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캡틴 마블'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캡틴 마블’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올해 첫 마블 스튜디오의 영화인 <캡틴 마블>이 개봉 첫날인 지난 6일 하루 2016개 스크린에서 46만857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캡틴 마블은 어벤져스,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팬서, 닥터 스트레인지 등 남성영웅이 대다수인 마블 영화의 세계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서 처음으로 나온 여성영웅 단독 영화입니다.

사실 캡틴 마블의 흥행은 예상된 일이었습니다. 지난해 국내 1121만 관객을 동원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와 이어지는 작품이며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인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가는 마지막 단계이기에 개봉 전부터 관객들의 기대감을 고조시켰죠.

그러나 캡틴 마블의 개봉이 순탄치만은 않았습니다. 개봉 전 페미니즘 논란에 휩싸여 최저 평점으로 점수를 깎는 ‘평점테러’를 받은 것이죠.

11일 오후 12시 기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위)과 관람객 평점(아래).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화면 캡처
11일 오후 12시 기준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위)과 관람객 평점(아래).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화면 캡처>

‘캡틴 마블’에 쏟아진 평점테러

캡틴 마블은 기억을 잃은 여성 전투기 파일럿 캐럴 댄버스가 쉴드 요원 닉 퓨리(사무엘 L. 잭슨)와 만나 어벤져스의 마지막 희망 ‘캡틴 마블’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다룬 마블 스튜디오의 2019년 첫 작품입니다.

MCU의 첫 여성영웅 이야기의 주인공 캐럴은 파일럿이 되기 위해 편견에 맞서 싸워야 했습니다. “여자는 전투기 조종에 안 어울려”, “여자라서 안 돼”라는 말을 들으며 전투기 파일럿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했죠. 때문에 자연스럽게 캡틴 마블에 페미니즘적 요소가 녹아있을 것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당연히 이에 대한 반감도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감은 예상보다 더 컸습니다.

캡틴 마블에 대한 반감은 주연배우가 브리 라슨으로 결정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네티즌들은 브리 라슨의 외모를 지적하며 히어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난했습니다. 원작인 코믹스(만화)에서 캡틴 마블은 얼굴과 몸매가 완벽한 인물로 묘사되는데 브리 라슨이 이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죠.

또 ‘다른 여성영웅들과 달리 노출 의상을 입지도 않는다’거나 ‘여자 주인공이 웃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로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 밖에도 MCU 역사상 가장 강력한 영웅인 캡틴 마블이 여성이라는 점도 이유가 됐죠.

아울러 브리 라슨의 인터뷰도 평점 테러의 이유가 됐습니다. 브리 라슨은 미국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캡틴 마블은 위대한 페미니스트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영화”라며 여성영웅 영화임을 강조했습니다. 북미에서는 캡틴 마블의 개봉일을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 맞춰 이를 부각시키기도 했습니다.

일부 남성 네티즌들은 이런 이유로 캡틴 마블에 대한 평점 테러를 시작했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에서는 개봉 전부터 최저 점수인 1점을 부여하면서 ‘여자 주인공 못생겼다’거나 ‘캡틴 페미’라며 비난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습니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영화 리뷰 사이트 로튼토마토, IMDB 등에서도 평점테러가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로튼토마토는 북미에서 캡틴마블이 개봉하는 지난 8일까지 댓글을 달 수 없도록 막아두기까지 했습니다.

실제로 캡틴 마블 개봉 후 2만3162명이 참여(11일 낮 12시 기준)한 네이버의 네티즌 평점을 보면 여성들은 평균 9.00점, 남성들은 평균 4.10점을 줬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실제 영화를 관람한 이들 4396명이 참여(같은 시각 기준)한 관람객 평점에서는 여성 8.68, 남성 8.24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지도 않고 깎아내리는 평점테러가 드러나는 지점입니다.

영화 '캡틴 마블'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영화 ‘캡틴 마블’의 스틸컷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난 너한테 증명할 게 없어

캡틴 마블이 개봉하자 영화를 본 관람객 일부는 ‘페미니즘적 내용이 많지는 않은데 영화 자체가 지루하고 재미없다’며 혹평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영화 속에는 가부장제 속에서 억압된 여성을 나타내는 장면이 수도 없이 등장합니다. 남성성을 조롱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고요. (스포일러의 위험이 있어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젠더구조 속에서 강자의 위치에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보면 캡틴 마블에 평점테러를 가하는 이들은 페미니즘의 지향점을 정확히 알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별로 인한 차별을 없애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자는 주장입니다.

캡틴 마블이 갖는 의미도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습니다. 남성영웅을 위한 보조적 역할이 아닌 주체적인 여성영웅의 이야기 말이죠. 이를 통해 본다면 브리 라슨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강력한 여성영웅’을 비난하는 네티즌들의 태도는 이분화된 성 역할, 여성에 대한 외모평가 등을 거부하는 페미니즘의 비판 대상이 되겠네요.

아무튼 캡틴 마블의 흥행성적을 보면 네티즌들의 비난은 큰 영향력이 없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캡틴 페미’라며 조롱하는 이들보다는 영화에 기대를 하는 이들이 더 많은 것처럼 보입니다.

캐럴 댄버스는 ‘난 너한테 증명할 게 없어(I have nothing to prove to you)’라는 영화 중 대사처럼 페미니즘을 이유로 악평을 일삼는 이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MCU의 새로운 여성영웅,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서 자신의 모습을 당당히 보일 뿐입니다.

벌써부터 핼러윈에 캡틴 마블로 분장하고 ‘포톤 블래스트’를 쏘는 시늉을 하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마블의 아버지’ 고(故) 스탠 리가 슈퍼히어로의 모습을 흉내 내며 외쳤던 ‘엑셀시오르(Excelsior, 더욱더 높이)’를 외치며 하늘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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