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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관 체험 전 정용문 센터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죽음은 여성이거나 남성이거나 혹은 나이가 많거나 어리거나, 또는 부유하든 가난하든, 남녀노소·부(富)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사랑하는 많은 이들을 남겨두고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 게 슬프고 비극적이지만, 죽음은 세상에 태어난 이상 누구나 반드시 겪어야 하는 필연이다. 

과거에는 죽음은 입 밖으로 내뱉는 것조차 조심스러웠지만 최근에는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음 편히 잘 살다 죽는 ‘힐 다잉(Heal-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간접적인 죽음 경험을 통해 삶의 소중함을 깨닫고자 하는 임종체험도 주목받고 있다.

어차피 한 번은 죽어야 한다면 갑작스럽기보다는 잘 준비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또한 행운이라 여기며 평소에도 죽음을 늘 염두에 두고 준비하는 것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투데이신문>은 준비된 죽음의 중요함과 삶의 소중함을 되새겨보고자 지난달 28일 무료 임종체험을 운영 중인 서울 영등포구에 위치한 ‘효원힐링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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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청서를 작성 중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영정사진 속 나를 마주하다

이날 힐 다잉 체험은 오후 1시로 예정돼 있었으나 본격적인 체험 시작에 앞서 준비할 것들이 있다며 조금 일찍 와달라는 요청에 따라 30분 먼저 센터를 찾았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착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센 어르신부터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까지 이날 기자와 함께 임종체험을 함께할 인원은 40여명이었다.

참가 명단을 확인한 후 펜과 신청서가 주어졌다. 간단한 인적 사항과 함께 심리 상태나 자살에 대한 생각, 이 체험을 통해 기대하는 것 등 몇 가지 질문의 답을 적어 내려갔다. 신청서를 제출하고 잠시 기다리자 곧 영정사진 촬영이 시작됐다. 센터 한편에 간이 사진관이 차려져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은 각양각색이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사람이 있는 반면 덤덤하거나 환하게 웃음 짓는 이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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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사진을 촬영 중인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영정사진은 죽은 후 주변 사람들이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기 때문에 우울한 표정은 좋지 않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들은 적이 있어 웃으면서 찍으리라 마음을 먹고 의자에 앉았다. 환하게 웃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 촬영을 하시는 분께서 ‘조금 웃으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했다. 죽음을 앞두고 얼굴에 드리운 긴장감은 감춰지지 않았나 보다.

영정사진 촬영을 모두 마치고 나면 효원힐링센터의 정용문 센터장이 1시간 정도 죽음에 관한 강의를 진행한다. 평소에는 쉽게 꺼낼 수 없는 죽음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담담하게 공유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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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를 작성하고 있는 전소영 기자 ⓒ투데이신문

이승과의 작별을 고하다

정 센터장의 강의가 끝나면 잠깐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이때 미리 찍었던 영정사진도 받게 된다. 검은 상장이 달린 영정사진 속 죽은 나와 그를 보는 살아있는 나, 기분이 이상했다. 어딘지 모르게 슬퍼 보이는 영정사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약 내가 떠난 후 남은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기억될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웃으면서 찍으라는 말씀도 그제야 이해됐다.

영정사진을 받아든 후 안내에 따라 계단을 올랐다. 천국으로 가는 길, 저승으로 가는 길이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저승길은 검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인솔했다. 영정사진을 받을 때까지도 아직 실감이 안 나는 듯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던 사람들도 숙연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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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힐링센터 입관 체험 장소 ​ⓒ투데이신문​

저승사자를 따라 도착한 곳에는 수십여개의 관이 놓여 있었다. 저승사자가 안내에 따라 자리를 배정받아 앉았다. 본격적인 체험에 앞서 정 센터장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한 가정의 아버지와 그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시작과 함께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남성이 떠난 후 남겨질 아내와 어린 두 자녀의 모습에 기자의 코끝도 시큰해졌다.

영상이 끝나고 나면 다 함께 일어나 관 위에 올려져 있는 수의를 입으며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빈곤하거나 부유한 것에 상관없이 모두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기 때문이란다. 옷을 다 여미고 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영정사진과 함께 미리 나눠줬던 유언장에 이승에 마지막으로 남길 말들을 각자 써 내려갔다. 정 센터장은 이곳에서 쓴 유언장이 실제 마지막으로 남긴 글이 된 사례도 있다며 진짜라는 마음으로 작성할 것을 권유했다.

유언장이라는 단어를 보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가족과 애인, 친구들이었다. 가장 먼저 ‘사랑하는 엄마·아빠께’라는 말로 유언장의 운을 뗐다. 평소에도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잘 흘리는 기자인데,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길에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니 눈물샘이 폭발했다. 마냥 울기만 하면 전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눈물을 꾸역꾸역 참아내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정성스럽게 적었다. 하루가 멀다고 별거 아닌 일로 투닥거리는 두 동생과 아침까지도 싸웠던 남자친구, 이 핑계 저 핑계로 자주 만나지 못한 친구들에게까지 미안한 마음을 모두 담아낸 후에야 기자의 유언장에 마침표가 찍혔다.

유서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 ⓒ투데이신문
유서를 낭독하며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 ⓒ투데이신문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장 센터장은 몇몇에게 마이크를 건네 유언장을 읽기를 권했다. 애써 덤덤하게 유언장을 읽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 흐르는 눈물을 결국 참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죽음 앞에선 모두가 같은 마음인가 보다. 부모님과 배우자, 자식에게 전하는 미안함과 후회가 대부분이었다. 생전엔 잘하지 못했던 ‘미안하다’, ‘사랑한다’는 말을 죽고 나서야 고작 A4 용지 한 페이지 정도에 불과한 활자로 전할 생각을 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유언장을 다 쓰고 모두 관 뚜껑을 열고 들어가 천천히 다리를 뻗고 누웠다. 관속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산 사람을 위한 게 아니다보니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했다. 잠시 뒤 관 뚜껑이 닫히고 ‘탕탕탕’ (못질 흉내) 소리와 함께 이승과 완전히 단절됐다. 어두컴컴한 관 속에 누워있노라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두려움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휘감았다. 내심 너무 무서우면 뛰쳐나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평안함이 그리고 이내 그동안의 내 기억들이 마치 사진 필름처럼 한 장 한 장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행복했던 일, 슬픈 일, 잘못한 일, 미안한 일 등 그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까지도 생생하게 떠올랐다. 길게 느껴질 줄 알았던 관속에서의 10분은 내 인생을 모두 되돌아보기엔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다.

관 뚜껑이 열리고 모두 새로 태어났다는 정 센터장의 말을 끝으로 모든 체험이 종료됐다. 이날 함께 다시 태어난 사람들에게 축하와 고생했다는 위로의 마음이 담긴 박수와 눈인사를 서로 주고받았다.

유서를 작성하며 많은 눈물을 보인 40대 최희승씨는 “지금까지 너무 편안하게 살아온 것 같다. 오늘로써 다시 태어났으니 나를 위해, 내 가족을 위해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60대 문민옥씨는 “늘 죽음에 대해 생각을 했지만 막상 이런 체험을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등의 표현을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앞으로 더 많이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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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관을 준비 중인 체험자들 ⓒ투데이신문

누군가는 삶의 벼랑 끝에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어떤 이는 죽음은 그저 먼 언젠가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또 다른 누군가는 당장 살아있는 게 중요하지 죽는 게 무슨 소용이냐는 마음으로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각자 다른 이유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는 같은 깨달음을 안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시간과 그 시간을 함께 걷는 사람들의 소중함, 죽음 또한 내가 준비해 할 중요한 인생의 한 조각이라는 것을 마음 깊숙이 새겨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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