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공연 장면. 좌측부터 모모役(오정택), 로자役(양희경) <사진제공=국립극단>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만약 누군가 갑자기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과연 어떤 대답을 할 것인가?

국립극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올린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열네 살 어린 소년 모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다양한 삶의 모습과 그로부터 얻게 된 깨달음, 그리고 가족과도 같은 로자 아줌마와의 소중한 추억과 사랑에 대해 그려낸 이야기이다.

당대 최고로 손꼽혔던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가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발표해 더욱더 큰 반향을 일으켰던 동명의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이번 연극은, 연극팬들 뿐만 아니라 원작을 사랑하는 많은 독자들에게도 커다란 기대감을 선사하며 지난 2월 국내 초연으로 관객들의 곁에 찾아왔다.

연극 <자기 앞의 생>은 책보다 다소 경쾌한 분위기로 흘러갔다. 무대 연출의 한계와 시간상의 제약으로 인해 상당 부분 생략된 내용도 있었고 그만큼 등장인물도 많이 줄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원작의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처음에는 성인 배우가 연기하는 모모가 조금 어색하게 느껴져서 완전히 몰입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오정택의 열연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는 그가 곧 모모로 보였다. 로자 아줌마 역을 맡은 양희경의 연기는 힘이 있으면서도 매우 감성적이고 섬세했다. 또렷하게 들려오는 대사 도중 이따금 내쉬는 거친 호흡과, 어렵게 옮기는 발걸음 하나하나까지 모두 세밀하고 꼼꼼하다. 38년간 스크린과 연극무대를 오가며 변함없이 이어온 연기 인생의 결정체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녀가 왜 그토록 꾸준히 많은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서로 의지하며 생을 함께 해 온 등장인물들이 각각 삶의 무게를 견뎌내고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이는 모습은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고 비로소 누군가의 삶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 진정한 사랑을 느낄 수 있듯, 인간의 성숙은 외로움을 버티는 시간과 경험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을 <자기 앞의 생>을 통해 다시 한번 확인하는 느낌이었다. 결국 사랑이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지탱하는 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연극은 말하고 있었다.

다만 원작 소설이 주는 감응이 워낙 강렬했기에 장르의 변화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의 차이에서 관객의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작품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배역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주인공의 대사로만 처리되는 부분이나, 부연 설명이 필요한 내용상의 연결 부분이 조금 부족한 느낌이 든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연극의 중심에 선 배우들의 연기에는 빈틈이 없다. 공연장을 나선 후에도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먹먹함은 순간순간 다시금 작품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매우 강렬하다.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 최윤영(아나운서/공연 칼럼니스트)

얼마 전 가까운 지인들과 만난 모임에서 ‘자기 앞의 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난다. 과연 모모가 앞으로 그에게 남겨진 생을 어떤 모습으로 살아갔을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사이 꽤 다양한 의견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모모가 새로운 사람들 곁에서 또 다른 사랑을 찾아 행복할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금까지의 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모모가 관객들을 향해 마지막 시선을 던지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를 떠나보내고 어둠 속을 벗어나 계단 위 환한 빛을 향해 한 발씩 내딛던 그의 모습처럼 사랑으로 가득 찬 아이, 모모의 남은 생이 희망으로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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