 흔들렸다. 아쉬움이 커지자 노곤함이 짙어졌다. 비도 오지 않는데 돌아가는 골목길이 한층 더 처량해졌다.

기대하고 떠난 어떤 핑크빛 여행에서는 뜨겁게 휘감는 붉은 빛에 터질 것 같을 때도 있고, 기대하지 않고 떠난 어떤 회색빛 여행에서는 찬란한 에머럴드 빛에 설레일 때도 있다. 무수한 여행 색깔에 따라 그에 맞는 셈을 하는 것이 편하다. 지우펀 골목길이 지옥펀처럼 느껴지며 피로감에 무겁게 발길을 이끌었지만, 우연히 들은 낯선 여행객의 목소리에 쉽게 목적지를 찾는 운이 따르기도 했으니. 이런 방법으로 더하기 빼기하며 마음을 내려놓으면 지우펀 여행은 괜찮았다.

여행은 길 끝에 이르는 마침표보다는, 길 위에 이어지는 다양한 색깔의 느낌표와 쉼표와 물음표의 여정 속에 의미가 있기에.

그 길 위에서 이미 행복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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