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1일은 스텔라데이지호가 남대서양에서 침몰한 지 2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2년이 다 되도록 침몰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실종자들의 행방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2년간 실종자 가족들의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 활동을 돌아보고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 폴라리스 쉬핑과 정부의 대응을 되짚어봤다. 기사는 이야기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종자 가족 인터뷰와 선사, 정부 부처 취재를 통해 쓰여졌다.
5편에서는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스텔라데이지호에 올라 복무하던 중 실종된 문원준 3기사, 윤동영 3항사의 이야기와 승선근무예비역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정리했다.

스텔라데이지호에서 촬영된 2017년 1월 1일 일출 장면.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스텔라데이지호에서 촬영된 2017년 1월 1일 일출 장면.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지난 2017년 3월 31일,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스텔라데이지호에 탑승한 윤동영 3등 항해사(이하 3항사)는 침몰 30분 전까지도 카카오톡으로 부모님과 연락을 하고 있었다.

“큰아들 별일 없지? 몸 건강하지? 집에도 별일 없고 잘 있다. 보고 싶다 아들… 힘내고 즐겁게 생활해.”

어머니의 연락에 윤 3항사도 답장을 보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저도 별일 없어요. 집에도 별일 없다니 다행입니다. 항상 건강 조심하시고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윤 3항사의 어머니는 아들이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의 한국 소식을 듣고 있는지 물었다. 윤 3항사는 “배에서 선상 투표할 거 같네요. 한국 소식보다 여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사고 연락이 선사에 전해지기 30분 전인 오후 10시 50분, 그는 어머니에게 “걱정마세요ㅎㅎ”라고 마지막 연락을 보냈다. 윤 3항사와 어머니의 카카오톡 대화창에는 사고 다음 날인 4월 1일 오후 4시 20분 “동영아 별일 없지? 연락 좀 해줘”라는 어머니의 메시지가 수신 확인이 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윤동영 3등 항해사가 지난 2016년 1월 20일 열린 목포해양대학교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 윤동영 3항사 아버지 윤종률씨>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윤동영 3등 항해사가 지난 2016년 1월 20일 열린 목포해양대학교 졸업식에서 꽃다발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제공 = 윤동영 3항사 아버지 윤종률씨>

윤 3항사의 아버지 윤종률씨 역시 다른 실종자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사고 다음날인 4월 1일 오후 4시경 선사의 연락을 받았다.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윤씨는 생각지도 못한 연락에 처음엔 보이스피싱이라고 의심했다.

“너 뭐야! 이 번호 어떻게 알고 연락하는 거야!”

그러나 선사 측에서 아들의 이름을 대면서 설명하자 곧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했다.

“아드님이 승선한 배가 침수되고 있습니다.”

“XX놈아 침수가 아니고 가라앉은 거 아냐? 똑바로 설명해 봐!”

“아닙니다, 지금 침수돼서 구조하고 있습니다.”

통화를 마친 윤씨는 부랴부랴 부산으로 향했다. 실종자 가족 중 가장 먼저 폴라리스 쉬핑 부산지사에 도착한 윤씨는 선사 측에 구조상황을 물었다.

“구조선이 급파돼 구명정 두 척을 발견했습니다.”

아들이 구명정에 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 윤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시간이 지나자 구명벌에 탑승한 필리핀인 선원 2명이 구조됐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구명정 안에 탑승한 승선원이 없다는 날벼락 같은 소식과 함께.

소 농장을 운영하는 윤씨는 이튿날인 2일 집으로 돌아가 이웃에 축사를 맡기고 가족들과 함께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충격과 스트레스로 윤씨의 눈은 빨갛게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가 지난 2016년 1월 27일 한국 해양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해사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고 있다. 문 3기사 오른편 가장 앞줄에 폴라리스쉬핑 한희승 회장이 앉아 답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제공 = 문원준 3기사 아버지 문승용씨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가 지난 2016년 1월 27일 한국 해양대학교 대강당에서 열린 해사대학 학위수여식에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하고 있다. 문 3기사 오른편 가장 앞줄에 폴라리스 쉬핑 한희승 회장이 앉아 답사를 경청하고 있다. <사진제공 = 문원준 3기사 아버지 문승용씨>

세월호와 스텔라데이지호

68기 동기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 꼭 언급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졸업식에서 언급하기에는 다소 무겁지만 우리들에게 가장 가깝게 관련된 사건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다들 기억하시나요? 바로 세월호참사가 발생한 날입니다. 이날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진도 앞바다에 수장됐습니다.
온 국민이 가슴 아파했던 이 사고를 우리들은 누구보다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합니다. 다시는 이처럼 무책임한 인명사고가 바다 위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실력은 물론 사명감을 크게 갖기를 바랍니다.
설령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무책임하게 회피하거나 ‘봐주기’식 대응을 답습하지 않는 용기와 힘을 기르고 늘 약자의 편에 서서 생각하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따뜻한 68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 2016년 1월 27일 한국해양대학교 68기 졸업식에서 졸업생 대표 문원준의 답사 중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기사는 해양인으로서 세월호참사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세월호참사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은 적이 있는 그는 가족들과 함께 교회를 가는 일요일, 광화문광장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에게 “이곳 분향소에도 와 봐야 하는데…”라고 말했다.

바다에서 발생한 대형 참사에 그는 분노했고 희생자들의 죽음을 안타깝게 생각했다. 무엇보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게 된 해운업계의 구조를 답습하지 않기를 항상 다짐했다.

문 3기사는 2016년부터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인 폴라리스 쉬핑에서 승선근무예비역 복무를 시작했다. 한국해양대 재학시절 폴라리스 쉬핑에서 신조선을 타며 실습을 한 그는 ‘신조선을 태워주겠다’는 선사 회장의 약속에 폴라리스 쉬핑을 선택했다.

그러나 선사는 복무 초기에만 신조선을 타도록 하고 이후 문 3기사에게 노후선인 스텔라데이지호를 타라고 지시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선체 결함을 알고도 이를 덮은 선사와 허위 검사로 운항을 가능하게 한 한국선급 등 적폐 구조를 모두 안고 있었다. 문 3기사가 그렇게 끊어내고자 다짐했던 해운업계의 적폐는 결국 침몰사고를 만들고 말았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2017년 5월 15일 서울 중구 폴라리스 쉬핑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가장 왼편은 윤동영 3항사의 아버지 윤종률씨.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2017년 5월 15일 서울 중구 폴라리스 쉬핑 본사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사진 가장 왼편은 윤동영 3항사의 아버지 윤종률씨. <사진제공 = 스텔라데이지호 가족대책위원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대체복무

승선근무예비역 제도는 국가 비상시에 국민경제에 긴요한 물자와 군수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업무 등을 위해 소집하는 병역 대체복무 제도 중 하나다. 입영대상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정하는 교육기관에서 정규교육과정을 마치고 항해사·기관사 면허를 소지한 사람이다.

윤 3항사는 한진해운에서 승선근무예비역 복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해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대체복무를 마치기 어렵게 됐다. 승선근무예비역의 경우 5년 이내에 승선근무기간 36개월을 채워야 하는데, 승선근무기간을 맞추지 못하면 현역병으로 입대해야 한다. 때문에 복무기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잴 겨를이 없었다. 윤 3항사는 자신을 지도해 준 교수를 찾아가 상황을 설명했고, 교수의 소개로 폴라리스 쉬핑으로 회사를 옮기게 됐다.

윤 3항사와 함께 승선근무예비역으로 스텔라데이지호에 오른 문 3기사는 2016년부터 폴라리스 쉬핑에서 복무를 시작했다. 한국해양대 재학시절 폴라리스 쉬핑에서 신조선을 타며 실습을 한 그는 ‘신조선을 태워주겠다’는 선사 회장의 약속에 폴라리스 쉬핑을 선택했다.

일반 병사보다 월급을 더 받는다는 이유로 승선근무예비역을 ‘병역특혜’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돈 벌려고 대체복무를 선택한 것 아니냐”며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해양대를 졸업하고 해운업계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승선근무가 필수적이다. 회사는 경험자를 선호하고, 승선근무를 마치면 2항사·2기사 자격을 얻게 되기 때문에 승선근무예비역은 어떻게든 배 위에서 3년을 버텨야 하는 것이다.

해양대 학생들은 3학년부터 해운업체에 승선 실습을 나간다. 실습 시 선장이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에 어떤 부당행위에도 항의할 수 없다. 승선근무예비역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복무를 마치고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선사에서 시키는 대로 배를 탈 수밖에 없다. 문 3기사와 윤 3항사는 노후선인 스텔라데이지호가 언제든 사고가 날 수 있는, 위험한 배라는 걸 알면서도 배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젊은 인력을 싼 값에 쓰도록 나라가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꼴이지 뭐야.”

문 3기사의 아버지 문승용씨는 스텔라데이지호를 타야만 했던 아들 생각에 가슴을 내리쳤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의 아버지 문승용씨가 지난 1월 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진상규며과 심해수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의 아버지 문승용씨가 지난 1월 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맞은편에서 진상규며과 심해수색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예견된 사고

이들은 대체복무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다가 사고를 당했지만 국방부는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대체복무 중에 사고를 당했는데, 국방부에서 수색 등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버지들은 국방부와 병무청에 호소했다. 그러나 병무청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승선근무예비역은 선박회사 직원으로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선원법의 적용을 받습니다. 병무청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5년 내에 36개월이라는 기간을 승선해야 군 복무 인정을 받는데, 민간인 신분이기에 승선 중 사고가 날 경우 선원법에 따라 처리가 된다. 복무 인정 기간 중에 사고를 당했지만 법령 체계상 국가가 나설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다만 병무청은 폴라리스 쉬핑이 복무관리 실태조사 결과 불합격했다며 승선근무예비역 인원 배정을 1년간 취소했다. 현행법상 승선근무예비역 인원배정을 취소할 수 있는 최장 기간이 1년이기 때문이다. 폴라리스 쉬핑이 보유한 선박 다수에서 안전상 문제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지만 결국 아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폴라리스 쉬핑은 2019년 다시 승선근무예비역을 배정받을 수 있게 됐다. 바다를 바라보며 꿈을 꾸던 젊은이들은 군복무를 대신해 사고가 예견된 배에 올라야 하는 실정이다.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 아버지 문승용씨가 지난 2017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주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등 기관사 아버지 문승용씨가 지난 2018년 3월 26일 서울 종로구 4·16연대 대회의실에서 열린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1주년에 즈음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아버지의 이름으로

문 3기사는 한국해양대 입학 당시 머리를 박박 깎고 ‘적응교육’을 받았다. 군사훈련과 맞먹는 훈련이었다.

“아버지, 제가 적응교육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포기’와 인내‘ 사이에서 고민을 했어요. 다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도 제가 입학할 때 부모님께서 기뻐하셨던 모습을 생각하며 결국 인내를 선택했습니다.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문 3기사는 아버지에게 자주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 어버이날에는 실습 시간에 용접으로 ‘엄마아빠 사랑해’라는 글이 담긴 작품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문승용씨는 아들 생각이 날 때마다 아들이 보낸 편지와 선물, 아들의 사진을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세상에 어느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겠노. 내가 할 수만 있다면 바다에 뛰어들어서 바닷물을 다 마셔서라도 아들을 찾고 싶은 심정이야.”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기사가 한국해양대학교 재학시절 부모님께 보낸 선물. 사진제공 = 문원준 3기사 아버지 문승용씨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실종자 문원준 3기사가 한국해양대학교 재학시절 부모님께 보낸 선물. 사진제공 = 문원준 3기사 아버지 문승용씨

윤 3항사는 목포해양대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윤 3항사가 승선근무예비역 복무를 시작한 한진해운에서 장학금을 지급할 정도로 우수한 학생이었다. 윤종률씨는 아들의 수석졸업 소식에 뛸 듯이 기뻤다. 아들의 앞길도 밝을 것으로만 기대했다. 그러나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는 모든 희망을 앗아갔다.

“차라리 우리 아들이 공부를 못 해서 대학을 못 갔다면 어땠을까…”

세상에서 가장 큰 고통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이라고 한다. 아들의 해양대학교 입학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했던 문씨와 윤씨는 아들이 대체복무 중 실종되자 절망에 빠졌다. 자식의 생사도 확인하지 못한 채 끝없는 기다림을 이어오고 있는 부모들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마냥 슬퍼하며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국가도 선사도 실종자 수색에 미온적인 모습을 보이며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가족들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아들을 찾기 위한 아버지들의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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